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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캔두 Dec 06. 2020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에 남긴 어떤 것

나이로비(Nairobi)와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

 올해 봄에 팀 마샬의 <지리의 힘> (원제: Prisoners of Geography)을 읽었다. 책 내용을 효과적으로 설명해주는 영어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지리가 인류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개인적으로도 매우 동의하는 주장이라 흥미롭게 읽은 기억이 난다. 중남미와 아프리카에 대해 다루는 부분에서는 특히 유럽인들이 억지로 그어버린 직선의 국경선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아프리카는 영국과 프랑스가, 중남미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원래 살고 있던 사람들에 대한 일말의 존중도 없이 통치 편리성만 중시하면서 멋대로 국가의 경계를 만들어버렸다. 둘 중에서도 아프리카는 더 심각한 편이라 아프리카 고유의 기후에 직선의 국경선에 의한 분쟁이 더해져 세계에서 가장 낙후한 지역 중에 하나로 남아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상황이 언제쯤 개선될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아프리카 지도 출처: maps.com


 이런 아프리카의 가나 아크라와 케냐의 나이로비가 내 첫 출장지였다.

Borading Pass와 Kenya Airways

 친구들은 위험한 것 아니냐며 걱정했지만 나는 철없이 가보지 못한 대륙, 아프리카 땅을 밟을 수 있다는 것에만 설레 들떠있었다. 입사 약 1년 만에 떠난 첫 출장, 그리고 안전을 고려해 묵게 될 비싼 5성급 호텔, 아프리카 내에서 이동할 때만 탈 수 있다는 비즈니스석. 철없는 신입 직원을 설레게 할 모든 조건이 갖추어져 있었다. 부끄럽지만 ‘일은 선배가 많이 하겠지’라는 무책임한 생각과 함께. 그리고 중남미 배낭여행하면서 워낙 열악한 환경은 많이 접해봤으니 딱히 걱정이 되거나 두려울만한 것도 없었다.


 케냐의 수도인 나이로비는 동아프리카의 대표 도시이다. 심지어 유엔본부가 있는 이 도시는 아프리카에 대해 가질만한 나의 선입견을 다 날려주기에 충분했다. 물론 사무소 소장님께서 좋은 식당, 비싼 카페에 데려가 주신 것을 안다.

같은 도시라는 게 믿기지 않는 상반된 풍경

출장 마지막 날, 사무소 소장님께서는 출장 소감을 물으셨다.

 “이주임, 아프리카 와보니까 어때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발전하기도 했고 훨씬 좋은데요?”

 “사실 이주임이 호텔이랑 사무실만 왔다 갔다 했는데, 사무실이나 호텔이나 다 여기서 제일 동네에

있는 것이라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뭐라 반박할 만한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부끄럽게도 정말 일부분의 모습만 보고 좋다고 말해버렸다. 당시에는 별 생각이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매우 낯 뜨거워지는 대답이다. 할리우드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도 내게는 낯 뜨거워지는 대답이다. 영화는 커피 농장을 경영하기 위해서 덴마크에서 온 카렌과 그곳에서 만난 데니스와의 운명적인 사랑 이야기를 다루었다. 케냐에서 현지 촬영을 했다는 이 영화는 드넓은 아프리카의 초원을 보여주고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려준다. 흥행에도 성공했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7개 부문의 상까지 탔다.


 그런데 이게 이 영화의 전부일까? 커피 농장은 거기 원래 살던 사람들이 경영해야 맞을 텐데, 왜 덴마크인이 여기까지 와서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커피 농장을 운영한 걸까? 러브스토리에 초점이 맞춰져있기는 하지만 이 영화는 유럽인들의 제국주의, 케냐 침략을 미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아프리카 전역이 엄청 찌듯이 더울 것이라는 편견과 달리, 나이로비는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날씨가 한국보다도 훨씬 좋다. 유럽인들이 아프리카 중에서 특히 케냐에 많이 몰려왔던 데에는 이 기후도 한몫했을 듯하다. 영화 원작 소설의 작가이자 실제 주인공인 카렌의 농장이 위치했던 지역도 케냐에서 가장 서늘하고 커피 농사에 좋았다고 한다. 덕분에 이 곳에서 살던 원주인들은 유럽인들에 쫓겨나 다른 곳으로 삶의 터전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카렌이 케냐를 떠나 다시 유럽으로 돌아가면서 영화가 끝나기 때문에 제목을 Out of Africa라고 지은 걸까?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제목처럼 유럽인들은 결국 아프리카에서 떠나야(Out)했다. 삶의 터전을 뺏긴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포기하지 않고 독립을 위해 투쟁했기 때문이다. 유럽인들은 케냐와 아프리카에 무엇을 남기고 갔을까. 아프리카에서 내전이 끊이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서로 다른 부족을 인위적인 국경선으로 하나의 국가로 묶어놨기 때문인데 유럽인들은 아프리카에 이런 상흔만을 남기고 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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