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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도 Jul 01. 2024

강산이 이러다 인사 되는 거 아님

강산아, 누나가 드디어 전문 편집자님을 만났어.

작은 누나가 동행해 주어서 분위기가 한결 편안했지.

떨리더라.

편집자님?

젊고 아름다운 1인 사업가.

목소리가 딱 책스럽더라고.

그냥 머리부터 발 끝까지 교양 덩어리 같은….

첫 대면에 계약이 성사된 거야.

우리 귀공자 강산이가 주인공인 의미 만 프로 감동 에세이를 세상에 내놓기로.

강산이는 누나랑 사는 동안 무엇이 제일 힘들었어?

일전에 누나 송도 친구 만나고 왔잖아.

안내견 나라 애미 하는 말이,

“우리 직원들은 나라 엄청 이뻐해. 야, 내 직급이 있잖아.”

그래. 그랬던 거야!

조직에서 주인의 입지.

바로 그거였구나.

우리 강산이는 누나가 사회 초년병일 때 안내견 활동을 시작해 놔서.

교무실 졸병인데, 심지어 그 좁은 공간 안에 개털 알레르기가 있는 선배 교사가….

그분이 재채기 한 번 할 때마다 온몸이 오그라들 것처럼 눈치가 보였었는데….

우리 강산이 얼마나 힘들었니.

주인이 신참이라 이리저리 눈치 보느라 쏟은 에너지만큼 우리 강산이를 살필 여력이 없었을 나를 부사장님이신 나라 애미랑 얘기하면서 새삼 깨달았단다.

매일 새벽 30분이 넘도록 그루밍을 했어도 교무실에 털 날린다 한 마디가 가시 같았구나.

누구도 강산이를 탓하거나 핀잔 준 적 없었음에도 스스로 위축됐던 시절이었어.

지금도 누나는 훌라후프 돌릴 때마다 우리 강산이 생각이 나.

그 때 많이 아팠을텐데.

기억 안 난다고?

왜 누나 훌라후프 돌리는데 강산이 옆에 서서 구경하다가 머리 맞은 적 있었잖아.

혹시 얼굴이었니?

훌라후프에 닿은 부분이 딱딱한 느낌이었거든.

우리 강산이 말도 못하고, 자리로 돌아가 철퍼덕 엎드리더니만 폭풍같은 한숨을….

솔직히 짜증 좀 났었다고?

암만.

그 날 누나가 한 스무번 쯤 사과한 것 같은데, 너 내 사과 귓등으로도 안 듣는 느낌이더라.

그런데, 강산아 너 동물병원 갈 때마다 어떻게 알고 버텼던거야?

온몸에 힘을 꽉 주고 차에서 안 내리겠다고 때쓰는 덩치님이시라니.

그 때 누나 똑똑히 실감했다.

개코의 위력을….

맹렬하게 먹어 치우는 한 끼 사료 그릇에서 누나가 잘게 부순 알약 조각 몇 개만 정확히 남긴 그 감별 솜씨는 또 어떻고.

누나가 다이어트 좀 해 보겠다고 23층 우리집까지 계단을 선택했을 때 말이다.

7층부터였지 아마.

요요, 영특한 녀석!

자꾸 엘리베이터 앞으로 누나를 이끄는 너를 보며 나 속으로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

“누나 왜 이래. 나 힘들단 말이야. 평소 타던 것 타고 올라가자.”

네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더라니까.

귀공자답게 우리 강산이는 생전 무엇도 핥는 법이 없었어.

강산이, 처음 형 차 탔던 날 기억하니?

그 주유소 아저씨 있잖아.

누나는 잊을 수가 없다.

그 시절 형 차가 ‘티코’였거든.

기름을 넣는데, 뒷좌석에 길게 누운 강산이를 보고 주유소 아저씨 혼잣말로 하시는 말씀.

‘웬 차보다 비싼 개를 태우고 다닌댜.’

우리 강산이 얼마나 힘이 들었을꼬!

강산이는 누나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선물이란다.

밤이고 낮이고 신발 신고 나가 시원한 바람 맞으며 실컷 걸을 수 있는 자유.

타인의 삶을 보다 풍요롭고 따뜻한 나눔으로 채워주는 가치있는 생.

강산이는 누나에게 주기만 하고 떠나간거야.

강산아 고마워!

계단 찾아 주고, 턱 앞에 멈춰 주고, 마트며 교회며 학교며 제주도까지 데려다 주고, 실수 투성이 주인 눈감아 주고, 너 멀미하는줄도 몰랐던 누나 묵묵히 안내해 줘서….

그 곳에서는 여기서 못했던 연애도 과식도 실컷 하렴.

야생마처럼 뛰어다니며 목청껏 짖어도 보고.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쿨하게 각자 알아서 행복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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