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을 절에서 살라고요?

33살 직장인, 회사 말고 절로 들어갔습니다

by 신민정

# 절과의 인연

내가 머문 곳은 신사동에 위치한 작은 절이었다.
이 절과의 인연은 그러했다.

평소 사람의 ‘마음’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딱히 종교랄 게 없었지만 108배, 명상과는 다소 친근했다.


3~4년 전, 교통사고로 인해 꽤 오랫동안 몸이 좋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허리와 어깨 통증이 심해 주사, 약물치료에 물리치료며, 한방치료까지 안 해 본 것이 없었는데 몸이 쉽게 낫질 않았다.

1여 년을 고생하다 시작한 것이 108배와 명상이었다.

한 6개월을 새벽에 일어나 매일 108배를 하고 명상을 했더니 건강 회복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 당시에도 어떤 종교적 의식이라기보다 내겐 하나의 절 운동법이었다.

또한 명상을 하면서 차분하고 편안한 아침을 맞이하다 보니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 등산길에 오르거나 산책을 하러 나설 때에 절이 있으면 들어가서 절을 올리고 잠시 머물다 오곤 했다.


어느 날 지인이 내가 마음에 관심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제대로 마음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며 이 곳을 소개해 주었다. 30년 이상 수행과 기도를 해 온 맑고 깨끗한 도량이라며 마음공부를 올바르게 배워 나갈 수 있을 거라 했다.


서울에 올라와서 늘 그런 마음이었다.

마음이 복잡하고 시끄러울 때, 힘이 들 때 편히 쉴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참 좋겠다고….

내게 그런 곳이 없었다.

어딘가로 가고 싶어 집을 나서면 늘 같은 심정을 대면하기 일쑤였다.

갈 곳은 많은 데 갈 수가 없는 아이러니….

어디로 향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고, 좀처럼 한걸음을 내딛기 쉽지 않은….

그 막막함과 막연함 속에서 내 발은 갈피를 찾지 못한 채 늘 제자리를 맴돌았다.


소개해 주신 분을 따라 절을 방문했다.

이곳은 누가 말해주지 않으면 아무도 절이 있는지 모를 곳에 위치해 있었다. 어느 한 건물 6층의 문을 열자 절인 것을 가장 먼저 알게 해 주는 것은 바로 향 냄새였다.

냄새가 코 끝에 감도는 그 순간, 마음이 편안해졌다.

서울 어디서도 쉽게 느낄 수 없었던 아늑함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이 절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 템플 라이프의 시작


“스님 저 잠시 절에서 지낼 수 있을까요?”
“그래요. 그렇게 해요.”


나의 조심스러운 요청에 내 마음을 알아차린 듯 조용한 미소를 지으며 스님은 흔쾌히 받아주셨다.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짐을 싸서 절에 들어왔다. 사실 짐이랄 것도 별로 없었다.

가벼운 티와 편한 바지 몇 벌, 몇 가지 생필품이 전부였다.

‘잠깐 마음을 추스르고 안정을 찾고 오자’라는 생각으로 들어온 것이기에 보름에서 길어야 삼칠일(21일) 정도 머무를 것으로만 예상했다.


“스님, 저 왔습니다.”

“잘 왔어요. 얼마나 지낼 생각이지요?”

“저 보름 정도 있으려고요.”

“적어도 100일은 있어야지요.”

“네?! 100일이요??”


100일이란 숫자는 내게 까마득하게만 여겨졌다. 3개월 이상을 절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인데 직장을 그만두고 서울에서 홀로 자취생활을 하는 나에겐 그 시간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빨리 마음을 잡고 얼른 일자리도 마련해서 생활을 해 나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는데 100일이란 시간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스님, 안돼요. 저 일도 새롭게 구해야 하고, 매달 고정적으로 나가는 비용도 꽤 있고, 생활비도 벌어야 하고….”

“절에서 살면 무슨 돈이 필요해요? 우선 나가는 비용들은 잠시 중단을 시켜놓고...

일단 100일은 지내보도록 해요. 우선 입재(入齋 :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다) 하기 전에 만 배부터 하세요.”


짧은 템플스테이를 계획하고 있다가 전혀 예상치 못한 템플 라이프에 가까운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에 몹시 당황했다. 이윽고 만 배를 하라는 말에 2차 당혹감이 찾아와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아… 어…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지만 잠시 동안 깊게 숨을 고른 후, 나의 선택과 결정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맞아. 100일은 지내봐야겠지….

무언가를 달성할 때도 그렇고, 확실한 변화가 있으려면 100일 정도의 시간은 필요하니까.

그리고 100일 정도 바깥세상과 멀어진다고 해서 하늘이 무너지는 것도 아닌데, 뭘…….

이번 기회에 몸과 마음을 깨끗이 정화하자.

본래의 내 모습을 회복하자.

그래, 한 번 해 보자!’


두 주먹을 불끈 쥐며 결연한 의지를 다지듯 절에서의 첫 날을 맞이했다.



# 쫄지 마, 겁먹지 마!


“10,000배를 하라고요?”

“금방이에요. 하루 1,000배씩 10일이면 끝나는걸요.”


절에 들어와서 지내기로 결정했다면 입재하기 전에 만 배를 하라고 했다.

만 배라고 하면 108배를 100회 한 것, 정확히 말하면 10,800회의 절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 보살님이 그 말을 그렇게도 쉽게 내뱉는다. 1,000배 그거 별거 아니라며 베테랑인 분들은 3~4시간이면 충분히 하고도 남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쉬엄쉬엄 하라고 했다.

마치 그 말이 내게 큰 위로가 될 것이라 여기는 듯 밝은 미소를 띠면서….


몇 해 전에 6개월가량 108배를 해 본 경험은 있었다.

하지만 하루에 그 이상의 절을 해 본 적도 없었고, 최근에는 아예 절할 생각조차 한 적이 없었다.


처음에 만 배를 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아, 100일 동안 만 배를 하면 되겠구나.

그러면 하루에 300회 정도씩만 하면 되니까…

음, 그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지. 슬슬 하면 되겠다.’

라고 여유 있는 웃음을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오산이었음이 바로 드러났다. 만 배를 하고 시작하라니….

10,000이라는 숫자 앞에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


하루 1,000배씩 열흘이면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도

‘하루에 천 배??? 말이 쉽지 그게 가능해?

계속 절을 해 온 사람이 아닌 나에게 이건 너무 과한 숙제야….’

하고 큰 바윗덩어리를 짊어진 느낌이었다. 해보지도 않고서 지레 겁을 먹은 것이다.


‘휴… 우선 해 보자!’

어둠이 그윽하게 깔린 5시의 새벽 예불 시간부터 시작해서 오전 10시의 사시예불을 지나 오후 17시의 저녁 예불을 지날 때까지 나의 절은 계속 되었다.

절을 하는 횟수를 세기 위해 108배를 끝낼 때마다 머리맡에 사탕 하나씩을 놓아두었다.

그렇게 시작한 절인데 저녁 무렵이 되니 내 머리맡에 10개의 사탕이 놓여 있었다.


‘어머나! 내가 1,000배를 해냈다니!’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이 볼을 타고 또르르 흘러내렸다.

짜릿한 감동이 일었다. 들뜨고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처음에는 108배를 하고 잠깐이라도 휴식을 취해야만 다시 절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하고서는 단번에 200배를 하는 것이 가능해지더니 어느새 300배를 쉬지 않고 하고 있었다.


‘어라?! 하니까 되네?!’


꼭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조금씩 조금씩 쪼개서 하다 보니 오늘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천 배를 달성한 것만으로 턱없이 높게만 느껴지던 ‘만 배 절하기’라는 목표에 성큼 다가선 느낌이다.

1,000배를 달성한 첫 기쁨은 매우 달콤했다.


‘그래, 나도 잘할 수 있는 사람이야. 괜히 쫄지 마. 겁먹지 마!’

하고 내게 용기를 주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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