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이 조각난 관계, 깨져버린 신뢰, 오랫동안 공들였던 목표의 상실이 주는 고통을 받아내기란 쉽지 않았다.
생각이 쉬지 않았다. 날 가만히 놔두질 않았다.
절을 한다는 것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한없이 유약해진 나를 살리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절박하고 간절한 기도였다.
그렇게 반복하기를 어느새 삼천배를 훌쩍 넘겼다.
몸을 낮추고 고개를 숙이는 대신 진실된 마음과 간절함이 하늘 높이 닿은 것일까.
성난 파도처럼 나를 집어삼킬 것 같은 괴로움이 이내 잠잠해져 갔다.
좀처럼 내버려 두지 않고 내 머릿속을 헤집던 생각들이 조금씩 나를 놓아주기 시작했다.
지독하게 나를 괴롭히던 상대에 대한 미움, 분노의 감정들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눈물과 땀이 되어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진흙탕 속 찌꺼기가 가라앉고 난 후 물이 맑아지듯 힘들고 지친 몸과는 달리 마음은 개운해지고 머리는 한결 가벼워졌다.
이제 겨우 삼천배를 했을 뿐인데 삼천배의 위력은 생각 이상으로 강력했다.
그 어떤 손님이 찾아와도 삼천배를 해야만 만나주셨다는 성철스님이 왜 그러하셨는지 비로소 이해되었다.
절은 실상 자기 자신에게 하는 것이다. 어떤 상(像)이나 그림이나 조각에 절을 해도 결국은 자신에게 돌아온다. 비록 흙덩어리나 썩은 나무에 절을 했더라도 성심을 다했다면 그 간절한 마음이 자신을 정화시킨다.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셨다. 나로 인해 그대들이 공경스럽게 되는 것이다. - 성철 스님
오늘, 그토록 나를 괴롭히던 고통의 감옥에서 해방되었다!
# 부처님은 정말 다 알고 계실까?
오늘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절은 계속 되었다.
어느덧 6천 배를 넘어섰다.
매일 절을 하며 ‘감사합니다’를 수도 없이 외었다.
지금의 내 상황을 기꺼이 받아들이려고, 오랫동안 어두웠던 내 마음에 밝은 빛을 비추려고 안간힘을 써왔다.
마음의 지옥에서 이제 겨우 빠져나왔으나 후유증이 채 가신 건 아니었다. 괜찮다가도 불쑥 그 생각이 떠오르면 울컥하기 일쑤고, 서운한 마음이 내 머릿속을 마구 휘저어놓는 건 여전했다.
오늘 하루 두 군데서의 연락을 받았다.
오전 11시쯤 예전 직장의 동료에게서 전화가 왔다. 갑작스러운 동료의 연락에 반갑고 놀라웠다.
요즘 어디서 뭐하냐는 말에 선뜻 답이 나오지 않았다.
뜬금없이 “절에 있어요”라는 말과 여기에서 지내게 된 상황을 일일이 말하고 싶지 않았다.
전화를 한 이유인즉슨 우리가 함께 일했던 회사의 경쟁사로 이직하여 근무 중인데 그 당시 함께 근무했던 본부장님께서 나를 찾으셨다고 했다. 현재 회사에서 교육 담당자의 충원이 필요한 상황인데 나를 알고 있는 동료에게 연락을 취해보라 했단다.
한마디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온 것이었다.
일이야 했던 분야의 업무라 바로 투입되어도 큰 무리는 없었고 제시한 연봉도 꽤 괜찮았다.
그 말을 듣자 잠시 마음이 흔들렸다.
엄마도 보고 싶고, 집에서 집밥 먹으며 안정적인 생활을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동료가 전해준 마지막 말 한마디가 뇌리에 남았다.
“민정 씨는 꼼꼼하고 실수가 없어서 다들 좋아했잖아요. 본부장님도 맡겨놓으면 따로 입댈 게 없는 친구라며 민정 씨한테 먼저 연락해 보라고 하시더라고요.”
본부장님께 감사하다는 말씀 전해달라고 부탁하며 생각해 보겠다고 하고서 전화를 끊었다.
오후에는 퇴사한 직장에서 연락이 왔다.
퇴직금 정산이 처리 완료되었다는 무미건조한 문자였다. 그러한 남긴 말 뒤 어떠한 인사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메시지를 보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 씁쓸함의 뒤끝은 잠시나마 잊고 있었던, 나에게 비수를 꽂게 했던 그 말을 다시금 생각의 수면 위로 떠오르게 했다.
“당신이 도대체 뭐하는지 모르겠어요!
(모르겠어요!) (모르겠어요! × 100 돌림말)”
맡겨 놓으면 따로 입댈 게 없다던 그 사람도, 도대체 뭐하는지 모르겠다는 그 사람도 같은 한 사람, 바로 나였다.
똑같은 사람을 두고 너무나 다른 평가를 받은 아이러니….
‘피식….’
이 상황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이어서 안도의 한숨을 크게 쉬었다.
그동안 매일 진심으로 기도한 내 맘을 부처님이 알아주신 걸까?
마음을 밝게 바꾸려고 애쓰는 나를 갸륵하게 여기신 건지, 상처 받은 영혼을 달래주기 위함인 건지 전 상사의 스카우트 제의는 존재의 가치를 부정당했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처리가 깔끔하지 못했던 탓에 잡음이 있을 거라 염려했던 퇴사 처리도 순탄하게 해결됐다.
방석을 바르게 하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리고 불상을 올려다보며 마음속으로 외쳤다.
‘부처님, 정말 제 마음을 다 알고 계신 건가요?
제 말이 들리시나요?’
감사의 기도로 마음을 밝은 방향으로 향하였더니 꼬였던 일이 쉬이 풀리고 감사할 일이 내게 오는 듯하다.
다행이다. 원망의 마음으로 마지막 장면을 장식하지 않을 수 있어서…….
# 내 맘을 지키는 게 먼저야
어제 전화를 받고서 이런저런 생각이 머릿속을 바쁘게 돌아다녔다.
솔깃한 제안이었다. 내가 지금 왜 절에서 이러고 있으며, 힘든 절을 그만둘 수도 있는 그럴듯한 기회였다.
서울로 상경했을 때의 목표에 대한 결과물이나 성과를 얻지는 못했지만 집에 내려갈 수 있는 합당한 이유가 되었다. 엄마도 들으면 기뻐할 만한 소식이었다. 그리고 타지에서 고생하면서 변변치 않은 음식을 먹고 찌든 생활 하느니 아늑하고 포근한 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기도 했다. 달콤한 유혹이었다.
한참 동안 눈 앞에 놓인 이익을 계산하느라 여념이 없는 나를 발견하며 잠시 멈칫했다.
스스로 겸연쩍었다. 그러고는 생각을 멈추고 내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기로 했다.
‘내려가서 바쁘게 지내다 보면 지금 당장엔 편할 수도 있겠지. 당분간 적응하느라 다른 생각할 겨를 없이 잊고 지낼 테니까.
따로 직장을 구해야 하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골치 아픈 일 없이 안정적인 수입도 생기는 거고.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이것이 과연 진짜 다행인 일일까? 잠깐 내리는 비를 피하는 것에 불과하지 않을까?’
고요한 침묵 속에서 내게 묻고 또 물었다.
‘지금 내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봐. 지금 나에게는 돈이나 일할 직장이 필요한 게 아니야.
진짜 내 마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니?’
그렇게 차분히 있기를 잠시….
마음이 내게 말을 건넸다.
마음 깊은 곳 어딘가에서 무언의 답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지금은 내 맘을 지키는 게 먼저야. 내 건강을 챙기고 내 마음을 돌보는 게 중요해!’
마음 깊숙이 내면의 소리를 따라가 보니 고민할 여지가 없었다. 애초에 고민거리조차 되지 않는 일이었다.
지금 여기서 모든 걸 정리하고 돌아간다면 괴로움을 잠시 회피하는 것일 뿐이었다. 또다시 바쁜 일상에 파묻혀 똑같은 생활을 반복하며 힘들어할 내 모습이 눈앞에 빤히 보였다.
지체할 것 없이 바로 전화를 걸었다. 감사의 표현과 함께 정중하게 거절했다.
“벌써 결정 내린 거예요? 좋은 조건인데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게 어때요? 너무 아까운데….”
“감사해요. 저도 좋은 기회를 주신 건 아는데 지금은 제게 필요한 자리가 아니어서요.”
아쉬운 마음 같은 건 없었다. 오히려 시원하고 몹시 개운했다.
나의 이런 선택과 결정이 맘에 들었다.
나를 속이지 않고, 내 마음에 귀 기울인 것에 나 자신이 뿌듯하고 고마웠다. 그래서 그런지 그 어떤 다른 날보다 수월하게 절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