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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말고 절로 들어갔습니다
05화
불쌍하고 문제 있는 사람들이 오는 게 아니에요
33살 직장인, 회사 말고 절로 들어갔습니다
by
신민정
Nov 10. 2019
# 산 넘어 산
“만 배를 잘 해냈습니다. 입재(入齋,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는 일)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오늘부터 매일 경전을 소리 내어 읽으세요.
무슨 말인지 잘 이해되지 않을 겁니다.
몰라도 계속 읽으세요.
108 회독 마칠 때까지 계속하세요. ”
“헉! 108 회독이요??”
만 배가 끝나자마자 내게 주어진 것은 경전 읽기였다.
불자가 아니었기에 불교 경전은 내게도 생소하기만 했다.
경전을 108회 음독(音讀)하라는 기도를 주신 것에도 심히 놀랐지만 그보다 더 나를 놀라게 만든 건 내 손에 쥐어준 책의 무게와 두께 때문이었다.
붉은색 가죽 표지에 금빛 찬연하게 《묘법연화경》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성인조차 한 손으로 들기 힘들 정도로 꽤 묵직한 이 경전에 나는 단번에 압도되었다.
그러면서 마음속에는 약간의 의심과 염려가 스멀스멀 밀려오기 시작했다.
‘이거 언제 다 읽지?
과연 읽는다고 내가 이해나 할까?
아무리 내가 절에 있다지만 나가서 할 일을 준비하려 했는데….’
휴….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시작도 전에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만 배만 끝나면, 하라는 절만 다 하면 예불 시간 외에는 자유로울 줄 알았다.
그런데 또 내 앞에 넘어야 할 큰 산이 기다리고 있다니….
내 입술 언저리에서 말이 길을 잃었다.
이 또한 받아들이기 위해 잠시 침묵의 시간이 필요했다.
‘스님이 하라고 하신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
그래, 까짓 거 한 번 해 보자! ’
만 배를 할 때도 그랬다.
해야 된다고 해서 그냥 했다.
절을 왜 해야 하냐고, 하고 나면 무엇이 좋으냐고 묻지 않았다.
그렇지만 하면서 깨달았고, 생각한 것 이상의 많은 배움이 있었다.
경전 읽기 또한 그러하겠지.
또 한 번 굳게 마음먹고 경전을 펼쳐 들었다.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약칭 법화경이라고 일컫는 경전이다.
풀이하자면 더러운 흙탕물에서 자라지만 더러운데 물들지 않는 흰 연꽃과 같은 올바른 가르침이라고 한다.
이 경전을 읽고 나면 내 마음도 연꽃과 같이 청정해지려나 하는 작은 기대를 품어본다.
그리고 속으로 외쳐본다.
‘지금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이 나에게 복이 되기를,
지금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이 나에게 덕이 되기를…
그리고 내가 하는 모든 것들에 추호의 의심도 하지 말기를!’
# 걸레 vs 마음
‘오늘은 내가 좀 해 볼까?’
나의 주 생활 근거지는 70여 평이 되는 법당이다.
매일 새벽 5시 정각에 시작되는 새벽 예불 10분 전부터 밤 10시 취침 전까지 하루 온종일 여기서 머무른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잠을 자고 공양을 하는 곳은 따로 있다. 10평 남짓 되는 공양간이다.
음식을 만들거나 공양을 할 때는 함께 사용하지만 밤이 되면 온전히 나만의 아지트가 된다.
절에서 지내는 요 며칠 사이 신기한 것을 한 가지 발견했다.
특정 사람에게 특정 소임을 맡기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일이 돌아간다는 것이다.
가령, 청소 당번을 정해두지 않아도 누군가가 청소를 한다거나 설거지 당번을 정해두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사용한 컵을 씻어놓는 등 모든 것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
절에 괜히 다니는 게 아니었다.
생활 곳곳에 수행의 흔적이 깃들어있다.
새벽 6시 공양을 마치고 법당에 내려오니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이 오기 전에 오늘은 내가 먼저 청소를 해야겠다 싶었다.
우선 청소기를 손에 잡고서 법당 전체를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흩날리는 먼지들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노라 작정하면서….
일단 눈에 보이는 먼지들이 자취를 감춘 것을 확인하고는 걸레질을 시작했다.
모서리 부분도 그냥 지나치지 않으려 꽤나 신경 썼다. 구석구석까지 깨끗이 닦았다.
그렇게 한참을 청소하고 나니 이마에 소스락소스락하게 구슬땀이 맺혔다.
법당 바닥만큼이나 내 마음까지 환해진 기분이었다.
청소를 마친 걸레를 들고서 화장실로 향했다.
“아앗, 더러워!”
온 바닥의 먼지를 훔쳐낸 걸레를 보고 나도 모르게 자동적으로 반응했다.
순식간에 튀어나온 말에 나 역시 놀랐다.
검게 변한 걸레를 빠는 동안 많은 먼지 더미와 머리카락, 구정물이 내 손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오물이 묻은 걸레를 씻어내며 이러한 생각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과연 눈에 보이는 이것들이 더러울까, 내 마음속 찌꺼기들이 더 더러울까?’
잠시 그러한 상념에 잠겨있다 내 손을 보자 손에 묻은 오물은 별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에 놓인 비누를 집어 들었다. 비누칠을 하고 흐르는 물에 헹군 걸레는 금세 깨끗해졌다. 손세정제로 뽀득뽀득 닦아낸 내 손은 좋은 향기까지 났다.
이처럼 손에 묻은 때는 다시 깨끗하게 씻으면 금방이라도 깨끗해지지만 마음의 때는 그렇지 않다.
오랫동안 씻어내고 정화시켜야 다시금 맑아질 수 있다. 그것에는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내 마음의 때는 얼마나 씻어내야 할까? 얼마나 오랜 시간이 필요한 걸까?’
이 작은 청소 행위는 내게 또 하나의 질문을 남겼다.
# 불쌍하고 문제 있는 사람들이 오는 것이 아니에요
‘사중? 항하사? 벽지불? 나유타? …….
뭐라는 거야?! 대체 무슨 말이야?!’
스님이 주신 방편에 따라 오늘 아침에도 경전 읽는 기도는 계속되었다.
처음 접하는 불교 용어들이 많이 낯설고 어려웠다.
정녕 우리말 해석이 맞나 싶을 정도로 숱한 외계어들이 등장했다.
눈을 통해 입력된 글자들은 뇌에 머물기를 거부하고 들어온 그 즉시 달아나는 느낌이었다.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 내용들로 가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저 경전을 큰 소리로 읽어나갔다.
지금 내가 절에서 할 수 있는 건, 그리고 또 해야 하는 건 경전 읽기이므로….
만 배를 할 때에는 절하는 것에 매달렸다고 한다면, 지금은 매달리는 대상이 경전으로 바뀌었다고나 할까….
아직은 생각이, 감정이 불구덩이를 헤어 나오질 못했다.
잠시 빠져나왔다가도 나도 모르게 다시 그 속을 헤매고
있었다.
이런 나를 진정시킬 무언가의 도움이 아직은 필요했다.
그렇게 쉼 없이 경전을 읽어나간 지 두어 시간이나 흘렀을까….
가슴 저 편에서 갑작스레 뭔가가 솟구치기 시작하더니 눈물방울이 뚝하고 떨어졌다.
그렁그렁 괴었던 눈물은 이내 두 뺨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체할 수없이 흐르는 이 눈물을 가로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도대체 뭐가 그리 힘들어서 지금, 내가, 이렇게 이곳에서 이러고 있지?
마음에 무슨 고통이 그리 심하다고…….
내가 이렇게 아파하는 걸까?’
경전을 읽다가 불현듯 함께 했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오랫동안 한 배를 타기로 했던 사람들인데 서로에게 알게 모르게 스며든 갈등, 스트레스로 인해 그 배에서 허무하게 하차할 수밖에 없게 된 사실이 한탄스러웠다.
그들이 이러고 있는 내 모습을 본다고 생각하니 괴롭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그들로 인해 내가 여기에서 이러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억울하고 서글픈 마음이 가슴을 찔러댔다.
눈물샘이 고장이라도 난 듯 한참을 쏟아냈다.
희뿌옇게 흐려진 시야에 글자들이 일렁이다 사라져 가기를 수차례 반복하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그날 저녁, 스님께서 나를 조용히 부르셨다.
‘무슨 일이지? 내가 뭐 실수라도 했나?!’
조금은 긴장한 상태로 스님을 뵈었다.
스님께서는 나지막하게 내게 한 말씀 건네셨다.
“우리 절에는 불쌍하고 문제 있는 사람들이 오는 것이 아니에요. 나는 그런 사람을 받아준 적이 없습니다.”
나의 마음을 눈치채신 걸까?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었다.
스님의 그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이 담겨있었다.
차갑게 얼어붙어있던 내 마음은 어느새 봄 눈처럼 사르르 녹아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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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말고 절로 들어갔습니다
03
삼천배, 미움도 분노도 씻어내리다
04
명백한 진실, 일체유심조
05
불쌍하고 문제 있는 사람들이 오는 게 아니에요
06
나, 이대로 괜찮은 걸까?
07
마음속 깊이 걸려 있는 게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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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읽고 쓰는 사람 산.책.녀.(산과 책과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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