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 깊이 걸려 있는 게 뭘까요?

33살 직장인, 회사 말고 절로 들어갔습니다

by 신민정

# 마음속 깊이 걸려 있는 게 뭘까요?


절에 들어오기 전 내 건강 상태는 최악이었다.

두통과 현기증, 위경련, 비타민D 결핍증, 바이러스성 피부질환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질병의 대부분의 원인이 스트레스, 면역력 저하로 인한 것이었다.

어찌 보면 이와 같은 질병이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 당시 내 상황을 보자면 애석하게도 이 질병에 걸린 것이 오히려 더 자연스럽게 보이니까….


돌이켜보면 나는 버티다 버티다 못해 번아웃 상태에 이르렀다.

아닌 게 아니라 이참에 번아웃 증후군을 검색해보았다.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하여 정신적, 육체적으로 기력이 소진되어 무기력증, 우울증 따위에 빠지는 현상이라 소개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원인으로는 주로 가중된 업무, 미비한 보상, 불공정한 작업, 가치와 충돌하는 업무, 업무 내 커뮤니티의 부재 등이 있다고 했는데 아뿔싸! 모두 내게 해당되는 말이라니…….


해가 뜨기 전에 출근하고, 해가 지고도 한참 지나서야 퇴근하니 해를 구경할 시간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비타민D를 보충하기란 쉽지 않았는데 피검사의 결과는 다소 충격이었다.


“장시간 실내에서 근무하다 보면 비타민D가 부족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 수치가 갓 돌 지난 아기보다도 낮아요. 영양제 꼭 챙겨 드시고 6개월 뒤 다시 한번 검사해봅시다.”


1살 아기보다도 낮은 수치라니….

꽤나 충격이었다.

그런데 그것보다도 더 나를 애먹인 것은 바이러스성 피부질환이었다.


이 또한 면역력 저하로 인해 감염된 것이라 했다. 그리고 들른 병원들마다 의사 선생님들이 하나같이 짜 맞춘 듯 말씀하셨다.


“요즘 스트레스 많이 받으세요? 단시간에 이렇게나 많이 확산된 걸 보면 스트레스가 상당한 것 같은데…….”


얼굴, 목에 생긴 피부질환으로 인해 레이저 치료를 받으면서 한 달 급여를 쏟아부어야 했다.

200여 군데가 넘는 곳에 레이저를 쏘아댔으니 얼굴이 그야말로 처참한 상태였다.

차마 눈뜨고 보기 흉할 정도라 한동안 마스크로 얼굴과 목을 꽁꽁 가려야만 했다.

많이 속상하기도 했고,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이 그렇게 한순간에 날아가는 것을 보고도 절망적이었다.


가장 힘든 건 발에 생긴 피부질환이었다.

체중에 의해 눌리다 보니 낫기가 쉽지 않고 세균이 피부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다 보니 완치하기 위해서는 생긴 기간만큼이나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주로 냉동요법으로 치료를 받았는데 드라이아이스나 액체 질소로 병변을 급속히 냉동하여 파괴하는 방법이다.


치료받을 때에도 소스라칠 만큼 많이 아프기도 하지만 치료 후가 더 곤욕이었다. 통증으로 인해 진통제가 필요한 건 물론이거니와 일주일 가량 제대로 걸을 수 없게 만들었다.

최대한 치료 부위가 닿지 않게 하기 위해서 다리를 절뚝거리며 다닐 수밖에 없었던, 나를 매우 불편하고 고달프게 만드는 몹쓸 질병이다.


계속해서 꾸준히 치료를 받는 것이 필요했다.

절에 있는 동안 외부 출입은 삼가는 것이 원칙이긴 했으나 발 치료를 위해 스님께 허락을 구했다.

기꺼이 승낙해 주셨고 이렇게 해서 한 달에 한 번 10분 거리에 있는 병원에 다녀올 수 있었다.

잠깐의 외출인데도 불구하고 바깥공기를 마시고, 바깥세상에 발을 디디는 것이 그렇게나 달콤할 수 없었다.

치료를 받고서 스님께 인사를 드렸다.


“스님, 잘 다녀왔습니다.”

“그래요. 뭐라고 하던가요?”

“이미 뿌리가 깊게 박혀있을 뿐 아니라 주변에 꽤 많이 번져있는 상태라 최소 1년 이상 오랜 시간 치료를 받아야 한대요. 휴……. ”

“몸은 내 마음의 상태를 반영한다고 하죠.

그렇게 깊숙이 뿌리내릴 만큼 본인 마음속 깊이 걸려있는 게 뭘까요?”

“네……?”

“열심히 기도하면서 잘 찾아봐야겠네요.”


몸과 마음은 하나라는 걸, 마음이 아프면 몸이 아프다는 것은 익히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내 경우에 비추어 한 번도 생각지 못한 질문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나를 이토록 병들게 하고 아프게 한 그 근원은 무엇일까?’


절에 있으면서 풀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질문이 내게로 왔다.




# 같은 하늘 아래 다른 세계


새벽 5시가 되면 어김없이 울린다.

청아한 목탁 소리가….

법당 전체에 울려 퍼지는 그 소리는 잠든 어둠을 깨고 세상을 밝힌다.

스님의 염불과 이 시간 함께 하는 도반들의 기도문 독송 소리가 아침을 깨운다.


20여분의 독송이 끝나면 모두가 “관세음보살”을 큰소리로 부르며 절을 올린다.

입으로는 관세음보살을 끊임없이 부르짖고, 몸으로는 겸손하게 고개 숙여 절하고, 마음으로는 나의 소원을 가슴 깊이 새기는 것이다.

모든 의식이 끝나면 자리에 앉아 허리를 곧게 세우고 《해탈 서원문》을 읽는 것으로 새벽 예불이 종료된다.


해탈(解脫)은 몸과 마음에 심한 고뇌를 불러일으키고 나를 속박하는 번뇌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말하는데 불교에서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이상 목표다.

절에 오는 불자들은 그것을 이루기 위해 매일같이 기도와 수행을 반복하며 마음을 닦고 있다.


나 역시 해탈을 이루고자 하는 서원(誓願, 원을 세우고, 그것을 이루고자 맹세하는 일)이 담긴 글을 매일 아침 읽고 있다.

부처님을 믿느냐 하나님을 믿느냐, 종교가 있느냐 없느냐에 관계없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괴로움과 고통에 초연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매 한 가지니까.


2페이지 남짓한 분량의 《해탈 서원문》을 읽다 보면 그 순간만큼은 마음이 경건해지고 숙연해진다.

그중 읽을 때마다 한참을 머무르게 되는 구절이 있다.

그곳에서 두 눈이 멈춘다.

얼마간 그 구절을 차분히 음미하고 곱씹는다.


내 몸은 영원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모든 현상은 내 마음이 빚어낸 환상임을 알게 하소서.
감각으로 인한 왜곡으로 실재(實在)가 아닌 것을
실재인 것으로 착각하지 않도록 해 주소서.
모든 것은 내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이 비추는 그대로 보이는 것과 같으니 나의 내면 거울을 통해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임을 알아차릴 수 있게 하소서.
끝없는 기도와 수행으로 마음속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 주소서.


내 안에 있는 지혜의 눈이 감기지 않도록, 언제나 깨어있어 실상을 바로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잠시 묵상에 잠긴다.


이렇게 시작하는 하루는 지옥철에 억지로 욱여넣은 몸을 싣고서 찌푸린 얼굴들을 맞이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달리 흘러가는 시간의 경계 속에 살아가는 느낌이다.

똑같은 하늘 아래 다른 세계에 존재한다고나 할까?

매우 고요하고 평화롭다.


지금 이 시간처럼 나의 하루도, 나의 마음도 평온히 보낼 것을 다짐하는 시간이다.

오늘 하루를 살아낼 희망을 건져 올리는 시간이다.

단 한 번뿐인 오늘을 잘 살아보겠노라고,

새날을 맞이한 나에게 또다시 용기를 건네며….




# 오. 행. 시 (오늘의 가장 행복한 시간)


절에 있으면서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을 꼽으라면?

매일 어김없이 두 번의 ‘예정된 행복’이 나를 찾아온다.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1시간의 새벽 예불과 아침 공양 준비부터 설거지까지, 이 모든 것을 다 마치고서 법당에 내려와도 시계는 오전 7시를 채 가리키고 있지 않다.

밖에 있었더라면 서둘러 출근한다고 정신없이 바쁠 이 시간이 이곳에서는 하루 중 가장 여유로운 시간이 된다. 법당에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의 신도들만 계실 정도로 한산하다.

그 가운데에서도 각자 기도를 하거나 수행을 하기에 여념이 없다.


고로 오전 7시~8시 사이는 오늘의 수행과 기도를 하기 전 내게 숨 고르기 하는 시간이라고나 할까?

이 시간이 되면 자연히 얼굴에 환한 미소가 가득 피어난다.

매일 차분히 기도와 수행을 한 보답으로 오늘 하루 건네받는 선물과도 같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따뜻한 차의 향기를 음미하며 잔잔한 음악과 함께 좋아하는 책을 보노라면….

정말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가슴 가득 벅찬 행복을 누린다.


또 한 번의 선물은 바로 오후 3시경에 찾아온다.

창문으로 비껴 들어온 햇살이 법당 안을 가득 드리울 때 내 마음에도 밝은 빛이 함께 스민다.

쏟아지는 햇살을 가만히 지켜보다 그 눈부심에 눈이 시리기도 하지만 이렇게 말없이 햇살과 마주하는 시간이 도대체 얼마 만인가….

자연이 주는 따스함이 좋았고, 그 포근함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렇게 쉼 없이 달리고 팍팍한 삶을 살았던 것인지….

따뜻한 햇살을 느끼고 감상한다는 것 자체를 생각도 못 한 채 잊고 살았다.


내가 매일 느끼고 있는 큰 행복에는 책 한 권, 차 한 잔, 햇살만으로도 충분했다.

늘 내 곁에 있던 행복들을, 내게 기쁨을 주는 일상의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살았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 미래의 행복만을 좇고 살았다.

헛된 것을 좇느라 꿈이라는 이름 하에 많은 것을 놓치고 살았던 건 아니었는지….


지금 여기, 이곳에서의 기쁨과 행복의 소중함을 여실히 느끼며 몇 가지 다짐해본다.

이제는 더 이상 나를 짓누르고 혹사시키지 않겠노라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좋아하는 일에 마음을 두고서 내 감정을 잘 살피며 살아가겠노라고.

현재에 머무르며 ‘지금, 여기’를 가장 행복한 시간으로 만들겠다고.

그렇게 해서 내게 오는 사람과 상황들을 자연스럽고 유연하게 맞이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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