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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말고 절로 들어갔습니다
08화
미움도 그리움이던가
33살 직장인, 회사 말고 절로 들어갔습니다
by
신민정
Nov 12. 2019
# 미움도 그리움이던가
“눈을 감고 천천히 호흡하세요.
들어오는 숨과 나가는 숨을 느껴보세요.”
수행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었다. 법사님의 말씀에 따라 눈을 감고 천천히 호흡만을 따라가려 노력했다.
처음부터 잘 될 리 없었다. 호흡을 지켜보기보다 주변의 기침소리나 작은 소음에 생각을 빼앗기기 일쑤였다.
아차 싶어 다시 호흡으로 돌아가고, 또다시 다른 곳에 의식이 빼앗겼다 돌아오기를 여러 번….
몇 번의 반복 끝에 고요하고 편안함 속에 머무를 수 있었다.
차분하고 평온한 상태를 느끼던 중 법사님의 다음 주문이 이어졌다.
“가장 행복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의 나를 떠올려보세요. 그때로 돌아가 밝게 웃어봅니다.”
가슴에 따뜻한 온기를 가득 담은 채 어느새 나는 강릉 바닷가를 거닐고 있었다.
구름 조각 하나 없는 새파란 하늘에서 내려온 따사로운 햇살이 우리를 비추었다.
기분 좋은 가을바람이 가볍게 뺨을 스치고 산뜻한 바다의 향기가 코 끝에 닿았다.
넘실대던 파도가 하얗게 부서질 때는 눈이 부실만큼 아름답게 반짝거렸다.
그곳엔 같은 꿈을 꾸었던 동료들이 함께 있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열심히 일하고서 떠난 즉흥여행이었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모래사장에 발을 담그고 천진난만한 애들처럼 뛰어놀았다.
그 순간만큼은 일도, 삶의 무게도 깨끗하게 내려놓고서 이 순간을 즐겼다.
세상에서 제일 못난 표정으로 사진을 찍으며 망가져도 보고, 아무것도 아닌 것에 깔깔깔 숨이 넘어갈 정도로 웃었다. 나이도, 역할도, 지위도 모두 잊은 채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어머나!’
그날의 기억 속에 흠뻑 젖어 환하고 웃고 있던 나를 알아차리고서 순간 얼어버렸다.
당혹감을 멈추지 못했다.
내가 얼마 전까지 많이 미워하고 분노했던 대상이었다.
그 사람들이 가장 행복하고 즐거웠던 순간에 나타나다니…….
앞으로의 우리의 비전과 나아갈 방향을 논의하며 장밋빛 미래를 바라보던 우리였다.
그랬던 관계가 1년 후 모래성처럼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너무 빨리 뜨거워졌고, 너무 빨리 식어버렸다.
정말 어처구니없이….
우리는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기도 전에 서로가 보기 싶은 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모두가 많은 아픔을 주고 많은 상처를 입었다.
너무 뜨겁지도, 그렇다고 해서 너무 차갑지도 않은 적정 거리를 거닐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다시는 건널 수 없을 만큼 아득히 멀어져 갔다.
따뜻했던 온기 대신 가슴이 저릿하고 아려왔다.
내게 많은 고통과 괴로움을 주었다고 야속하게만 생각했던 그들인데 내가 큰 기쁨과 행복을 준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너무 오랫동안 어두운 마음 안에 갇혀 그들을 바로 보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들도 얼마나 힘들었을까?
함께하는 동안 그들에게 밝고 좋은 에너지를 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또 한 번 알게 되는구나.
그때는 보지 못했던 것에 대하여,
나의 미성숙함에 대하여…….’
행복하고 찬란했던 그 순간, 그들만이 떠올랐다.
미움도 그리움이던가!
강렬한 미움이 짙은 그리움이 되어 자취를 남긴다.
# 내 입에 들어오기까지
“보시주은진언(布施主恩眞言) 옴 아리야 승하 사바하”
하루 세끼 공양을 하기 전 두 손을 모아 매일 외는 말이다.
이 진언(眞言)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거나 은혜를 입었을 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는 주문이라 한다.
딱히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나는 식사를 하기 전 감사의 기도나 의식을 한 적이 거의 없었다.
물론 식사 전후로 “잘 먹겠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정도의 인사를 전하기는 했지만 경건한 마음으로 정중하게 감사의 예(禮)를 올린 경험은 흔치 않았다.
“불교에서는 식사 전에 다음과 같은 기도를 해요.
그러니 앞으로는 이 진언을 기억하고 공양하도록 해요.”
처음 들어보는 말에 생소하기 만한 말을 따라 하려니 많이 어렵고 뭔가 쑥스러웠다.
입에서 잘 나오지 않았고, 기억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리 길지 않은 말임에도 공양할 때마다 자꾸만 잊어버려서 작은 소리로 조용히 얼버무리고 끝내버렸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공양을 하러 가기 직전 메모해 둔 것을 남몰래 공부(?) 하는 노력이 필요했다.
얼른 머릿속에 집어넣고 자신 있게 외치고 나서야 당당히 공양을 할 수 있었다.
매일 하루 세 번 이와 같은 의식을 올리게 되니 이제는 그 말이 자연스럽게 입에서 흘러나왔다.
짧은 시간이지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다 보니 이 음식이 내게 오기까지의 인연들에 대하여 생각해 보는 것에 이르렀다.
우선, 매 끼니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요리해 주시는 공양주 보살님들께 감사했다.
절에서는 고기 외에도 오신채(五辛菜)라고 해서 먹지 않는 채소가 있다. 마늘, 파, 부추, 달래, 흥거(한국에서는 대신 양파)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는 성질이 맵고, 향이 강해서 마음을 흩뜨려 수행에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들을 평상시 즐겨먹기도 하고 화학조미료가 들어간 음식과 육식에 익숙했던 내가 사찰음식에 적응할 수 있을까 내심 염려했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고기와 오신채가 빠진 음식을 먹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바깥 음식이 생각나지 않았다. 매번 공양시간이 기다려지고 즐거웠다.
이는 공양주 보살님의 요리 솜씨가 뛰어나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도 부처님께 올린다는 마음으로 음식을 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내가 먹는 것은 음식이 아니라 ‘정성’이었다.
그러니 어찌 맛이 없을 수 있겠는가.
또한 이 음식이 내게 오기까지 고생하신 분들의 노고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곡식이며 채소며 과일이 맛있는 음식으로 탄생하기까지 그것을 직접 재배하고 농사를 짓는 분들이 얼마나 땀방울을 흘렸을까? 이분들의 노고가 없었다면 내가 어떻게 이 귀한 음식들을 먹을 수 있었으랴.
추울 때나 더울 때나 자식같이 공들여 키운 농작물을 수확하여 제공해 주신 많은 분들께도 감사한 마음이 올라왔다.
또 한 가지 놓칠 수 없는 게 있다.
우리가 먹는 농작물이 자라는 데 있어서 자연의 도움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생명이 자라기 위해서 햇빛, 공기, 물, 흙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 외 바람, 온도, 습도 등 이 모든 것의 조화가 이루어졌을 때야 비로소 건강한 먹거리가 우리 앞에 오게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생각해 보아도
내가 먹고 있는 이 밥 한 끼에 자연과 모든 생명과 수천수만 명의 사람의 땀과
노력이 깃들어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의 사랑과 정성으로 내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찌하여 그동안 이러한 감사함을 느끼지 못했을까?
하물며 나는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살고 있을까?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해서 무심코 넘겼던 것들에 대하여 부끄러운 고백과 함께 뒤늦은 감사를 전해 본다.
# 용쓰는 껍데기
‘악!’
앉았다 일어날 때, 일어섰다 앉을 때 날카로운 외마디 비명이 튀어나왔다.
종아리가 터질 만큼 팽팽하게 붓고 오금은 근육이 끊어질 듯 당기고 무릎은 가만있어도 욱신거리는 총체적 난국이었다.
사실 통증은 삼천 배를 끝낼 즈음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때는 꽤 많은 절을 급하게 힘주어하다 보니 아플 수 있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허나
지금은 서둘러 만 배를 할 때만큼 무리해서 절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리 아픈 걸까.
한 50년의 세월이 더해졌을 때라야 느낄 만한 고통 같은데…….
단지 하루 세 번의 예불 시간에 108배를 하는 것뿐임에도 통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양반다리를 하고 좌식 책상에 앉아 장시간 경전을 읽는 것 또한 허리도 아프고 자세가 영 불편했다.
다리를 이리 바꾸고 저리 바꾸고 허리를 구부렸다 폈다 몸이 도무지 가만히 있질 못했다.
조금만 지나도 금세 자세가 흐트러졌다. 의식하는 순간 굽은 등과 허리를 꼿꼿이 세우려 애쓰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아이고 아파. 왜 이렇게 쑤시고 결리지?’
글을 읽는다고 책을 펴 놓고 있지만 글을 읽는 게 아니었다.
온통 몸에 마음이 빼앗겨버렸다.
열심히 본다고 보지만 여기도 아프고 저기도 아프다고 소리치는 온갖 잡념에 휘둘리고 있을 뿐이었다.
몇 시간이나 책을 붙들고 앉아있었지만 정작 제대로 읽은 건 과연 몇 페이지나 될까.
그렇게 산란하던 나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데 몇 개월 전 상사의 말이 불쑥 찾아들었다.
“내가 보기엔 열정이 식은 것 같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의 모습은 어디 갔나요.”
조금은 격앙된 목소리로 내뱉은 그의 말은 내게 가시처럼 꽂혔다.
무척이나 야속하고 억울했다.
아니, 난 그의 말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뭐? 나 정말 많이 아프고 힘든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있는 힘껏 쥐어짜서 이렇게나 열심히 하는데 어떻게 그걸 몰라볼 수 있지?
어느 누가 이만큼이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할수록 분하고 화가 치밀었다.
나의 힘들고 지친 상황을 헤아려 주지 않는 그가 많이 원망스러웠고, 나의 노력과 고생을 알아주지 않는 것이 한탄스러웠다.
그 상념에 잠시 빠져 있다 현재로 다시 돌아왔다.
지금의 나를 바라보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올라왔다.
‘열심히 한다고 하지만 정말 잘하는 걸까?
사실은… 그게 아닐지 몰라.
전혀 효율적이지 못한 채 그저 힘겹게 용쓰는 껍데기에 불과한지도…….’
몸과 마음의 균형이 깨지면 모든 것이 망가져버린다.
일도, 관계도, 삶도….
정녕 있어야 할 혼은 사라지고 육체만 남아 부단히 움직이고 있는 건 아닐는지…….
그때는 몰랐던, 그때는 차마 인정할 수 없었던 뼈아픈 자각이 일어난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에게 진솔하게 되묻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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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말고 절로 들어갔습니다
06
나, 이대로 괜찮은 걸까?
07
마음속 깊이 걸려 있는 게 뭘까요?
08
미움도 그리움이던가
09
돈 주고도 못 배우는 것들
10
노력 중독
회사말고 절로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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