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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말고 절로 들어갔습니다
09화
돈 주고도 못 배우는 것들
33살 직장인, 회사 말고 절로 들어갔습니다
by
신민정
Nov 12. 2019
# 화가 아닌 복이 많아서
“무슨 복이 그렇게 많아서 아침부터 밤까지 절에 있을 수 있을까요? 정말 부러워요!”
“마음 같아선 나도 절에서 살고 싶은데…
민정 씨가 지은 복이 많은가 봐요.”
“부처님께 큰 가피를 받고 있네요. 대단하십니다.”
“……”
한두 분이 아니었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한 말을 들을 때마다 당혹스러웠다.
그러한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미소인 듯 미소 아닌 미소 같은 어정쩡한 표정의
화답뿐
….
사실, 속마음은 그랬다.
‘엥? 대체 무슨 말씀 하시는 건지…….
몰라서 하시는 말씀인데요.
저는 복(福)이 많아서가 아니라 화(禍)가 많아서 들어오게 된 거예요.’
애초에 고상하게 휴식을 취하고 품격 있는 힐링을 위해 절에 들어온 것이 아니었다.
미쳐버릴 것 같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마지막 피난처이자 간절한 돌파구로 들어온 것이니까.
이런 속사정을 모르시니 그러한 말씀을 하는 것이라 여겼다, 얼마 전까지….
그런데 하루 이틀이 가고 한 달을 지내다 보니 그 말에 점차 수긍이 가기 시작했다.
절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쉴 새 없이 바쁜 일상에 지쳐있었고, 사람 때문에 멘탈이 나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결코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지옥의 현실을 생사의
길목에서야
겨우 탈출하게 되었다.
나에게 온 불행이라 여겼다.
큰 재앙, 즉 화(禍)로 인해 돈도, 직장도, 관계도 다 잃게 된 것이라 간주했다.
그런데 잃은 것이 아니라 얻은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차츰차츰 자라나기 시작했다.
정말 내가 복이 많아서인가?!
처절했던 현실의 갑옷을 과감히 벗어던질 수 있었던 것이, 지금 이렇게 제대로 숨 쉴 수 있고, 진짜 미소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이…….
일을 쉬지 못할 형편에 있었다면 지금의 이 시간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당장 벌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있었다면 여기 있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지내는 것 자체가 감히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아직도 괴로움 속에 허덕이고 고통 속에 헤어나지 못하는 순간들을 보내고 있는데 나는 여기서 내 건강을 돌보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동안 이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이것을 알게 된 이상 어찌 화라 부를 수 있겠는가.
어찌 복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생각 앞에 나는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내게 온 건 화가 아닌 복인 것이다.
기막힌 불행이 아니라 엄청난 부처님의 가피를 입은 것이야!
# 언제나 맑음
내가 머물고 있는 곳은 70평 정도 되는 법당과 작은 공양간 하나가 전부인 작은 절이다.
인터넷 검색이 되거나 지도 찾기에 등록되어있지도 않다.
대외적인 홍보를 한다거나 적극적인 포교활동을 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아는 사람들만 안다는 곳이랄까.
그래서 이 절은 늘 다니는 신도분들이 오랜 시간 이 절을 지켜왔고, 그들 주변의 가까운 지인들만이 이 절과 종종 인연을 맺으면서 지금까지 운영해 오고 있다.
비교적 절의 규모도, 신도수도 적지만 다니는 분들의 신심이나 애정만큼은 대단하다.
절에 와서 놀랐던 건 여기 오시는 신도분들이 이 절에 다닌지는 평균 15년 이상이었고, 30년 이상 다닌 분들도 꽤 많다는 것이다.
그만큼 신도분들께는 깊은 신앙심과 절에 대한 애정이 가득 묻어있는 곳이다.
또 한가지 놀라웠던 것은 절에 매일 같이 오셔서 기도와 수행을 빠지지 않고 하는 분들도 많이 있다는 것이다. 필요한 행사를 준비하고 청소를 하고, 공양주의 소임도 신도님들의 자발적 봉사활동으로 이루어진다.
종교가 없는 내가 보기엔 주 1회~2회 참여하는 종교활동도 적극적이라 생각했는데 내 집처럼 매일 같이 와서 기도를 하고 수행을 하는 모습을 보고선 적잖이 놀랐다.
그들에겐 그것이 곧 삶이자 일상의 한 조각이었다.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신을 믿고 따르는 마음은 한결 같겠지만 사람들이 보통 힘들고 어려울 때 종교에 더 의지를 많이 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절에서 살면서 발견하게 된 것이 하나 있다.
오랫동안, 그리고 자주 오시는 신도님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었다. 늘 표정이 밝다는 것이다.
환하게 잘 웃고 밝은 에너지를 주셔서 만날 때 마다 기분 좋게 만들어 주신다는 것이다.
좋은 일들만 가득해 보이고 걱정이란 전혀 없이, 편안한 날들을 보내고 계신 것만 같았다.
보이는 대로 그렇게만 생각했다.
그런데 절에 있다 보니 알게 모르게 짐작이 되거나 개개인의 사정을 눈치껏 접하는 경우가 있다.
매우 행복해 보이고 즐겁게만 보이는 분들인데 가족 중에 크게 아픈 분이 계시기도 하고 하는 일에 있어 꽤 어려움을 겪고 있으신 분들도 계셨다.
세상에! 그럼에도 어떻게 저렇게 환한 미소를 지을 수 있을까?
전혀 티가 나지 않았다.
그 미소나 행동에서 자신의 아픔을 숨기려 과장한다거나 억지 미소를 짓는 것이 아니었다.
자연스러운 웃음이었고,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늘 전해주셨다.
그래서 어느 날 한 분께 조심스레 여쭈어보았다.
“표정을 보면 늘 밝고 환하게 웃으셔서 저 역시 밝은 기운을 얻게 돼요.
근심이 전혀 없어 보이세요.”
“사실 마음이 많이 아프죠. 그렇지만 어쩌겠어요. 그래도 웃어야지요.”
짧은 대답과 함께 다시 환한 웃음을 보였다.
‘그래도 웃어야지요’라는 말 한마디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짙은 여운으로 남아 내 마음에 아로새긴 그 한마디.
나는 감정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나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진 사람이었다.
걱정이 있거나 화가 나거나 했을 때 감추질 못했다.
부정적 감정조차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굳이 드러낼 필요도 없었다.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드니까….
특히나 오랫동안 그 감정에 빠져있을 필요는 더더욱 없었다.
그건 나를 힘들고 지치게 만드니까….
살아가면서 어떻게 좋을 일만 있을 수 있을까.
누구나 한 가지 아픔이나 오래된 상처를 짊어지고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현재도 집안에 문제가 있거나 개인적인 힘든 일이 있을 때 왜 아프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나는 차이가 있었다.
그들은 웃을 수 있었고, 나는 웃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오랫동안 밝았고,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어두웠다.
힘든 일이 있어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그것에 매몰되어 자신을 더 아프고 힘들게 하지 않는 것, 어떤 상황에서도 밝게 웃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진 모습은 그들로부터 깊은 존경심을 느끼게 했다.
‘여기에서 다르구나. 이것이 바로 기도와 수행이 필요한 이유겠지.
나도 매일 진심을 담아 기도하고 수행하면 그럴 수
있지않을까?
나 역시 꾸준히 정진하다보면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
# 돈 주고도 못 배우는 것들
절에 들어와 살면서 알게 모르게 배우는 것들이 많이 있다.
서울에 올라와 혼자 자취를 하다 절에서의 공동체 생활을 경험하니 색다른 기분이다.
일종의 생활수칙에 따라 서로를 배려하고 협력해야 하는 것들….
가족이나 지인이 아닌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경험이 얼마나 될까.
학교와 회사 내 기숙사 생활을 하는 이들도 친구이자 동료라는 관계로 얽힌 이들이다.
따지고 보면 군대 생활 말고는 그러한 경험을 하는 일이 흔치 않다.
나이도, 살아온 환경도, 하는 일도 모두 다른, 공통분모라고는 없는 사람이 만나 함께 생활한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경험이자 배움이다.
내가 있는 절에서는 가령 아침 공양을 준비하거나 어린 행자님을 돌보는 일, 절에서의 행사를 앞두고 그때그때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는 일들을 함께 한다.
때로는 분담하기도 하고 누군가가 바쁘면 기꺼이 먼저 나서서 그 일을 해치우며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다.
상대에 대한 이해와 배려, 자비심을 더불어 익히면서 우리만의 색깔로 빚어낸 공동체를 만들어간다.
그중에서도 절에 살면서 얻는 가장 큰 수혜라고 한다면 스님과의 1대1 대담 시간이 아닐까.
이 시간 속에서 나는 완전히 발가벗은 상태로 스님을 대면하곤 한다.
스님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겹겹이 둘러싸인 내 껍데기들을 양파 껍질 벗기듯 벗어던진다.
가리거나 숨길 수 없다.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알지 못했던 내 안에 깊이 감춰졌던 것들이 하나둘씩 속살을 드러낸다.
나의 못난 잘못이나 허물, 오래된 아집과 편견, 그리고 투명하고 맑은 선한 마음까지….
다른 사람에게 쉬이 하기 어려운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럴 때 스님은 그저 묵묵히 모든 것을 받아주신다. 내가 뱉어내는 말과 표정, 몸짓에 대하여…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까지도.
오랜 기도와 수행을 통해 갈고닦은 세월만큼이나 본질을 꿰뚫고 바르게 보는 혜안이 있는 스님께서 많은 말씀을 하지 않더라도 묵직함 울림이 있다.
그 안에 심오한 진리가 담겨있다.
그것이 때로는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놀랍게도, 혹은 화끈거리게도 하면서 내 안의 선과 악과 온전히 대면하게 된다.
적나라하게 내가 가진 여러 모습들을 비춘다.
내가 차마 외면하고 애써 보고 싶지 않았던 부끄러운 모습들을, 그리고 잃어버린 채 사라진 줄 알았던 내 안에 담긴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들을.
종교적인 차원을 넘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것들을 매일 연습하고 반복한다.
숨 쉬는 것에서부터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까지…
그리고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자각하는 힘을 키우고 각성한다.
그래, 나는 특별한 곳을 다니고 있는지도 몰라.
돈 주고도 배우기 힘든, 귀한 인생 가르침을 얻는 배움터인 곳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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