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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말고 절로 들어갔습니다
11화
부처님도 말해주지 않는 것
33살 직장인, 회사 말고 절로 들어갔습니다
by
신민정
Nov 13. 2019
# 맛 좋은 대화
오후 3시.
이른바 행자님 간식타임.
행자님은 먹는 양이 많지 않다.
그래서 그런지 또래에 비해 체구가 작고 마른 편이다.
하얀 피부에 여리여리한 몸체가 안쓰러워 하나라도 더 먹이고 싶은 맘이다.
이럴 땐 꼭 엄마가 된 기분이랄까.
그래서 행자님이 학교에 다녀온 후 법복을 갈아입고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하기 전 휴식도 취할 겸 간식을 먹는다. 이 시간에 맞춰 나도 공양간으로 올라가 행자님이 먹을 떡이나 과일, 견과류를 챙긴다.
내가 간식거리를 챙기고 있을 때면 행자님도 옆에서 포크나 수저를 챙겨 상 위에 놓는 일을 거든다.
“행자님, 이거 먹어요.” 하고 간식을 내어 놓으면,
“보살님도 드세요.” 하며 본인 것의 반을 덜어 내 앞에 놓아준다.
행자 생활이 몸에 배어서일까.
자기가 먹는 만큼, 내 것을 잊지 않는다.
늘 내 것을 먼저 챙기고 본인 몫을 챙기는 깊은 배려심을 갖고 있다.
흐뭇한 표정으로 행자님을 바라다본다.
떡 한 조각에 그의 선한 마음도 함께 올려 한 입 베어 문다.
어느 날부턴가 행자님도 나도 이 시간을 기다려왔다.
단지 달콤한 간식을 먹을 수 있어서가 아니었다.
이 시간은 입의 즐거움과 더불어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보살님,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아세요?”
“네? 뭘까요?!”
“건강한 몸, 영혼, 정신이 있어야 해요.”
전혀 생각지 못한 대답에 많이 놀랐다.
어린 외모에 행자님이라는 것을 자꾸 망각했구나. 어렸을 적부터 불법을 공부하신 분인데…….
그러고 보면 행자님은 역사, 지리, 철학에 관심이 많았다.
알고 있는 철학자도 많았고, 그들이 남긴 명언도 줄줄 꿰고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한 말이 가장 유명하지만 저는 ‘유일한 선은 앎이요, 유일한 악은 무지이다.’라는 말을 참 좋아해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을 누가 한 말일까요?
“행자님, 그 정도는 저도 알아요. 데카르트가 한 말이죠. 저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이 말은 누가 남긴 말인지 혹시 아세요?”
“스피노자가 말했어요. 나도 이 말 좋아하는데!”
주고받는 질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어느새 30분의 간식 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행자님과 이러한 대화를 나눌 줄이야.
내일 우리 다시 또 이야기 나눠요.”
못다 한 이야기가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듯이 행자님의 눈빛에는 아쉬움이 가득 서려있었다.
언제 그러한 것들을 배우고 익혔을까.
한편으론 기특했고, 지적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좋은 상대가 있음에 감사했다.
행자님 덕분에 단조로울 수 있는 템플 라이프에 생기가 돈다.
행자님, 내일도 맛있는 간식 준비해 놓고 기다릴게요!
# 부처님도 말해주지 않는 것
“속은 답답한데 표현을 못하겠어요.
지금까지 내 마음을 표현해 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도통 모르겠어요.”
“나도 그래요. 내가 내 마음을 모를 때가 많아요.”
점심 공양 후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온 보살님들의 말이었다.
대부분 절에 다닌 지 꽤나 연차가 있는 분들인데도 불구하고 나를 표현하는 것이라던가, 내 기분이나 감정이 무엇 때문인지, 어디서 온 것인지 조차 모를 때가 많았다.
‘그래서 명상이나 수행이 필요한 것이겠지.’
우리는 우리 자신을 알지 못해 늘 방황하기 일쑤다.
나를 알고 싶다고, 나를 찾고 싶다고 하면서도 늘 뒷전으로 미루는 이상한 모순에 빠져있다.
특히, 나를 조여 오는 불안과 두려운 마음이 생길 때 그 외침은 강렬하다.
인간은 언제나 이러한 감정들을 수없이 맞닥뜨리며 살아야 하는, 어르고 달래며 평생을 동반하는
감정일 것이다.
그러한 감정으로 괴롭고 힘들 때, 부처님이나 하나님과 같은 절대자에게 의지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마음의 위안을 얻고, 한 걸음 내딛을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하지만 부처님이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그러한 감정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를 믿는다고 해서 내가 누구인지 쉽게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부처님은 말이 없다. 말해주지 않는다.
그건 스스로에게 묻고 묻고 또 물으며 내가 발견해야 하는 것이다.
부처님과 하나님께 의지하고 기댈 수는 있어도 결국 답은 내 안에 있는 것이기에.
다만 부처님은 우리가 나만의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언제까지나 기다려주신다.
내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찾을 수 있는 지혜를 가져다주신다.
자비로운 미소를 띠며 지켜봐 주시기에 오늘도 나는 내 안의 답을 찾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 마음의 파장
“왜 행동이, 반응이 달라진 줄 아십니까?
바로 본인의 마음 파장이 달라졌기 때문이에요.”
마음의 파장이라…….
그 말을 들으니 회식 때 달큰하게 술 한잔 들이킨 대표님의 말이 오버랩되었다.
“거울 좀 보세요! 표정이 어떤지...”
그동안 내게 말하지 못한 불만을 갖고 있다가 술자리를 빌어 슬쩍 내뱉은 말이었다.
‘그대들이 나한테 대하는 건 어떻습니까?
그런데 내 표정 탓을 하다니요?
화가 나고 서운하고 속상해도 내가 언제 뭐라 한 적 있었나요?!
나도 내 맘 감추고 열심히 일하고 있잖아요!’
충격이었다. 거울을 보라니….
뾰로통하게 속으로는 반발심이 일었다. 적반하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들 또한 어떠했나? 눈 한 번 마주치는 법이 없었고 업무적으로 꼭 필요한 말 외엔 무심하지 않았던가?
그 무겁고 척박한 공기가 나를 가장 힘들게 했다.
서로 뭔가 틀어질 대로 틀어져 맞지 않는 아귀인걸 알면서도 그저 그렇게 손을 놓고 있었던 그때...
조금은 당황스럽고 나를 화끈거리게 한 대표의 말을 듣고 화장실에 들어가 내 표정을 들여다보았다.
내 얼굴을 보고 나 역시 많이 놀랐다.
메마르고 황량한 사막처럼 건조함만이 남은, 웃음이라곤 찾아들 여지가
없이 굳어있는 얼굴.
사실, 그때는 나도 무척이나 힘들고 아팠다.
하루하루가 지옥과도 같이
느꼈지던 시간이었다.
그래서 내 아픔 때문에 상대방의 힘듦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스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그때의 내 얼굴이 생각이 난다.
대화가 사라지고, 유대감이 사라졌다고 애석해하기만 했지 나 스스로는 내 모습을 보지 못했다.
‘나로 인해 그들도 많이 피곤했겠구나.
지친 얼굴을 보고 미소가 사라진 굳은 표정을 보며 얼마나 힘들었을까?’
누군가 말 한마디 붙이기 겁날 정도의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 대화가 끊어졌다고, 차갑고 무심하다고 그들을 탓하고 있던 내 모습이 보인다.
지금에 와서 모든 게 내 잘못이라고 심한 자책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누가 옳고 그름을 떠나 내 행동과 마음의 파장만으로도 충분히 상대를 괴롭게 하는 고통을 준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꼭 직접적인 말로 표현하지 않았다고 해서 상처를 주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이 더 상대를 난처하게 만들고, 힘겨운 상황 속으로 밀어 넣은 것은 아닌지 자문해본다.
내 마음의 파장 하나로 상대를 기쁘게도, 힘들게도 할 수 있다는 것이 가슴 깊이 묵직하게 들어온 날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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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미운 사람을 위한 기도가 먼저다
13
괴로움이 또 다른 괴로움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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