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사람을 위한 기도가 먼저다

33살 직장인, 회사 말고 절로 들어갔습니다

by 신민정

# 덜 괴로운 삶을 사는 이유


어제부터 절 안이 많이 분주했다.

올 겨울 절에서 먹을 김장 김치를 준비하다 보니 아침부터 할 일이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겨우내 먹을 배추의 양은 어마어마했고, 배추를 씻고 절이는 일이란 여간 손이 많이 가는 게 아니었다.


억세고 누렇게 뜬 배추의 겉잎을 떼어내고 칼집을 내어 2등분으로 쪼개었다.

밑동을 다듬어 적당한 염도의 소금물에 담가 충분히 적신 다음 배춧잎 사이사이로 굵은소금을 뿌린다. 그 후 배추가 골고루 잘 절여지도록 2~3시간마다 뒤집어주기….

여기까지의 일을 마치고 나니 어느새 시간은 반나절을 훌쩍 넘긴 후였다.


김장을 준비하는 일은 뿌듯하고 든든했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많은 힘이 드는 일이다.

물 먹은 배추는 얼마나 무거운가.

모두들 흐뭇한 미소 속에 고됨이 살짝 묻어났다.


김장 준비로 오전 일찍 나오셨던 한 보살님께서 특히 지치고 피곤해 보이셨다.

보는 나도 얼른 들어가 쉬셨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결국 보살님의 입에서 내가 은근히 기다렸던 말이 튀어나왔다.


“집에 가고 싶다. 집에 가고 싶어 죽겠어.”


‘그렇지. 얼른 들어가 쉬셔야지’ 하고 가실 채비를 하실 줄 알았는데…

10분을 기다리고 20분을 기다려도 특별한 움직임이 없으셨다.

결국 서너 시간을 넘겨 저녁 9시 30분 수행 프로그램까지 모두 마치고서야 집으로 향하셨다.

그렇게 피곤하셨으면 다음날은 조금 늦게 나올 법도 한데 아침 일찍부터 법당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얼굴에는 활짝 미소꽃을 피우면서….


무척이나 궁금했다.

그토록 많이 힘들어하셨는데 늦은 시간 수행까지 모두 마치고 집으로 가신 이유가 무엇인지를…….


내가 추측하기엔 그랬다.

하나는 쉬고 싶은 마음, 하기 싫은 마음이 올라오더라도 이것도 수행의 관점으로 보고 수행자로서 이겨내기 위함일 것이라는 것,

둘째는 수행 후의 기쁨을 알기에 이런 욕구와 욕망을 참고서라도 수행 프로그램을 참여하고자 함이며

셋째는 일찍 간다는 것이 다른 분들에게 괜히 눈치가 보이고(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아서 정도의 이유였다.

그래서 보살님께 살며시 여쭈어보았다.


“보살님, 어제 무척이나 피곤해 보이셨는데 늦은 밤까지 계셨어요. 제가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보았는데요. 그토록 오래 남아 계셨던 이유가 뭐예요?”
“세 가지 이유 모두 맞아요. 제가 절에 다닌 지 15년이 지났지만 아무리 오랫동안 기도와 수행을 해도 하기 싫은 마음, 거부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올라와요. 하지만 이렇게 참고하다 보니 삶이 덜 괴롭더라고요.”


절에 다니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면서 올라오는 욕망에 지배되지 않는 법을 익히고 계셨다.

순간마다의 고비를 넘기고, 넘기면서 육체와 욕망 덩어리 자아에 속지 않고 내면의 본래 자기와 만나는 것.

삶의 괴로움을 완전히 씻어낼 순 없지만 덜 괴로운 삶을 사는 것.


귀찮고, 쉬고 싶은 저항에도 아침 일찍 절로 발걸음을 향할 수 있었던 이유다.

새벽녘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반짝이던 보살님의 미소가 잊히지 않는다.




# 고요히 홀로 앉아


아침에 홀로 앉아 고요히 묵상을 하다 보면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 뜨겁고 잔잔한 기운이 흘러 넘침을 느낄 때가 있다.

마음속에 차오르는 따뜻한 온기 때문에 기분이 맑아지고 밝아지는 느낌.


그것은 복잡한 생각들을 내려놓고, 무거운 감정들을 비우면서 얻게 된 진정한 휴식 때문이 아닐까.

나를 힘들게 하고 괴롭히던 과거에 끄달린 생각,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서의 해방.

현재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농락당한 괴로움과 새로이 만들어낸 불안과 공포라는 망상에서의 자유.

깨끗하고 투명한 본래의 마음자리에 가 닿음으로써 느낄 수 있는 무엇일 것이다.


늘 부족한 줄 알고 바라고, 욕망하고, 갈구하기만 했다.

이미 많은 것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왜 알지 못했을까.


내게 이미 많은 것이 주어져 있었다.

좋아하는 햇살과 바람, 나무도 늘 함께하고 있었고, 평온함과 고요함도 내 안에 충만해 있었다.

보고 듣고 걸으며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능력도 있었다.

지금 나에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을 왜 매번 부족하다 여기고 더 가지지 못해 안달했을까.


우리가 언제까지 미래의 행복만을 좇으며 살아야 할까?

존재하는 행복보다 소유하지 않은 행복만을 바라본다면 평생 행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몽상적 행복만을 욕망하다 죽기엔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더 이상 행복이 다른 곳에 있지 않음을, 저 멀리 있는 것을 구하느라 힘 빼고 용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이 시간을 통해 배워간다.


지금 이대로 충분했고, 완전한 행복이 지금 여기에 있다.




# 미운 사람을 위한 기도가 먼저다

“기도하는 사람은 참회와 감사와 발원의 마음이 삼위일체가 되어야 기도의 공덕이 제대로 서게 된다.”


누구나 자신이 이루고 싶은 소원이나 소망 따위를 가지고 있다.

특히 간절히 바라는 바가 있다면 그 마음이 더욱 애틋할 것이다.

많은 이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기도를 할 진대, 책에서 접하게 된 한 줄의 문장이 깊은 질문 속으로 빠져들게끔 나를 붙잡아두었다.


내가 하는 기도를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감사하는 마음을 느껴야 한다는 것과 진실되게 무언가를 바라고 구하는 마음은 알겠는데 ‘참회’하라는 대목에서 딱 걸리고 말았다.

그것도 왜 하필, 제일 먼저, 참회란 말을 언급했을까.


‘소원을 이루는데 참회를 하라고?

참회가 그토록 중요한 이유가 뭘까?’


다음의 문장들에 정답과 해설이 친절히 나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섣불리 답을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끙끙대면서도 어려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싶은 탐구심 많은 아이와 같은 마음이지 않았나 싶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칠 줄 알아야 하늘이 갸륵하게 여겨 소원을 이루는데 도움을 주는 것일까?

혹은 자신의 허물을 인정하고 반성할 줄 아는 이에게 겸손의 은혜를 베풀 듯 소원을 성취할 자격이라도 부여되는 것일까.

머리를 굴려 이런저런 이유를 생각해 보다가 이내 다음 문장이 안내하는 길을 따랐다.


나의 기도에 앞서, 내가 원망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먼저 축원하고 축복해줘야 한다고 했다.

미워하는 마음, 원망하는 마음을 지닌 채 하는 기도는 이미 가득 채워진 보따리에 복이 담기기를 바라는 것과 같기 때문이라는 것.


이미 오물이 가득 찬 시궁창을 보고서 치워야지, 치워야지 하는 마음만 가지고 실제로 치우지 않으면 버려지지 않는 것처럼 미움과 원망을 그대로 두고서는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했다.

복을 담아야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데 계속 그것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내 복이 담길 공간이 없지 않은가.

그래서 미움과 원망이 깊으면 깊을수록 내 기도를 제쳐두고서라도 그 사람을 위한 축원을 드리며 잘 되길 바라야 한다고.

그러면 그토록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미움과 원망이 내 보따리에서 빠져나간다는 말씀을 남겨두었다.


‘나는 과연 내 마음에 큰 상처를 준 이들에게 축복의 마음을 낼 수 있을까?’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턱 하고 막힌 기분이었다.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 질문 앞에 서성거리며 한동안 그 자리를 맴돌 뿐….


나를 위한 복을 가득 담기에도 부족한데 우리는 미움과 분노를 끌어안고 산다.

괴로움을 가득 담아놓고 있으면 정작 괴로울 사람은 바로 나인데 상대 때문에 힘들다고, 어떻게 좀 해달라고 울부짖는다.

그래 봤자 소용없는 일임을 알지 못한 채 무명(無明)에 가려 안타까운 실수를 반복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이제야 진정으로 이해되었다.

나를 힘들게 했던 이를 위해 축원하라는 뜻을.

그리고 결심했다. 내가 가진 소원 바구니에 가득 채워진 미움과 원망이란 오물을 치우겠다고.

깨끗하게 비운 그 자리에 감사와 축복을 채워 넣겠다고…….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행복하십시오. 건강하십시오.

원하는 모든 일들을 성취하시기 바랍니다.’

온 마음을 실어 몇 번씩 대뇌이자 눈물이 양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눈물의 의미를 뭐라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그 맛을 보자면 설움, 야속, 미안, 감사의 맛이 버무려진 달고 짜고 쓴, 심히 복합적인 맛이 아니었을까.


오늘도 또 하나의 가르침을 얻는다.

진실된 마음으로 나를 미워했던 상대를 위한 축원을 드리는 일.

그것이 나의 기도 성취를 위해 첫 번째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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