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난 집

33살 직장인, 회사 말고 절로 들어갔습니다

by 신민정

# 영혼의 순례길


“영혼의 순례길이라는 영화입니다. 감상해보세요.”


바깥 활동을 하지 않고 절에서 지내는 나에게 스님께서 문화 혜택을 주셨다.

늘 기도와 수행, 경전 읽기만을 반복하다가 영화를 본다고 하니 가물었던 땅에 촉촉한 단비가 찾아온 듯 기쁘고 신이 난다.

어떤 장르의 어떤 스토리인가가 중요하다기보다는 기도와 수행이 아닌 편히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마냥 좋았다고나 할까.


영화는 티베트의 작은 마을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에게는 꿈이 있었다.

신들의 땅이라 불리는 성지 라싸와 성산 카일라스 산으로 순례를 떠나는 것이다.

그런 꿈을 꾸던 11명의 마을 사람들이 총 2,500km를 순례길을 떠난 그 1년간의 여정을 담았다.


어린아이에서부터 임산부, 70대 어르신까지 그냥 걷기도 힘든 그 길을 3보 1배를 하며 걷는 모습만 보아도 숙연해지고 경건해진다.

널빤지를 손에 끼고서 맨바닥에 미끄러지듯 온 몸을 던진다. 이마는 바닥에 쓸려 상처를 입더라도 육체적 고통 따위 그들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눈보라가 몰아치고,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는 더위에도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정성이 가득한 걸음 하나에 간절하고 진실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평범한 이들이 보여주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모습에 큰 울림이 있다.


길에서 벌레를 만나면 잠시 멈춰 서서 지나가길 기다려준다.

순례 도중 임산부 아기를 출산하게 되는데 바로 몸을 추스른 후 다시 순례길에 오른다.

다른 차 때문에 짐을 실은 차가 전복되는 교통사고가 나지만 환자를 태운 차이기에 서둘러 보낸다.

순례길을 함께 나선 노인이 죽음을 맞이한 후에도 슬퍼하기보다는 축복하는 마음으로 그를 떠나보낸다.


‘육체적 고통 앞에서도 심지어 사고와 죽음 앞에서도 어떻게 이토록 무던하게, 여여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우리는 병이 생기거나 사고가 나거나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큰 슬픔에 빠져 비통해한다.

크게 절망하며 일어나는 상황에 일희일비한다.

그런데 이들은 삶 속에 일어나는 모든 변수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상황 탓을 하는 것이 없다. 화를 내거나 성내는 법도 없다.

삶의 모든 것들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가슴속에 뜨거운 전율을 일게 한다.


진정한 종교인의 모습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생로병사 앞에서도 여여히 받아들이는 것,

괴로움에 고통받고 허덕이는 것이 아니라 무엇에도 걸림 없이 지금의 순간들을 받아들이는 것.

그들이야말로 부처님께서 이 땅의 중생들에게 전하고픈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었다.


개인의 성공과 구원, 소망을 성취하기 위해 종교를 믿고 의지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말한다.

순례는 타인을 위한 기도의 길이라고.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짙은 발자국이 남았다.

나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생명을 축복하는 마음, 순수한 사랑이라는 보이지 않는 발자국이.




# 불난 집


PM 2:00-4:00

이 시간은 매일 같이 수행과 기도를 하는 시간이다.

침묵 속에서 각자가 스님께 받은 기도나 수행을 진행한다.


점심 공양을 마치고 난 이후인 데다가 작은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아 경전을 보고 있으면 졸음이 솔솔 몰려온다.

최대한 허리를 곧게 펴고 바른 자세를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노라면 무릎과 다리, 허리도 아파온다. 그것에 신경이 쏠리다 보면 경전에 마음을 두지 못하고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일쑤다.


그런데 오늘만은 달랐다.

평소에는 상당히 길게 느껴졌던 2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게 지나갔다. 흠뻑 빠져들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평상시처럼 경전을 읽고 있었다.

내가 읽고 있는 법화경에는 부처님께서 중생들을 깨닫게 하기 위해 몇 가지 비유가 나온다.

그중 불난 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짧게 줄이자면 다음과 같다.


어느 고을에 장자라는 아버지가 있었다.

아버지가 출타하고 집에는 아이들만 남아 놀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놀이에 빠져있는 사이 집에 불이 나고야 말았다.

외출 후 돌아온 아버지가 불난 집을 보고 아이들을 집 밖으로 나오게 하고 싶었으나 아이들은 노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불이 난지도 모르고 나올 생각 조차 못하고 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이들이 좋아할 장난감(양이 끄는 수레[羊車], 사슴이 끄는 수레[鹿車], 소가 끄는 수레[牛車])으로 유인하여 나가면 그것을 주겠다고 했다.

아버지의 그 말에 아이들은 무사히 불난 집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각각 공평하게 본래 바란 것 이상의 큰 수레를 선물하였는데 아이들은 그것을 받고 무척이나 기뻐한다.


‘아! 바로 그거구나!’


늘 무심히 읽어 내려갔던 경전 속의 비유가 내 안에 들어왔다.

19번을 읽어도 감을 잡지 못하고 넘어갔던 구절들이 20 회독을 하고 나니 섬광처럼 그 뜻이 드러났다.

불난 집이란 인간이 살고 있는 세상, 인간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 아니었을까?

개인의 욕망과 탐욕에 가득 차 수많은 고통과 괴로움, 번민 속에 살고 있는 어지럽고 힘든 상황을 반영한 것 같았다.

그렇게 집이 불에 활활 타고 있음에도 무지로 인해 나올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중생의 어리석음을….

재미난 놀이에 집착하여 이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아버지의 지혜로 인해 아이들을 구제하고 불난 집에서 탈출을 시킨다. 불난 집에서 나오니 더없이 좋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


몹시 위태롭고 위험한 상황, 불안정 상태에 놓여 있음에도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저 우리의 욕망 속에서 아파하고 괴로워하면서도 그것을 모르고 쾌락을 좇고, 내 욕망만을 추구한다.

그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집착과 욕심을 내려놓으면 평온하고 평화로운 세계가 펼쳐지는데 내 마음속에 불을 지르고 온 세상을 불태운다.


불교에 대해 전혀 공부해보지 않은 나의 굉장히 협소하고 자의적인 해석일지는 모르나 뜻이 내 안에 들어온 순간 짜릿한 감동이 일었다.

처음 맛 본 환희심에 가슴이 두근대고 넘실거렸다.

감히 비교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스님들이 공부하고 수행 중에 만나는 기쁨들이 바로 이러한 것이 아니었을까?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벅찬 감동이 오랫동안 내 가슴을 적신다.




# 절에 들어오길 정말 다행입니다


“자기가 가진 업(業)을 닦지 않으면 어디를 가더라도 그 업이 반복될 것입니다.

살아오면서 늘 반복되었던 문제나 상황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아침 시간에 스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내 삶을 천천히 돌이켜 보았다.


‘내게 반복되어 온 고질적 문제는 무엇일까. 내 업은 무엇일까…….’


천천히 내 삶을 곱씹어 보니 같은 패턴의 결과와 행동을 취해 온 흔적이 어렴풋이 손에 잡힐 듯한다.

나는 늘 회피하고 도망치는 길을 걸어왔다.

어떤 제도나 시스템,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개선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포기하고 물러나는 쪽을 택했다.

대학원에 진학했을 때에도 예상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교육과정과 분위기에 계획한 진로를 포기했고, 첫 회사에 입사하였을 때에도 상사의 비합리적이고 이기적인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 회사를 그만두었다.

마침내 꿈꾸던 일을 하게 되고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을 만났음에도 어려움(갈등)을 잘 해결하지 못하고 끝내 이별을 택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고 했던가.

나는 늘 그런 식이었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보다 벗어나는 쪽을 택했다.

제도와 권력에 맞서는 것이 싫었고, 사람과 부딪히는 것이 싫었다.

저항하기보다는 단념하는 쪽이 내 마음이 편했다. 갈등이 생기고, 문제가 있으면 풀어야 하는데 그러한 것을 마주할 용기가 없기 때문이었을까.

지나온 나의 선택을 하나 둘 돌이켜 보니 나는 비겁한 겁쟁이였다.


문제가 있어서 문제가 아닌데…

그것을 꺼려하고 멀리하는 것이 진짜 문제였는데 말이다.

풀지 못한 문제가 문제로 남아있기에 반복된 문제를 낳고 있다는 것을 놓치고 있었다.


이러한 나의 본질적이고 고질적인 문제를 깨닫게 될 때면 절에 들어와 사는 이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다.

닦아야 할 업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을, 나의 부족하고 그릇된 모습을 알게 해 주어 진심으로 고맙다.

이러한 시간이 없었더라면 계속된 윤회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유도 모른 채 허우적 대고 있겠지.

나를 힘들고 괴롭게 했던 것들이 잘못된 시스템이나 상대 때문이라고 탓하면서.


나를 차분하게 돌아봄으로써 나의 삶을 이해한다.

내 선택과 결정으로 이같은 결과가 비롯되고, 내가 불러들인 인과라는 것을 배우며 많은 반성도 하게 된다.


오랫동안 반복된 삶의 연결 고리들을 풀다 보니 복잡하게만 보였던 삶이 가벼워졌다. 그리고 자유로워졌다.

알지 못했을 땐 가득했던 미움과 원망의 감정들. 무거운 그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고 나의 어리석음과 미숙함을 일깨울 수 있는 성숙의 시간으로 나를 인도해주는 것에 큰 감사함을 느낀다.


마음이 쉬어갈 수 있는 곳에 나를 두니 나를 제대로 보게 된다.

마음이 청정할 수 있는 곳에 나를 놓으니 바른 생각과 맑은 정신이 깨어난다.

볼 수 없는 것들을 보게 하는 지혜가 열린다.


휴...절에 들어오길 천만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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