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 중독

33살 직장인, 회사 말고 절로 들어갔습니다

by 신민정

# 노력 중독


직장인 시절,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간에 쫓기며 살았다.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켜고 To do list를 작성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실수 없이, 빠뜨리지 않고 처리하기 위한 완벽성을 기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시간 관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로써.


정신없이 서너 시간을 보내고 나면 어느덧 점심시간이다.

정오를 넘기고 끼니를 해결해야 하니 점심시간이라 칭할 뿐, 직장인의 낙이라고 하는 이 시간의 달콤함은 조용히 자취를 감추어갔다.

메뉴 선택의 폭도 좁아졌다.

마음 편히,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식사다운 식사를 찾기보다 그저 간편한 것, 빨리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고정되어갔다.


무언가를 삼키긴 했으나 여전히 공허하기만 한 배를 채우고 다시 업무에 파묻히다 보면 언제 졌는지 모를 해를 보내고 별을 바라봐야 할 때 퇴근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회사 건물을 벗어난 순간에도, 주말이 되어서도 스마트 폰으로 울리는 알림 메시지와 메일 업무 때문에 항시 일의 소용돌이 속에 갇힌 기분이었다.

일과 생활의 경계가 사라진, 요일의 구분이 무색해진 날들의 연속…….

내가 원한 적도, 내가 동의한 적도 없는데 그러한 사회구조와 질서 안에 들어서 있었다.

경쟁에서 이기려면 더 치열하게 움직여야 하고 다른 이들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내몰리면서 인지하지 못한 사이 노력 중독에 빠져있었다.


스님께서 법화경 108 회독이라는 기도를 주시면서 예불 시간을 제외하고는 경전 읽기가 일상이 되었다.

오늘도 경전 읽기가 한창이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글을 읽어 내려가던 중 귓가에 음성 하나가 내리 꽂혔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됩니다.”


스님께서 곁을 지나가다 던진 한마디였다.

무슨 말씀인 걸까? 잠시 어리둥절해 있다 비로소 그 말의 의미를 알아챌 수 있었다.


나는 보이지 않는 상대와 경쟁이라도 하듯 혼자만의 속도전을 치루고 있었다.

경전의 말씀을 집중해서 보아도 뜻을 헤아리기가 여간 쉽지 않을 터인데 그것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기보다 경전 읽는 횟수에 집착하고 있었다.

수행의 방편으로, 수양을 하라고 경전을 읽으라는 것이었는데 여기에서도 본래 목적은 사라지고 결과만을 향해 쫓고 있었다.


소리 내어 읽으라고 했거늘 빨리 읽는 것에 집착하다 보니 발음은 뭉개지고, 읽는 나조차 뭐라는지 모를 말들로 입술만 뻐끔거리는 수준이었다.

어떻게 하면 진도를 많이 나갈 수 있을까?

오늘은 몇 페이지까지 무조건 읽어야 한다는 수치상의 목표가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게까지 강박적으로 읽는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야. 절에서까지 이러고 있구나!’


노력 중독자의 습성으로 밖에서 하던 것처럼 꾸역꾸역 맹목적인 전력질주를 하고 있었다.

노력의 방향이 목적을 향해 움직여야 하는데 눈에 보이는 수치와 결과만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번뇌 망상을 내려놓고, 마음이 제대로 쉬어가는 법을 배우기 위해 절에 왔는데 또다시 경전과의 경쟁을 벌이고 있는 내 모습을 자각하는 뼈아픈 순간이다.

씁쓸한 미소를 삼키며 내게 한마디 건네어본다.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돼. 그렇게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아도 돼.’




# ‘오늘’을 잘 살아가면 될 뿐

오늘 아침 책을 읽다 문득 한 생각이 찾아들었다.


삶이라는 것은 ‘오늘’을 잘 살아가면 될 뿐이었는데 늘 거창한 목표나 계획이 있어야 되는 줄만 알았다.

그게 없으면, 무엇인가 붙잡고 있지 않으면 나 혼자 이 사회에서 뒤처지고 무의미한 삶을 사는 것 같았다.

그래서 늘 뭔가를 계획했고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것이 결코 나를 행복하게 하지 않았고,

날 갉아먹는 일인 줄 알면서도 눈감을 수밖에 없었다.

다들 그렇게 사니까.

이러한 세상에 이탈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내가 동의하지도 않은 사회 구조와 시스템에 너무 순응하기만 한 건 아닐까 하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강요하는 화폐 우상화에 이용당했고, 노동을 착취당했으며 시간을 빼앗겨 버렸다.

그 흐름에 동조하지 않고 벗어나도 잘 살아갈 수 있는데 거기에서 벗어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그 무리에 속해 있어야 행복할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 지내다 보니 아니란 걸 알았다.


오히려 거기에 벗어나 보니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이란 걸 완연히 느낄 수 있었고, 가슴 가득 찬 기쁨을 내 안에 깊숙이 담아볼 수 있었다.

사회 체제와 시스템에 종속되지 않는 것.

내가 내 시간의 주인이 되어,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가는 것. 그거면 되었다.

충분히 비우고 내려놓으니 오히려 삶이 충만해진다는 것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삶을 잘 산다는 것, 잘 살아가는 것이란 게 대체 뭘까?

미래의 행복에 저당 잡혀 쉼 없이 뛰어가기보다 순간순간의 행복을 온전히 느끼며 살아가는 것, 바로 그게 아닐까?

내게 주어진 것에 충분히 감사하고 감동하며 이 순간을 즐길 수 있는 것오늘을 잘 살아가는 방법일 거라고 스스로 결론 내려본다.




# 정체 모를 우울이 엄습한 날,

마음아 미안해


평소와 똑같이 새벽 예불 후 아침 공양을 하고 설거지를 마치고서 법당에 내려왔는데 정체모를 우울한 감정이 불현듯 찾아왔다.


‘도대체 이 우울은 뭐지?’


왜 그럴 때 있지 않은가?

분명 내 것인데 나조차 도무지 설명하기 어려운 내 마음.

내가 느낀 내 감정인데 왜 그런 건지 딱히 뭐라 표현하기 어렵고 애매한 상태.

마음에 걸리는 어떤 일이 생각났거나 무슨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나는 어디서 찾아든 건지 당최 연유를 알 수 없는 우울과 반나절을 함께 보냈다.


이런 감정일 때는 경전의 글이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거니와 뜻이 잡히지도 않는다.

경전 읽기가 한없이 지루하게 느껴진다.

진도는 나가지 않고 오늘 목표한 분량에서 멀어져 간다는 느낌이 들면 더욱 감정이 가라앉는다.

흥이 나도 모자랄 판에 도리어 진이 빠지는 꼴이라니.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눈치 없는 배꼽시계는 제 시간이 되자 한결같이 울려왔다.

뭔가 한 거 없이 공양을 받으려니 무안하긴 했지만 그 말이 무색할 정도로 입속으로 밥이 잘 들어갔다.

기분 전환에는 입을 즐겁게 하는 것만 한 게 없다고 했던가. 맛있는 음식이 몸에 들어오니 한결 기분이 나아진듯했다.

정체모를 우울 때문에 괜스레 기분만 이상했는데 공양도 잘했겠다, 오후에는 기운을 내서 잘해 보리라 마음을 먹고는 반듯하게 자세를 갖추어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무슨 일일까? 경전을 펼치고 첫음절을 떼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찰나의 시간조차 견디지 못하고 곧바로 볼을 타고 또르르 흘러내렸다.

경전의 내용이 슬퍼서도, 아직 우울이 가시지 않아서도 아니었는데 왜 눈물이 흐르는 걸까.

알 수 없는 묘한 이 감정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예전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일이었다.

한 때 스쳐가는 감정 상태일 거라고, 가뜩이나 할 일이 많은데 그런 모호한 감정을 궁금해할 시간이 어디 있냐고 흘려 넘겼을 것이다.

이유를 알지 못하기에 이따금씩 찾아오는 이러한 일들을 반복하면서…

일시적인 기분으로 치부하고 말았을 이 감정이, 내 마음이 궁금해졌다.

끝까지 쫓아가 보고 싶었다.

그러면서 이러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일으킨 내 생각, 내 마음, 내 감정. 내가 모르면 누가 알까? 평생 데리고 사는 내 마음, 내가 알아주지 않으면 누가 알아야 할까?’


그동안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해버린 내 마음에게 미안해졌다.


‘그래서 많이 아팠구나. 내가 나 자신을 돌보지 않아서…….

타인의 관심과 사랑만을 갈구했는데 정작 내가 내 맘을 몰라줬구나.

정말 필요한 건 나 스스로의 보살핌이었는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따뜻한 온기를 담아 가슴에 두 손을 모으고 내게 약속했다.

앞으로는 외롭게 하지 않겠다고.

분명, 이유 있을 내 감정들에 대하여 끝까지 따라가 보겠다고.

혼란과 혼돈의 상태에 더는 내버려 두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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