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백한 진실, 일체유심조

33살 직장인, 회사 말고 절로 들어갔습니다

by 신민정

# 명백한 진실, 일체유심조


오늘까지 9000번의 절을 했다. 오전까지만 해도 번잡한 생각들이 여기저기서 요란하게 소리쳤다.


‘아…, 하기 싫어.’

‘무릎도 아프고 오금이 너무 당겨와. 정말 아파.’

‘힘들어. 눕고 싶다….’


그뿐만이 아니다.

나를 힘들게 한 과거의 기억으로 자꾸 나를 소환시켰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이 떠오를 때마다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호흡에 집중하고 절하는 동작 하나하나에 최대한 신경을 모았다.


그러하기를 수백 번 반복하다 보면….

오만가지 생각을 쫓아낼 강력한 힘이 발휘되고 비로소 나를 지켜준다.

바르게 보고 바르게 생각할 수 있는 지혜까지 찾아든다.

어느새 불교에서 말하는 일체유심조, 즉 ‘모든 것은 내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진리를 실감하기까지에 이른다.

내가 만나는 사건, 사람, 상황은 나에게서 비롯된다는 명백한 진실을….


4년 전, 교통사고로 피폐해진 몸과 마음을 매일 108배와 명상을 통해 정화시켰다.

맑고 깨끗한 마음을 품고 있을 때에는 좋은 일만 일어났다.

모든 것이 술술 풀렸고 내가 생각하는 대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는 느낌이었다.


그토록 가고 싶었던 한 달간의 유럽여행을 할 기회가 생겼고, 알아서 직장이 굴러들어 왔다. 만나기 힘든 사람들과 인연이 되었다.

홀로 독립하여 살고 싶었고, 서울 상경을 꿈꿨다. 그런데 차례차례 내가 원하는 대로 삶이 흘러갔다.

늘 감사함이 충만했고, 매일이 감사, 감동, 감탄의 연속이었다.

살아있는 것 자체만으로 가슴 뭉클했고, 큰 기쁨으로 다가오던 날들이었다.


그러다 그 마음도 점차 시들해졌다.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다 보니 어느 순간 감사한 마음이 눈에서 멀어지고 마음에서 사라져 갔다.

2년 전, 좋은 사람들과 뜻을 모아 기쁜 마음으로 일을 시작했고 점점 사업이 커지면서 몹시 바빠졌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하다 보니 가까운 거리만큼 서로의 다른 점도 많이 발견되었다.

일하는 방식의 차이, 의견의 차이, 관점의 차이가 관계의 수면 위로 드러났다.


내 안에서는 ‘힘든 내 마음 좀 알아달라고, 이런 나에게 관심 좀 가져달라고’ 그들을 향한 끊임없는 외침이 들려왔다. 직접 말하지 않았다.

그냥 알아주길 바랐다. 당연히 알 거라 생각했다.

허나 표현하지 않으니 상대는 알아챌 리 없고, 이런 내 마음을 받아줄 리 없었다.

서운함과 속상함의 감정은 멈출 줄 모르고 그 덩치를 키워갔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나는 나의 우울을 이용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면 상대가 감싸줄 거라 생각했다. 이해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움츠려있는 나를 보면, 시무룩한 나를 달래줄 거라 믿었다.

오랫동안 함께해온 막역한 부부 사이라도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는 것을 그때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나에게 먹구름이 몰려왔고, 어둠이 찾아왔다. 상황은 점점 더 나빠졌다.

사소한 갈등에서 시작된 불협화음은 조금씩 커져가다 종국엔 그 소리마저 사그라졌다. 차라리 부딪혀야 소리라도 날 텐데, 서로 맞추어볼 수 있을 텐데 대화가 사라진 상태에서 관계를 진전할 기회마저 잃었다.

이것이 내게 그토록 큰 정신적 고통과 육체적 병을 가져온 것임을 수 없이 절을 하며 깨닫게 된 진실이었다.


이제야 알았다. 이제껏 고통의 원인은 내 생각 때문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것은 누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결국, 나 자신이 치료제이자 회복의 열쇠를 쥔 당사자인 것이다. 몸과 마음의 병을 낫기 위해 오로지 할 것은 내 생각을 관리하고, 감정을 관리하는 것임을 발견했다.

힘들어도 꿋꿋이 절을 하고 내면을 돌아보며 몸으로 깨달은 값비싼 가르침이다.




# 왜 이래~ 나 10,000배 한 여자야!


AM 07:07

‘콩닥콩닥…….’

아침부터 심장이 방망이질을 해댔다. 가슴이 떨려왔다.

어제 1,400배를 하며 하루 절한 횟수를 최고 경신했다. 그리고 애초에 목표한 만 배를 마치기 위해 지금껏 열심히 달려왔다. 몇 시간 뒤면 드디어 만 배를 달성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긴장감이 찾아왔다.

대체 이게 뭐라고….


반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고지 앞에서 하기 싫은 마음과 피하고 싶은 마음도 함께 교차했다.

조금만 더 하면 만 배를 마칠 수 있는데, 끝내겠다는 욕심과 달리 뒷걸음질치고 싶은 마음도 함께 올라왔다.

하지만 투정하는 마음을 조심스레 잘 달래며 한 배 한 배 절을 올렸다. 곧 찾아올 짜릿함과 달콤함을 기대하며!


PM 02:48

드디어 200배의 절만을 남겨두고 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정말 끝이 보인다는 생각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흥분이 몰려왔다.

만 배를 마치고 나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 같은 기대감이 잔뜩 부풀었다.

만 배를 하기 전 세상과 만 배를 하고 난 후의 세상으로 나뉘듯이….

그렇지만 끝나기 전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

긴장을 늦추지 말자. 마지막까지 천천히, 차분히 잘 해내자!


PM 03:36

2018년 10월 9일 오후 3시 36분! 9일 만에 만 배를 달성했다.

얏호! 귓가엔 자체적으로 팡파르가 울려 퍼졌다.

절 좀 한 것 가지고 왜 그리 유난스럽게 호들갑을 떠느냐고 하겠지만 안 해 본 사람은 모른다.

도저히 해내기 힘들 것만 같았던 거대한 산을 넘은 이 기분!

이루었다는 성취감과 희열이 아드레날린을 폭발시켜 온 몸의 피를 돌게 했다.

200배를 남겨두고는 약간의 긴장감이 감돌았으나 마지막 100배가 남았을 땐 얼굴에 절로 미소가 번졌다.

몸도 깃털같이 가벼운 것이 너무나 쉽게 거뜬히 해냈다.


딱 만 배를 마치고 부처님께 삼배를 올릴 때의 짜릿함이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이루 말할 수 없는 전율이 일었다.

만 배를 할 수 있는 건강한 몸을 가진 것도 감사했고, 이것을 해낼 수 있는 힘을 가진 것도 감사했다.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해낸 나 자신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이 순간 오로지 감사, 감사, 감사뿐이었다.


오늘은 매년 돌아오는 한글날이 아니었다. 2018년 10월 9일 오후 3시 36분이란 날짜와 시간은 나에게 매우 특별하고 의미 있게 남겨질 것 같다.


오늘의 이 순간을 절대 잊지 못하리라….

그리고… 무언가를 함에 있어 주춤하거나 마음이 약해지려 할 때 주문처럼 이 말을 외치게 되리라.


‘왜 이래~ 나 10,000배 한 여자야!’

마치 김혜수가 영화에서 남긴 유행어처럼.



# 몸뚱이에 지배되지 않는 삶, 내 몸을 데리고 사는 법


만 배를 마친 다음날 오전 4시 30분.

새벽 예불을 위해 일어나려고 하자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아…’ 하고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여기저기 쑤시지 않는 곳이 없었다.

오늘은 정말이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었다. 계속 눕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만 배를 향한 일념 하에 하루 평균 천 배 이상의 절을 하다 긴장이 풀려서일까 아니면 질려버린 것일까….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했다.

하지만 어쩌랴. 내가 절에 사는 이상 예불 시간만큼은 참석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라 생각했고, 스님과도 예불 시간마다 108배를 하기로 약속한 바였다.


가까스로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법당에 내려갔다.

처음 절을 하려고 몸을 숙이자 모든 뼈마디가 아우성치는 듯했다.

팔목에서부터 무릎, 오금, 허벅지까지 찌릿하고 욱신거렸다.

하기 싫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려고 할 때 며칠 전 스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80세가 넘은 노스님이 계세요. 참선하실 때 보면 젊은 사람보다도 더 꼿꼿하고 자세가 곧으시지요.

건강 또한 매우 좋으셔서 그 비결이 무엇인지 여쭤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스님께서 그렇게 답하시더군요.

나는 평생 동안 몸이 하자는 대로 허락하지 않았노라고….

우리는 먹고 싶으면 막 먹어대고 몸이 하기 싫다 하면 하지 않지요. 늘어지고 싶다고 계속 늘어져 있으면 내가 내 몸한테 지는 거예요.

몸이 하자는 대로 살면 동물과 다를 바가 뭐가 있나요?”


80대 노스님께서 평생 동안 지켜온 몸을 대하는 자세에 감복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돌아보니 부끄러운 마음에 자연스레 고개가 숙여졌다.


그랬다. 나야말로 내가 몸을 데리고 사는 것이 아니라 몸뚱이에 지배된 삶을 살았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잠으로 보상받으려 했고, 힘들다는 이유로 쓰러져있기 일쑤였다.

귀찮다는 이유로 편의점 음식과 배달음식으로 배를 채우기 급급했다.

내 건강을 챙기고, 몸을 돌봐야 하는 건 바로 나 자신인데 무엇보다 아끼고 소중히 여겨야 할 내 몸을 방치하고 내팽겨 쳤다.

그 결과, 체중은 몇 개월 사이 불어날 대로 불어난 반면, 체력은 약해지고 면역력도 현저히 떨어졌다.


노스님의 얘기가 생각나자 곧바로 정신을 차렸다.

다시 정성을 모아 한 배 한 배 절을 올렸다.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아파하고 하기 싫어하던 절도 열 배, 스무 배가 넘어가면 생각보다 힘들지 않다는 것이다. 그럭저럭 할 만하다.

처음에 올라오는 하기 싫은 마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조금만 견디고 이겨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잘 해낸 나를 마주한다. 덤으로 찾아오는 뿌듯함과 보람은 기분 좋은 선물이다.


그 전에는 몰랐다, 아니 시도조차 하지 않고 쉽게 포기했을 것이다.

일어나기 싫으면 그냥 자고, 몸이 무겁다는 둥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둥 이런저런 갖가지 이유를 대며 회피했을 것이다.

오늘 하루, 난 세 번의 예불 시간 동안 300배의 절을 무사히 마쳤다.

이 시간을 통해 몸뚱이에 지배되지 않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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