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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대방 고라니 Jul 01. 2021

쭈꾸미는 집밥인가요?

(feat. HMR)

지난달, 아버지 생신상에는 쭈꾸미 요리가 있었다. 유명 브랜드 식당의 HMR(Home Meal Replace) 상품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외식보단 집에서 먹자는 의견이 모여 준비한 메뉴였다. 전날 밤 주문한 쭈꾸미는 다음날 아침 문 앞에 놓여 있었다. 신속한 배달 서비스에 감탄하며 쭈꾸미를 주방으로 가져갔다. 조리는 간편했다. 각 팩에 포장된 재료와 소스를 뜯어서 한데 볶으면 끝이었다. 높은 판매량을 기록한 쭈꾸미는 그 명성대로 맛있었다. 집에서도 유명 식당의 맛을 느낄 수 있다니, 편리한 세상이다.     

          



요즘 음식 트렌드구나 싶었다. 유명 식당들을 보니 투고 서비스는 기본이고, 시그니처 메뉴를 제품화한 RMR(Restaurant Meal Replacement)을 출시한 곳도 많았다. 사람들이 집 밖을 나오지 않으니 가정 식탁을 공략할 일이 없었던 식당들도 치열한 경쟁에 뛰어들었다. 덕분에 우리는 다양하고 편리한 상품을 소비할 수 있다. 가열만 하면 되는 RTC(Ready to Cook)와 바로 조리할 수 있도록 손질된 RTP(Ready to Prepare), 전문 레스토랑 음식을 제품화한 RMR 등 원하는 맛과 요리에 들이는 수고의 정도를 선택해 주문하면 된다. 역시 요식업계도 집이 트렌드다.          

   



매콤하고 쫄깃한 쭈꾸미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집에서 먹은 쭈꾸미는 집밥인가? 집에서 먹었지만 식당 서비스로 봐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식당 서비스와 집밥 사이 어딘가에 있는 HMR 때문에 조금 혼란스러웠다. 내게 집밥이란 부모님이 손수 차려주는 따뜻한 밥상 정도의 느낌이다. 거기에는 '고유함'과 '익숙한 그리움'이 있다. 집밥에 그런 감성을 가지게 된 것은 어릴 적 경험한 식생활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외식보다 가정식을 더 많이 먹었던 어릴 적에는 늘 부모님 중 한 분이 식사를 차려주셨다. 이건 그 시절 대부분 가정이 비슷했을 거라 생각한다. 




어릴 적 각 집마다 음식 맛이 확연히 달랐다고 기억한다. 친구 집에서 밥 먹을 일도 많아서 누구 집 밥이 맛있다고 반에 소문이 나곤 했다. 심지어 소풍 때마다 나눠 먹은 김밥마저 맛이 제각각이었다. 그때는 그 집만의 고유한 조리 방법이 있었고, 눈대중으로 양념하는 고수의 손맛도 있었다. 지금 시대의 집밥 맛이 다 같다는 말은 아니지만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HMR 상품도 나왔고, 유명 레시피도 검색 한 번이면 찾을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요리할 때 '백종원 000 레시피'라고 한 번쯤 검색해봤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자라나는 세대들에게는 이 모습이 집밥일 수 있다. Z세대의 가정 식사 환경은 잘 모르지만 3~4인용 HMR 상품 판매량이 많아지는 것을 보면 쭈꾸미 식탁과 비슷한 모습이 아닐까 짐작한다. 나는 어릴 적 부모님이 해준 음식 맛에 익숙했고, 익숙하기에 집밥을 먹을 때 그리운 맛을 느꼈다. 그렇다면 지금 세대의 아이들은 HMR과 백종원 레시피의 맛에도 내가 느낀 것과 비슷한 그리움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쭈꾸미가 집밥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내가 알던 집밥 감성은 달라지고 있다.     

          



하지만 집밥 감성이 바뀌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쭈꾸미가 집밥인지 아닌지도 크게 상관없다. 중요한 건 집밥이라는 단어에 담긴 그립고 따뜻한 맛이다. 그래서 굳이 답을 하자면 쭈꾸미는 내 기준으론 집밥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니의 손길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볶은 쭈꾸미에다가 따로 콩나물도 버무려 함께 내오신 음식에는 따뜻함이 담겨있었다. 언택트 시대 속 곳곳에 휴먼터치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책에서 본 적 있는데, 그게 이런 의미였나 싶다. 어머니의 손맛을 가미한 HMR 쭈꾸미는 충분히 따뜻하고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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