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있으면 이민 온 지도 만 10년이다. 10년 동안 한 번도 한국에 가질 못했다. 강산이 변한다는 마의 10년 차가 되어가니 자연스레 한국을 한 번은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위 지인들은 짧게는 1-2년에 한 번씩, 길게는 4-5년에 한 번씩은 한국에 오가다 보니 괜히 10년간 한 번도 나가지 못한 내 처지가 눈치가 보인다. 모두 돌아가시고 안 계신 시부모님, 이혼 후 어렵게 각자 살아가고 있는 친정 부모님, 이제는 새해인사 정도로 안부를 주고받는 친구들을 이유로 선뜻 갈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형편도 녹록지 않았다. 아이 학교, 일 스케줄 조절도 그렇지만 한번 방문에 2천만 원은 써야 된다는 지인들의 말에 집도 절도 없는 우리가 그렇게 큰돈을 단지 한국 방문 한 번을 위해 쓸 수는 없었다. 무리하게 다녀온 뒤 현타로 느껴질 큰 출혈도 겁이 났지만, 썩 반겨줄 가족도 또 우릴 위해 괜히 힘든 형편에 없는 돈까지 쓰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모든 여건이 한국을 가야 할 이유를 대기엔 부족했다.
며칠 전 추석에 오랜만에 아빠와 영상통화를 했다. 늙어가는 아빠를 마주할 자신이 없어 그냥 목소리로만 안부를 주고받았다. 그래도 명절이라 아빠 얼굴이 문득 보고 싶어 져 작은 용기를 내어 영상통화 버튼을 눌렀다.
정확하게 언제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면 통화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요즘 일이 년이야 그렇게 차이 날 것 있을까 생각했는데, 영상 속 아빠의 얼굴은 지난 10년간 내가 함께하지 못했던 그의 사연과 노고가 그대로 스며들어 있었다.
희끗희끗해진 머리와 눈썹, 깊게 파인 눈가 주름과 살짝 내려쓴 돋보기안경까지, 충격과 함께 마음 절절히 아파왔다.
10년 동안 이곳저곳 이사를 다닌 아빠의 집이 궁금해 영상 속 뒷 배경으로 마나 살짝 엿보고 싶었지만, 일부러 더 꼭꼭 숨겨두려는 아빠는 마치 증명사진을 찍는 것처럼 아무것도 없는 빈 벽에 자신의 얼굴만을 비춰줄 뿐이었다. 아빠는 환갑이 몇 년이나 넘긴 나이임에도 그냥 그렇게 살고 있는 모습에 혹시라도 외국에 살고 있는 딸이 걱정될까 그저 괜찮다는 말들로 빨리 전화를 끊고 싶어 했다.
그 통화뒤로 오히려 한국을 꼭 가야겠다는 마음이 확고해졌다. 치열하게 살아온 서로의 10년이란 시간을 마치 성적표처럼 보여줄 것이 없어 낯부끄러워질까 망설일 필요 없는 게 가족일 테니까.
마음을 먹고 나니 하루라도 빨리 다녀오고 싶다. 그동안엔 유독 향수병이 없는 스스로가 이상했던 적도 있었지만, 막상 이러고 보니 모른 척 아닌 척 꾹꾹 눌러 담아 참았던 것 같다. 못 보던 사이 더 작아졌을 아빠의 손을 꼭 잡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혼자 얼마나 쓸쓸히 지냈냐고,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아빠의 곁을 며칠이라도 따뜻하게 채워주고 싶다. 남의 나라에서 우리는 그럭저럭 잘 살았다고 아빠 품에서 응석 부리며 칭찬도 받고 싶다.
안락했던 기억이 많지 않은 내 고향, 내 부모, 내 가족이 있는 곳이 그립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살았을 만큼 답답했던 그 순간들 마저도 모두 그립고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