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주 Aug 07. 2022

엄마, 나 사춘기인 것 같아.

며칠 전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 녀석과 운동장 트랙을 열심히 돌면서 몇 시간 동안이나 대화를 나누었던 적이 있었다. 사춘기라고 성격이 난폭해지지도, 방문과 입을 꾹 닫아버린 것도 아니지만 주기적으로 보이는 가벼운 틱 증상과 안정되어 보이지 않는 눈빛이 무언가 아이의 마음을 복잡하게 하거나 힘들게 만들고 있는 것 같아 어렵지만 현재의 마음의 상태를 물었다. 


아이의 입에선 예상했던 말과 예상하지 못했던 말을 모두 들을 수 있었다. 

예상하기 어렵지 않았던 점은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과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의 부담감이 아이에게 점점 크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조금씩 주저주저했던 정도에서 어떨 땐 기피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으니. 


새로운 것이라면 장소든 먹는 것이든 모두 한발 주저하는 모습이 더욱 심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움직이는 걸 특히나 싫어해서 더 의기소침해지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지만 그건 타고난 성격에 사춘기라는 호르몬 장난이 더해져 심해졌을 거라 넘겨둘 만한 것이었다. 


그런데 아이의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은 준비하지 못한 인터뷰 질문을 받은 것처럼 머리를 하얗게 만들었다. 


사람이 많은 곳, 특히나 모르는 사람이 많은 곳이 무섭다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에게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하는 것은 끔찍하게 피하고 싶은 순간이라고. 모두가 자기를 평가할 것 같은 상황에, 그 평가는 전부 좋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라는 말을 더했다.


조용한 아이라 늘 예상이 가능한 범위 안에서만 행동을 하기에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그 이상을 넘어 있지도 않은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미리 주저하는 모습이 의외였다. 넉넉하진 못했지만 그렇다고 부족한 것도 없이 키웠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아이의 자존감은 많이 낮은 상태였다. 


그저 건강하게, 머리가 똑똑하지 않아도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커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 생각했는데 한눈에 봐도 낮아 보이는 아이의 자존감은 꼭 마음을 밉고 건강하지 않게 만드는 것 같아 속이 상했다. 팍팍하고 전쟁 같은 이민생활에서 한숨 돌릴만한 시기에 아이는 이제 내 키를 훌쩍 넘길 만큼 커버렸고, 바쁜 부모들 틈에서 몸집은 커졌지만 마음은 그만큼 크질 못한 것 같아 미안하고 미안했다. 


자신의 복잡한 마음의 원인을 묻고 있는 아이의 눈빛을 보아하니 어떠한 해답을 내려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자기보다 27년이나 먼저 태어나 살고 있는 엄마로부터.




예상하지 못했던 아이의 상태를 들었을 때 놀랐던 것은 어쩌면 나와 너무나도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이지 않을까. 자세히 뜯어보지 않아도 나의 성격을 아주 많이 닮아있는 아이에게. 


스스로 완벽하다고 느껴질 때까지는 타인에게 나의 재주를 절대 보여주지 않았고, 어렵사리 자신감을 가지고 보여주어도 막상 미접 지근한 반응을 보일 때면 한 없이 작아지는 경험을 한 적이 많았다. 그래서 대단한 자신감과 용기가 동반되지 않는 이상은 웬만해선 나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런 나 자신이 늘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아이만큼은 조금 덜렁 거리더라도 부끄럼 없이 시도하고 실패하고 가 어렵지 않고 자연스러운 아이로 커주길 바랐다. 일부러 아이 앞에서는 무섭고 떨리지만 쿨하게 시도하는 척, 실패해도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한 적도 많았다.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시도와 실패가 별 것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었고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 분명 있음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 콩 심은 데 콩이 나지 팥이 나랴.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 타고난 성격임을 어떡할까. 그런 소심함을 가지고도 40년을 힘들지만 잘 살아온 나를 솔직하게 말해주고 보여주는 방법이 차라리 정면 돌파이면서도 아이가 받아들이기 쉬운 길이라 생각하고 나의 경험들을 공유해보기로 했다. 


"엄마도 그랬어. 아니, 사실 지금도 그래." 


자신과 비슷한 생각과 마음으로 살고 있는 나를 하나씩 말해주기 시작하니 아이는 상기된 표정으로 온 눈과 귀를 나에게 집중하며 듣기 시작했다. 


"엄마는 OO이 보다 더 소심하고 겁이 많은 것 같아. 왜냐면 겁이 나서 오히려 시작도 안 했던 일이 정말 많거든. OO이 처럼 실패했을 때 느낄 감정들이 싫어서. 그런데 엄마는 지금 그걸 더 후회하면서 살고 있는 것 같아." 


"왜?"


"왜냐면 그때 포기했던 일들 중에서 꼭 해보고 싶었던 것들 중에 지금은 아예 할 수 없는 일들이 많더라고. 성공하지 못했어도 한번 시도라도 해봤으면 덜 후회가 됐을 것 같아. 실패했을 때의 좌절감보다 시도하지 않아서 느끼는 지금의 후회가 더 속상해." 


솔직한 경험을 들려줘서 일까. 측은한 표정으로 아이가 나를 보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친한 엄마가 자기와 비슷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었다는 말이 아이에게 위로가 될지 오히려 더한 걱정을 안겨줄지 모르지만 이제 그 정도의 마음의 품은 될 것 같아 선택한 방법이었다. 또 한편은 마음이 홀가분하기도 했다. 쾌활한 아이로 성장시키기 위해 굳이 없는 나의 다른 면을 만들어가며 보여줄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에. 


자존감이 낮은 것이 잘못은 아니지 않나. 수치로 정해져 있지도 않은 감정에 기준을 세우고 잘잘못을 가리듯 자존감 높이는 데에 혈안이 되어 충족이 안 되는 것에 다시 한번 좌절감을 안겨줄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그런 채로 살아도 살만한 세상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어졌다. 


그런 사이 아이의 입에서 의외의 결론이 나왔다. 


"엄마랑 오랜만에 이렇게 오래 이야기하니까 정말 좋았어. 나의 마음을 다 이야기해본 것은 처음이야. 그런데 엄마, 나 아무래도 사춘기인 것 같아. 그래서 더 마음이 불안했던 것 같아.


살짝 허무했지만 그날의 우리가 고민했던 대화에서 가장 정답에 가까운 것 같아 웃겼고, 스스로가 사춘기임을 자각했다는 말에 기특해 보였다. 2차 성징이 일찌감치 시작해서 이젠 문도 닫고 입도 닫을 수 있는 중 2병 아들이 스스럼없이 고민을 엄마에게 털어주는 모습에 감사함을 느꼈다. 이렇게만 유지할 수 있는 사이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이전 16화 이혼한 부모님의 결혼기념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