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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 위로

침대 위 강아지와 펭귄 인형

by 피터

내 침대 머리 맡엔 인형 두 개가 있다.

주황색 후드티를 입은 강아지 하나, 하늘색 모자를 쓴 펭귄 하나.

둘 다 20cm 정도 되는 작은 크기다.

내 취향대로 산 게 아니다. 지방출장으로 자취 중인 아빠에게 딸이 선물로 줬다.

하나는 후드 쓴 강아지는 어린이집에서 받은 거고, 펭귄의 구입 루트는 모르겠다.

주말가족으로 머물다 일요일 내려가는 아빠의 가방에 딸이 쏙 챙겨준 인형들이다.


그 날 이후 강아지와 펭귄이 침대 위 내 손 닿는 거리에 놓였다.

자기 전에, 혹은 자다가, 한 번쯤 얘들은 잘 자나, 툭 건들곤 한다.

그래봐야 무생물 인형들인데, 마치 말 걸면 대화를 할 것 같은 그런 친구들이다.

실제 강아지를 키우면 어떻겠냐고?

내 한 몸 챙기기도 힘든데, 강아지 밥 먹이고 산책 시키고, 낮에는 같이 있어주지도 못하고,

지금 사정엔 손 타는 생물보다 손 덜가는 무생물이 곁에 있는 게 맞다.


인류가 인형을 만든 건 언제부터일까.

가족이 있고, 사람친구가 있고, 개와 고양이와 동물들과 식물도 많았을텐데,

왜 천을 덧댄 인형을 만들었을까.

호모메이커스, 즉 만들고자 하는 욕구 뒤에는 나에게 화내거나 욕하거나,

듣고 싶지 않은 말과 행동을 하는 생물 말고 가만히 나의 시선과 이야기를 들어줄 무언의 위로가 필요해서인지 모른다.

온갖 생물들의 말과 행동에 지친 날엔, 무생물의 위로가 손 닿는 거리에 있기를.

혼자 있는 침대에는 당신의 고단한 마음 알아주는 인형을 놓아두길 권한다.

아무 말 하지 않을 때가 더 따스한 순간들이 있다.


딸은 두 인형을 주면서 아빠, 외로우니까 가져가. 이런 말은 안 했다.

그냥 선물이라고, 이제 내게는 필요없는 것이라 준다고 했다.


톡 쏘는 조언이나, 숱한 위로의 말보다 이런 무심한 위로가 더 애틋할 때가 있다.

너의 말을 듣기보다 나의 마음 속 말을 아무 말 없이 들어주는 따뜻한 침묵에 시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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