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한 클리어 타임은 없다
일요일 저녁, 집에 친구 몇 명이 왔다 저녁 먹고 커피 마시다 돌아간 뒤. 싱크대엔 함께 한 식기들이 놓였다.
냄비와 큰 그릇, 중 그릇, 접시와 잔과 수저, 젓가락...
자발적인 설거지를 시작한다.
고무장갑은 끼고 벗을 때 달라붙는 느낌이 귀찮아서, 집 설거지는 맨 손으로 한다. 스펀지 수세미에 거품을 내고, 부피나 용량이 큰 거부터 젓가락 순으로 슥슥 거품을 묻혀 닦는다.
혹시 기름때 묻은 게 있으면 맨 나중으로 미뤄둔다. 먼저 하면 다른 것들에 기름이 묻어 미끈거리니까.
하얀 거품 묻은 식기류를 바라보면 기분이 좋다. 뭔가 깨끗해지기 시작하는, 하루를 목욕하는 기분이랄까. 이런 시도 떠올린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그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비유하면,
하루 남은 것들 버려두지 마라, 너는 그 어느 시간에 한 번이라도 깨끗한 상태인 적 있느냐.
하루에서 설거지만큼 정리되는 시간이 있을까? 그 생각이 들만큼 설거지 하는 시간이 괜찮았다.
이제 새 물을 틀고, 거품 묻은 식기류들을 새 물로 씻어낸다. 물기를 툭툭 털어내고 차례차례 건조대에 올린다. 오목한 수저는 물기가 고이면 그러니, 둥근 바닥이 밑으로 향하게 둔다. 물론 대접도 사선으로 세워 물기가 빠지게 한다.
싱크대 남은 찌꺼기를 물로 흘려보내고, 주변 물기를 정리하면 대략 10-15분 정도 걸린다.
복잡하고 어수선한 것들을 거품 내고, 닦고, 클리어하는데 드는 그 시간.
어느 하루의 어지럽혀진 마음 또한 설거지만큼 깨끗하게, 단정하게 클리어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것도 10분 내외의 시간으로 이만큼 빛나는 정리라니!
설거지를 언제부터 좋아했지? 설거지를 좋아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동안은 내가 안 하면 남이 하던 시간이 많았다.
설거지를 좋아하게 된 건, '나의 하루가 어수선하고 머릿속은 정리가 안 된 채 복잡함이 늘어가던, 어른의 분주한 날들이 시작인 듯 하다.
글쎄, 그냥 내달렸던 그 이전의 시기엔 그렇게 설거지를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머릿속은 여전히 어수선한 퇴근 후 늦밤, 설거지 하는 그 10분이 참 고요하고, 정숙했다.
늘 손에 쥐던 휴대폰을 놓는 몇 안 되는 기회이기도 했다. 맨 손으로 슥삭슥삭 하다 보면 딴생각도 안 나고, 하고 나면 뭔가 개운하고, 어느 하루는 망쳤지만, 설거지만큼은 완벽하게 정리된 하루였다고 할까.
더럽고 복잡하고 어수선한 세상에서, 10분 정도 투자해 이만큼 깔끔하게 클리어 되는 단정함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
내일은 월요일,
직장인의 보통명사화된 월요병에 지금 어수선하다면, 잠시 설거지를 해보면 어떨까?
ps. 빨래 개는 시간도 좋다. 설거지만큼 클리어 되는 개운함은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정리했다는 작은 성취감(?)을 맛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