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집, 그 위험한 공간이 이제야 보이다니.
우리 할머니는 연례행사처럼 일 년에 한두 번은 꼭 넘어졌다.
낙상 때문에 팔을 다치거나 허리를 삐끗하고, 다리뼈에 금이 가 입원을 하기도 했다.
한 번은 할머니에게 알리지 않고 가족여행으로 일본에 가 있었는데 그땐 로밍서비스가 보편적인 건 아니었어서 숙소에 가서야 와이파이를 쓸 수 있었다.
종일 투어를 하고 저녁에 다들 와이파이가 연결되었는데 문자가 폭탄인 거다. 빗길에 오르막을 오르다가 넘어지며 구르는 바람에 할머니가 크게 다쳤고 병원에 입원을 했다는 소식이었다.
당연히 남은 여행은 근심과 걱정 속에 제대로 구경은커녕 내내 아빠의 짜증과 한숨으로 가득했다.
나는 할머니가 다쳤다는 사고 소식을 들을 때마다 걱정과 동시에 화가 치밀었다.
'아니, 조심하시지 않고!'
고백하자면 그때 나는 우리 할머니가 남들보다 부주의해서 자주 넘어지는 줄 알았다.
왜 그렇게 덜렁거리는 거야. 왜 무거운 짐을 드는 거야. 진짜 왜 그러는 거야!
짜증도 많이 냈다.
나는 할머니를 정말로 사랑했었고 할머니가 다치면 내 몸이 다치는 것 같은 아픔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할머니라 그런 사고로 돌아가실까 봐 전전긍긍하기도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할머니 집에 가는 게 그렇게 싫었다.
할머니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으니까.
마지막 숨을 쉬었던 거실 그 자리에 가만히 누워 있어 보기도 했다.
집에 사람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할머니가 숨을 안 쉬는 걸 왜 아무도 몰랐을까?
할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집을 둘러보니 좀 다르게 보였다.
두 분 모두 집에서의 사고로 돌아가신 후라서 그랬을까?
너무 늦게 깨달은 건 그 사고들이 결코 할머니 할아버지의 잘못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두 분이 돌아가신 뒤에 할머니 댁에 가보니 그제야 나이 많은 두 분이 살기엔 너무 위험한 환경이라는 게 눈에 들어왔다.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시작되는 가파른 계단, 한쪽에만 설치되어 있는 두꺼운 손잡이, 요철이 많은 마당, 거실에 비해 푹 꺼져있는 화장실, 미끄러운 바닥.
이게 이제야 눈에 보이다니.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에 한동안 자책 할 수밖에 없었다.
마당 바닥을 평탄하게 하자고 내가 어른들께 건의해 볼걸.
안전손잡이 설치하는 걸 알아보라던 아빠 이야기를 귀담아 들었어야 했는데.
그랬다면 할아버지가 화장실 가는 길에 안 넘어졌을까?
좀 더 오래 사셨을까?
아마 그때 처음 생각했던 것 같다.
아, 안넘어지고 안다치는 집을 만들면 노인이 되어도 좀 더 오래 잘 살 수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이미 요즘 집들은 정말 똑똑해졌다.
집안에 방범 시스템이 갖춰진 것은 기본, 응급상황이 닥치면 바로 비상호출을 할 수도 있고 집 안에서 생활할 때 생체신호로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AI, IOT 기술도 이미 보편화되어 있다.
심지어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조명부터 전기, 가스, 가전제품까지 제어가 가능할 정도니까.
하지만 정작 이런 시스템이 갖춰진 집에 가보면 조작 부분을 테이프로 가려놓고 "사용금지" 라고 적어 놓았다. 사용방법이 낯선 시니어들이 실수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따라잡기 힘든 속도로 발전하는 기술을 나이들어가는 사람들이 바로바로 습득해서 실생활에 적용해서 편리하게 살기란 쉬운일이 아니다.
이런 기술들이 사람들을 위해 발전하고 있다는데 역설적이게도 우리 사회에서 혼자, 또는 늙어 가는 사람들에게는 안전하고 편리하게 살고 있지는 않다.
나는 그래서 첨단 시스템이 없이도 단순하고 쉬운 주거 디자인을 제시하고 싶다.
돈이 많이 들거나 전문기술을 사용해야하거나 다 뜯어고치는 방법이 아니라도 조금 더 안전하고 조금 더 자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분명 있다고 믿는다.
조금은 낯선 유니버설디자인. 이제는 모두의 집에 적용해야할 때다.
나는 유니버설 디자인을 **‘누구나의 하루가 덜 힘들어지는 디자인’**이라고 소개한다.
그러니 이런 유니버설디자인이 우리집에도 적용이 된다면
힘이 빠져도 문이 열리고, 잠깐 앉을 곳이 있어서 숨을 고를 수 있고, 문턱 대신 완만한 경사가 존엄을 지켜주는 집.이 되는 거다.
누군가를 특별 대우하는 장식이 아니라, 모두가 편해지는 기본 값을 다시 깔아두는 일이라고나 할까.
유니버설 디자인은 ‘특정 대상을 위한 배려’가 아니다. 유니버설디자인에는 7원칙이 있는데 그 중에서 내가 특히 좋아하는 원칙은 누구나 실수해도 덜 다치게 하는 설계이다.
계단 옆에 경사로를 ‘추가’하는 대신 문턱 자체를 없애고, 둥근 모서리와 레버 손잡이·자동문처럼 힘과 동작의 부담을 낮추는 방식들이 그렇다.
키보드에 뒤로가기 버튼이 있는 것 처럼 실수를 해도 괜찮고 다치지 않을 수 있다면 나이가 들어서도 오랫동안 혼자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핵심은 “사람을 바꾸는 게 아니라 집이 먼저 바뀌는 것”. 나이가 들면 거기에 맞게 집도 맞춰 바꾸는 것. 그래서 노인 뿐만을 위한 디자인이 아니라 모두의 일상을 편하게 하고 싶어졌다.
*유니버설디자인?
유니버설 디자인(영어: universal design, 보편(적) 설계)은 누구나, 즉 연령이나 능력 등에 상관없이 제품, 시설, 서비스 등을 이용하는데 있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요즘은 모두를 위한 디자인이나 범용디자인이라는 말로 설명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서 건물 입구에 계단과 경사로를 추가하는 대신 처음부터 아예 계단과 경사로가 필요 없도록 문턱이 없도록 디자인한다거나 여닫이문에 달린 손잡이를 팔꿈치나 다른 신체로 열 수 있게 레버형 또는 아예 자동문으로 설계를 한다던가 하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