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해 둔 부모님의 장례.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할머니 집에 가는 게 싫었다.
"왔나?" 하며 할머니가 금방이라도 반겨줄 것 같았다.
여전한 할머니 냄새, 할머니 살림. 그 어느 것 하나도 더 이상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음에도 발걸음을 자주 하지 않았던 것은 미워했던 할아버지가 여전히 그 집에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앞선 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할아버지의 돌봄이 문제였다.
나는 돌봄 당사자는 아니었지만 내 부모님이, 삼촌 숙모들이 돌봄에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지켜보면서 와, 이건 정말 큰 문제인데?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이제껏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성인 남성(할아버지)을 할머니 혼자 돌보고 있었고 그에 따른 온갖 어려운 점은 할머니 선에서 해결이 되었기 때문에 자식들은 뭘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던 것이다.
돌봄도 문제였지만 죽음은 더 문제였다.
당장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그랬다.
부모의 죽음을 미리 준비하는 가족들이 얼마나 있겠냐마는 막연한 방향성조차 없었으니 당연히 최소한의 가이드라인 따위도 없었다.
아무리 할머니가 급성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다고는 하지만
사회생활을 30년 가까이 해온 어른 열명(아들 다섯과 며느리 다섯)이 뭔가 결정을 할 때마다 끙끙 앓았다.
그나마 장례식장 사장이 아빠 친구라서 그분 도움이 아주 컸다.
한번 해 봐서 할아버지 때는 좀 나을 줄 알았더니 두 번째 때도 다르지 않았다.
할아버지 장례식을 치르는 삼일동안 아빠와 그 형제들은 여전히 갈팡질팡했다.
평소에 할머니가 입버릇처럼 "내가 죽으면 화장해서 내 고향산천, 내 부모 모신 곳에 뿌려라. 납골당에는 절대 넣지 말아라 생각만 해도 갑갑하다. 나는 훨훨 날아가고 싶으니 꼭 그리해 다오. 그리고 아버지와는 절대로 합장을 하거나 곁에 나란히 두지 말아라" 하고 나름 명확하게 본인의 사후처리에 대한 의사표현을 해서 나는 그 말을 전했다.
마침 이 말을 들은 가족은 나뿐만이 아니어서 다들 할머니의 말대로 하는 게 좋다는 의견이 대세였다.
할머니를 어디에 모실 것인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던 아빠와 삼촌들은 더 좋은 대안이 있거나 아니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내지 못했거나 아니면 결정을 하는 것에 부담을 느꼈던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결국 할머니를 화장하고 할머니 고향 동네 선산의 할머니 부모님 산소 근처에 산골장으로 할머니를 모셨다.
문제는 할아버지였다.
아빠말로는 요양병원에 계실 때 "태종대 바다에 뿌려라"라는 유언을 하셨다고는 하나 엄연한 불법이었고 몰래 가서 뿌리는 것도 우리의 정서상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할아버지는 요양병원에 6개월 정도 계셨고 또 어느 정도 가족들이 생각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고 보는데 장례식 내내 또 할아버지를 어디에 모실 것인지에 대해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나는 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 큰삼촌과 소리를 지르며 싸웠는데 그 이유는 할아버지를 할머니 산골장 한 곳에다가 모신다고 해서 그렇다.
결국 너무 어이없는 방법으로 할아버지를 모셨는데 솔직히 내 생각을 말하자면 할아버지의 자식들은 너무 성의가 없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나는 이 일이 두고두고 찝찝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어쨌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르면서 노후와 돌봄, 죽음 등에 대한 내 관점이 완전히 바뀌었다. 관점이 바뀌었다고 표현하는 것보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주제로 인생에 큰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맞겠다.
2-3년 정도 겪은 매우 개인적인 경험으로 창업까지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모든 게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기본적으로 부모님이 나이 들고 병들어 돌아가시게 될 상황들에 맞추어 나는 대략적인 계획을 세워두었다.
내 부모님은 전형적인 베이비부머세대로써 은퇴를 하고 작년과 재작년에 지공파가 되었다.
지공 파란 말은 나도 새로 알게 되었는데 만 65세가 되어 지하철을 공짜로 탈 수 있게 된 사람들을 이르는 말이라고 했다.
아직 너무 건강하게 생활하고 계시니 이런 계획을 하고 있다는 걸 알면 서운하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난 내 동생에게도 이 문제에 대해 의견을 구하면서 계속 수정과 보완 중이다.
다행히 부모님도 동생도 나도 한 동네에 살고 있으니 조금 더 수월하기도 하고.
*근거리 돌봄이 기준이다.
어떤 시기든 연락루틴이 있어야하고(하루 2번 통화, 일주일에 한두번 같이 식사 등)
돌봄을 분담할 수 있는 형제, 가족, 지인이 있다면 반드시 역할을 분담해야한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부모님의 자발적인 의사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 뭔가 하실 수 있을때 최대한 의사결정을 해두고, 필요한 경우 위임할 수 있도록 준비되는 것이 제일 좋다.
1. 부모님이 두 분 모두 건강한 상태로 노후를 보내는 시기
- 연금과 저축액 등으로 스스로 가사활동과 여가를 즐기는 것을 지지한다. (마음으로)
- 비정기적 용돈을 드리면서 간혹 생활에 불편한 일들을 서포트한다. (부모의 요청사항 해결, 예를 들자면 스마트폰이나 앱 사용법, 쇼핑이나 여행 등 가격비교, 법률문제 등)
2. 부모님 중 한 분이 돌아가셔서 한 분만 남은 시기
- 남은 한 분이 건강하다면 최소한의 가사지원만 하면서 1번의 상태를 유지한다.
3. 돌봄이 필요한 시기
- 부모님 상태에 따라 다르겠지만 신체활동성이 양호해서 가사지원 정도로 집에서 지내실 수 있다면 최대한 오래 집에서 생활하실 수 있도록 지원.
- 두 분 중 한 분만 돌봄이 필요한 경우는 돌봄으로 인한 피로가 심해지지 않도록 가사지원, 재가요양지원 등으로 최대한 오래 집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되 건강한 분은 반드시 정기적으로 돌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준다.
- 치매, 와병, 중병 등 도저히 집에서 돌봄이 안될 경우는 당사자의 의견을 최우선으로 하되 집에서 돌봄을 해야 할 경우 동생과 내가 교대로 돌봄. 홈 IOT, AI 등을 최대한 활용.
- 최후의 방법으로 의료기관으로 가야 할 경우는 없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해야 할 때에는 과감하게 결정하되 접근성이 높고 존엄한 생활이 가능한 곳을 선택.
4. 장례
- 장례식장과 화장장은 이미 선택해 두었다. 당연하지만 이런 곳은 예약은 안된다. 돌아가시는 시기에 따라서 이용이 불가할 수도 있기 때문에 2순위도 생각해 두었다. 이건 부모님들께도 말씀드려 두었기 때문에 본인들이 죽으면 어디서 장례를 치를지, 어디서 화장하게 될지 알고 있다. 평소에도 부고가 있으면 자주 가는 곳이기 때문에 본인들도 익숙한 곳이다.
- 어디에 모실 것인지에 대한 것이 문제이다.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이 잘 된다면 부산 근교에 30만 평-50만 평쯤 되는 임야를 매입해서 자연장 위주의 추모공원을 만들 것이다.
- 부모님 생전에 이 계획이 실행된다면 당연히 여기에 모실 거다. 우리 일가친척들도 대부분 모실 수 있을 것이고, 그런데 이 계획이 어려워진다면 바다가 잘 내려다보이는 곳에 소규모 가족 묘지 부지를 사서 수목장 형태로 모시려고 한다. (나중에 나도 가기 위해서)
- 하지만 가장 현실적이고 부모님께도 말씀드려 둔 것은 동생과 내가 접근하기 가장 좋은 사설 추모공원에 모시는 것이다. 소형평장으로 말이다. (나중에 나도 여기 가야지..)
이런 계획들이 있다는 건 부모님께 가볍게 말씀드려 놓았다.
죽으면 끝이라고 다 너 좋을 대로 처리하라고는 하시지만 나는 할머니 사후 할아버지의 죽음까지의 전 과정을 지켜보면서 당사자의 의견이 전혀 고려되지 않는 것이나 우왕좌왕 갈피를 못 잡는 일들을 겪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대책을 세워두었다.
자세하게는 아니라도 정말 러프하게라도 알아봐 두는 편이 낫다.
돌아가시고 나면 감정적으로도 물리적인 시간으로도 이런 걸 생각할 여유가 없다.
사실 나는 본인 사후문제도 본인 생전이 어느 정도 대책마련을 해두는 게 가장 좋다는 입장이다.
자녀가 있다면 자녀에게 이야기해 주는 게 부담을 덜 수 있는 방법이고, 혼자라면 누군가에게 사후처리문제를 상의해 두면 될 것이다.
여기에는 죽음에 관련해서 썼지만 더 앞서서는 노후나 돌봄이 필요한 시기에 대한 방책도 필요하다.
성실하게 40년 이상 경제생활을 해온 우리 부모님의 지금 노후생활을 보면..
준비 없이 맞이한 노후생활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본인들은 모든 대책이 다 있고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모르는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나는 이런 모든 일들을 겪으면서 어쩌면 필연적으로 지금 이 사업을 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 집에서 끝까지.
자립적인 노후생활을 위한 공간 디자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