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죽음을 호상이라 할까?

할머니와 할아버지, 누구의 죽음이 호상인가.

by 조와와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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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딱 2년 10개월을 더 사셨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보다 열 살이나 어렸고..

할아버지는 중풍에다 고혈압도 있었으니 그 누구도 할머니보다 할아버지가 오래 사실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우리 엄마가 결혼을 할 때에도 아버지가 지병이 있으시고 곧 돌아가실 수 있으니 결혼을 서둘러야 한다고 했었다고 한다.

우리 엄마가 결혼을 하고 삼십 년이 지나도록 할아버지는 돌아가시지 않았고 오히려 평생 병시중으로 고생한 할머니가 먼저 가셨으니 할머니의 죽음에 모두가 애통해할 만했다.


별이 쏟아지던 한여름밤,

서귀포의 한 숲 속 캠핑장에서 달큼한 와인과 두툼한 스테이크로 분위기를 내고 있었는데

그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할머니가 집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아마 그때까진 돌아가신 건 아니었고, 티브이를 보는 누운 자세로 의식이 없는 할머니를 발견한 사촌동생이 당황해서 내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

하필 제주도에 살고 있는 나에게 전화를 하다니..


무슨 소리냐고 자초지종을 물으며 집에 어른이 없냐 하니 다들 나가고 안 계신다며 할머니가 이상하다고 할아버지가 불러서 가보니 이리되어있더라는 것이다. 마침 놀러 와있던 동생 친구가 심폐소생술을 알고 있어서 가슴을 누르고 있고 119에 신고를 해줘서 기다리고 있다는 거다.

그런데 할머니 입술이 파랗고 얼굴이 차다고.. 아무래도 돌아가신 것 같다고.


일단 전화를 끊고 정신이 아득한 상태로 아빠한테 영상통화를 하니 느긋하게 티브이로 뉴스를 보면서 잘 놀고 있냐는 거다.

하도 기가 막혀 울면서 할머니가 돌아가셨단다 하니 처음엔 무슨 소리인가 어리둥절하더니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는 모습이라니..


이어서 마침 여름철 연휴기간이라 다음날 제주도 우리 집으로 놀러 오기로 한 작은삼촌 숙모한테 전화를 하니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 목소리로 내일 반찬을 뭘 좀 가져다줄까 하신다.

울먹이며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니 어서 할머니댁으로 가보세요. 전했다.

허둥지둥 당황하며 얘가 무슨 소릴 하는 거야 하더니 심상찮았는지 전화를 끊었다.


잠시 전까지 가족들의 안부를 생각하며 편안히 누워 있던 나는

그 순간 모든 별빛이 꺼져버린 듯한 슬픔에 잠겼다.

아니, 거짓말일 거야. 곧 의식회복했다는 소식이 있겠지.


한밤 중에 정신없이 텐트를 걷고 어둠 속에서 울며 어떻게 그 산길을 내려왔는지 기억이 없다.

하필 비행기도 배도 탈 수 없는 시간이니 날이 새도록 방구석에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울기만 했다.

결정적으로 내가 제주도 생활을 청산하고 돌아온 이유가 되기도 했다.

어떻게로든 육지로 갈 수 없었던 고립감.. 처참했다.


해가 뜨자마자 광복절 연휴로 비행기표구하기도 쉽지 않은 제주공항에서 겨우 첫 비행기를 타고 부산으로 왔다.

하룻밤새 가족 모두가 상주가 되어 아무도 마중올 수 없으니 비보를 들은 내 친구가 나를 데리러 공항으로 나왔다.

친구를 보고 눈을 마주쳤는데.. 그 이후에는 또 기억이 없다.


삼일장을 하는데..

사람들이 자꾸 호상이라고 하는 거다.

아니 사람이 죽었는데 무슨 빌어먹을 호상이라는 거야.

좋은 죽음이 어디 있다고.


그런데 요즘 들어 계속 생각이 나는 건 우리 할머니는 정말로 참 호상이었다는 거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죽음을 비교하면 진짜 그렇다.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시다 그대로 주무시듯 세상을 떠난 할머니는 그날 저녁까지 잘 드시고 매일 밤 그러했던 것처럼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평소 할머니 루틴은 식사하시고 씻고 거실바닥에 옆으로 누워 티브이를 보다가 까무룩 초저녁 잠이 살포시 들고 그사이 자녀들이나 내 전화가 오는 바람에 잠을 깨면 잠시 통화하다가 그제야 방으로 들어가서 할아버지와 함께 주무셨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날 밤. 평소랑 달랐던 것이라면 초저녁 살포시 잠든 게 그냥 그것으로 끝이었다는 거다.

다시 눈을 뜨지 않았고 그다음 날을 더 이상 맞이할 수 없었을 뿐.

내일이 안 올 수도 있었다는 거, 할머니는 꿈에도 몰랐을 거다.

그래도 늘 기도하셨든 자는 잠에 가셨으니 그 얼마나 좋은 죽음이었을까.

고통도 괴로움도 없는 편안한 죽음.


할아버진 좀 힘들었다.

생전 가장 두려워했던 요양병원으로 끌려갔고(삼촌들의 표현)

낯선 병실에서 벗어나 항상 집으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이즈음 내가 안타깝게 생각했던는 것은 할아버지는 아무런 선택권이 없었다는 것이다.

일단 본인 스스로 명확하게 의견을 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말씀을 편하게 하신다거나 고집을 피운 들 그걸 들어줄 자식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약하게나마 의사표현을 하긴 했으나 모든 결정은 아빠가 했다.

그 결정은 형제들의 암묵적 동의하에 이루어진 것이기는 했으나 다들 속으로 혹시나 돌봄에 동원되어야 할까 봐 누구 하나 의견을 내지 않았다.

모두 수동적으로 그냥 큰 형님이 하자는 대로 따랐을 뿐.

불만이 있었어도 돌아가서 숙모들한테나 했을 거다.

어쩌면 숙모들도 병원에 모시는 게 최고라고 거들었을 수도 있고.


그렇다고 아빠가 현명한 결정을 했던가 생각하면 글쎄..

아마 고려해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는 아니었겠지만 아빠는 아빠 나름대로 효자타이틀을 지키면서도 본인에게 큰 타격은 없는 결정을 내리려 애썼을 것이다.

아니면 할아버지가 그렇게 빨리 돌아가실 줄 몰라서 결정을 회피하고 있었을 수도 있고.


막내삼촌은 좀 다르긴 했다.

본인이 어떻게든 해볼 테니 집으로 모셔가자 하기도 했고, 아예 수술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하기도 했다.

그랬으면 더 사셨을지 모른다고.

그래도 말 뿐이었다.

정말로 그렇게 할 테니 제발 퇴원시키자고 적극적으로 밀어붙이진 않았다.


체구가 건장한 와병환자를 집에서 매번 일으키고 씻기고 한다는 건 직접 해보지 않은 그 누구도 함부로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으니까.

아마 두려웠을 수도 있고.


할아버지는 병원에서 점점 더 말라갔다.

중풍으로 걸음걸이가 좀 불편하고 한쪽 마비가 있긴 했지만 원체 풍채가 좋으셔서 할머니는 할아버지랑 다니는 걸 제법 좋아했다.

영감탱이 따라나서봤자 귀찮기만 하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남편이 있다는 걸 과시했다는 걸.

어쨌든, 좁은 병원 침대에서 불편하게 주무시는 데다 늘 환한 빛과 낯선 소음, 그리고 고관절 수술 이후에는 섬망증세 때문에 밤에는 신체억제를 하기도 했다.

할아버지의 손목과 발목은 푸르고 노란 멍들이 가득했고 얼굴엔 광대뼈가 불거질 정도로 뼈만 앙상했다.

병원에서는 연하곤란증세가 있으니 연하제라는 걸 사 오라고 했다.

식사 같지도 않은 걸 식사라고 내놓는 것도 충격인데 식사수발을 드는 모습은 보기가 어려웠다.

정해진 시간에 두어 번 권하다 먹지 않으면 그냥 식판을 회수.

씹고 삼키는 게 어려운 할아버지에게 얼마나 고역이었을까..


갈 때마다 할아버지는 표정이 없어졌다.

원래도 말수는 없었지만 표현은 더 없어졌다.

마치 아무 의욕이 없는 사람 같았다.


할아버지를 다루는 의료인들은 가족이 보거나 말거나 본인들의 일을 했다.

엉덩이에 욕창이 생겼다며 한참을 변명 아닌 변명을 하기도 하고

대소변 처리에 필요하니 사 오라는 일회용품도 점점 늘어갔다.

말투는 다정했으나 기계적이었고 손길은 능숙했으나 거칠었다.

나는 차마 내 손으로 그 일들을 해내지는 못하면서도 그저 마음만 아팠다.

정말 비겁했다.


우리가 할아버지 병문안을 매일 가지 않는다는 아빠의 불만과 타박 때문에 미움이 커지기도 하고 슬슬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할머니가 보고 싶고 할머니 생각이 날 때면 할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더 샘솟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나는 할아버지 병문안을 다니던 그때 처음으로 내가 할아버지를 왜 싫어하게 되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살고 있는 건지 궁금하기도 했고.


그 당시 나는 여전히 할머니의 죽음 뒤에 남겨진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우울한 상태를 지내고 있었다.

우울의 정도는 좀 심각한 수준이라 혼자 살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래서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독립생활도 정리하고 부모님 집에서 함께 지내는 중이었는데 할머니에게도 나에게도 애증의 대상인 할아버지가 그런 식으로 지내고 있는 것이 속으로 고소했는지 아니면 정말 안되어 보였는지 모르겠다.

뭔가 묻고 싶고 더 다정하게 굴고 싶은 마음도 있긴 했지만 나 역시 소극적이었고 어색했다.

그래서 하지 않았다.


동생은 첫 애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엄마는 산후바라지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갓 새끼를 낳은 어미개처럼 예민한 동생을 돌보느라 엄마도 덩달아 예민해졌다.

엄마에겐 자식 낳은 자기 자식이 더 중요했으니까.

별 달리 하는 일 없던 나는 꼬물거리는 첫 조카를 안으면서 동시에 병원 침대에서 늙어 죽어가는 할아버지를 생각하기도 했다.


어느 날은 아빠가 할아버지의 반지를 끼고 돌아왔다.

평생 자기밖에 모르고 자식한테도 베풀 줄 몰랐던 (할머니의 표현) 할아버지가 자기 물건을 누군가에게 주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놀랐다.


며칠 뒤 아침에 일어나니 집에 아무도 없는데 부재중 전화가 수십 통이 와 있었다.

평소에 나에게 전화할 일이 없는 사촌에게서도 와 있고 어디냐는 문자도 여럿 와 있고.

괜히 아침나절 집안 분위기가 스산했다.

뭔가 이상해서 엄마에게 전화를 하고서야 할아버지가 간밤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며칠 전부터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서 폐렴이 왔다가 또 회복되었다가 반복하고 있었고 그래서 아빠나 엄마가 걱정을 좀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주변에서 하는 말들이 병원에 있는 노인들 위급하다고 불려 가는 건 양치기 소년만큼이나 믿을게 못되어서 한 열 번쯤 왔다 갔다 해야 진짜 돌아가시는 거라고 안심을 시켜주더란다.


그런데 그날 밤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고 위독하니 임종 준비를 하라며 가족들을 소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우리 엄마아빠는 평소에는 그러지도 않으면서 괜히 자는 나까지 깨워 부산스럽게 할 일이 뭐가 있겠냐 싶어 나를 두고 간 것이고 할아버지는 정말로 그날 밤에 돌아가신 것이다.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초점 없는 눈으로 병실에 누워 무슨 생각을 하면서 돌아가셨을까.

의식은 있었을까?

아들들 며느리들 손주들 다들 인사는 했을까?

첫 손주인 나는 왜 그 자리에 못 갔을까?

모두들 내가 할아버지를 미워해서 안 왔다고 생각한 건 아닐까?

다물어지지 않는 입을 손수건으로 가렸던 것은 내려주었을까?

손 발을 못 움직이게 했던 억제대는 설마 안 했었겠지?


비통한 상주들의 울음소리가 문상객들까지 덩달아 울렸던 지난 할머니 장례때와는 달리 할아버지 장례식에서는 이상하게 아무도 울지 않았다.


할머니 장례를 치르는 내내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정신을 잃었다 깨었다 하며 나중에는 목이 쉬고 눈이 부어 울음조차 나오지 않던 나는.. 할아버지 장례일정 중 입관을 하고 운구를 하고 화장을 하는 그 슬픈 의식들이 하나씩 순서대로 치러지는 동안에 단 한 번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우리 할아버지는 호상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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