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김장하던 날

준비 없이 떠나게 된 60년 살던 집.

by 조와와왈

그날은 김장을 하는 날이었다.

할머니 돌아가시고 썰렁해진 집안을 오랜만에 가족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채웠다.

김장이라고 해봤자 예전에 할머니 살아계실 때에 비하면 아주 간소화된 것이었는데, 미리 주문해서 받아 둔 절인 배추에 양념을 치대어 식구대로 나눠 담아주면 끝이었다.


오히려 김장김치에 굴을 얹어 수육에다가 한 상 차려 먹을 생각에 다들 신이 난 모양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는 초겨울즈음 할머니집에 모여 함께 김장을 하곤 했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연례행사였던 것 같다.

할머니도 그때는 정정했었고 김치맛도 제법 좋아서 나는 할머니의 겉절이, 새 김치, 김장김치, 푹 익은 김치, 어느 하나 맛없는 게 없을 정도였으니까.

김장을 하기로 한 며칠 전부터 할머니집 마당은 부산스러웠다.

배추를 다듬고 씻고 절이고,

아들 며느리 손주들이 모이는 당일에는 모두가 각자 알아서 바빴다.

절인 배추를 옮겨 담고 소쿠리나 김치통 같은 것들을 씻어 나르고,

무를 채 썰고 양념 간을 보고 빙 둘러앉아 배추에 양념을 묻히고..

갓 지은 하얀 쌀밥에 갓 담은 김치를 죽죽 찢어 걸쳐 올린 한 숟가락을 오며 가며 얻어먹다 보면 정작 수육을 먹을 배가 남아나질 않았었지.


어디 가면 자랑스럽게 말하기도 했다.

"나는 우리 할머니 김치밖에 못 먹어."


하지만 어느샌가부터 차츰 모이는 일이 줄었고 할머니 음식이 자꾸 맛이 변하기 시작하면서 김치도 이상하게 할머니 김치 맛이 안 났다.

익으면 더 맛이 이상해서 올해는 뭐가 문제인고 하며 난감해하던 할머니의 표정이란..


이런 상념들로 한참 마당을 떠돌다가 집으로 들어가니 거실 한쪽으로 사촌들이 모여 앉아있고 할아버진 뭔가 묘한 표정으로 복작복작한 광경을 멍하니 쳐다보고 계셨다.


반평생을 뇌졸중 후유증인 편마비와 언어장애 환자로 살아온 할아버지는 가족들과 딱히 소통을 하거나 살가운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자녀들이나 손주들이랑 이렇다 할 대화를 하지도 않았고 뭔가 늘 할머니를 통해서 의사 전달을 하거나 우리와는 단순히 인사정도만 나누었다.


문제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니 할아버지와 제대로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가족들과 할아버지의 소통방식은 한결같았는데..

주로 가족들이 일방적으로 인사를 한다.

"할아버지~ 저희 왔어요~"

"할아버지~ 진지 드세요~"

"할아버지~ 저희 가요~"

그러면 할아버지는 딱히 대화라고 할 수 없는 말로 대답을 하셨다.

"우으어어~~"

가끔씩 아들들이나 며느리들이 기색을 살피거나 기분을 추정해서 원하실 만한 것을 해드리니까 딱히 말씀을 안 하셔도 큰 불편함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할머니 생전 말씀으로는 중풍으로 혀에도 마비가 오니 발음이 제대로 안되고 말을 하려면 침이 줄줄 흘러서.. 그게 너무 자존심이 상해서 아예 말문을 닫아버렸다는 거다.

말이라도 없으니 2등은 한다고 하며 가끔 흉을 보기도 했고.

나는 할머니가 내게 남긴 할아버지의 흉과 험담 때문에 할아버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혼자 계시게 된 할아버지가 가끔 가엽게 느껴졌다.

단어나 문장이라고는 할 수 없는 그 소리가 그래도 내게는 아쉬움처럼 들려왔으니까.

"아휴 너희 왔구나 오는데 춥진 않았니?"

"그래 어서 맛있게 먹자꾸나"

"벌써 가려고? 좀 더 있다까지 않고"


그날도 우리의 대화는 다르지 않아서 엄마가 할아버지 드리라고 내 준 과일 접시를 들고 할아버지 곁에 섰는데 뭔가 이상한 거다.


묘하게 일그러진 얼굴, 불편한 자세.


"할아버지 어디 불편하세요??"

"우어으어으"


얼마 지나지 않아 식사 시간이 되어 다시 한번 할아버지를 모시러 갔다.

"할아버지 진지 드시러 오시래요"

구순이 다 되어가는 노인이 혼자 소파에서 일어서기란 제법 오래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서 곁에 선 나는 무심코 할아버지의 팔을 붙들고 일으키려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평소와는 다른 신음이 섞인 소리를 내며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풀썩 주저앉으시는 것이었다.


"아빠!!!!!"


내 외침에 놀란 아빠와 삼촌들이 모여들었다.

할아버지는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고 소파에 깊숙이 파묻혀 있고 당황한 아빠와 삼촌들은 서로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그제야 할아버지의 기색을 살피기 시작했다.

결국 평소에 할아버지와 같은 대문을 쓰며 한 집에 사는 삼촌이 이실직고를 했다.


"며칠 전에 아버지가 살짝 넘어졌다는데..."


자초지종을 듣자 하니 사흘 전 밤 중에 화장실을 다녀오다 미끄러져 넘어졌고 파스를 붙이면 낫겠지 싶었는데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단다.

할아버지가 평소에 표현은 안 하지만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요양원으로 보내지는 것이었고.

함께 살던 삼촌 또한 아버지를 병원에 모시는 것이 막연히 두렵기도 한 데다 형님들한테 알려봤자 좋을 소리 들을 것이 없으니 본의 아니게 숨기게 된 것이었다.


며칠 쉬다 보면 낫겠지 했었다나..


그런데 하필 장남 주도로 시끌벅적하게 모여 김장을 하게 되어 어쩌나 하던 차에 들키게 된 것이다.


놀란 가족들이 그제야 상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를 일으켜 세워보니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고 소리만 지르고 고통스러워하고 겨드랑이에 팔을 끼워 뒤에서 안아 올려보니 하체가 마치 분리된 것처럼 흔들거리고..

다들 어쩔 줄을 몰라 당황하고 있으려니 누군가 당장 119를 부르라고 소리쳤다.


누가 부른 건지는 모르겠지만 곧 119 구급대가 도착했고 안 가겠다고 몸을 비틀던 할아버지는 결국 들것에 실려 앰뷸런스를 타고 손수 지어 60년 넘게 살아왔던 집을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실려나간 뒤로 다시 집에 와서 자기 물건을 정리하거나 집터를 돌아볼 기회도 없이 6개월 뒤에 돌아가셨다.


그 날 이후, 나는 효와 가족, 그리고 인간의 삶 전체가 구조로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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