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적 자립. 나이 들어서도 스스로 움직이고 내가 나답게 살 수 있는..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돌봄이라는 걸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최대한 자립적으로 노후를 보낼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집착도 점점 강해졌다.
더불어 내 부모에 대한 관점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K-장녀로서 부모를 부양하고 늙고 병들면, 아니 그전에 미리 내가 돌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나부터 부모에게서 독립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물리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가만 돌아보면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가면서 자연스럽게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살았다.
하지만 할머니집에서 하숙을 했고 유학을 가서도 엄마의 친구집에서 홈스테이를 했으니 완벽한 독립이라고는 할 수가 없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는 정말로 혼자 살게 되었는데 이것도 좀 반쪽짜리 독립이었다.
부모님이 구해준 집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안에 채우는 살림도 내 취향이나 내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 부모님이 사주었고 골라줬다.
물리적 독립은 되었으나 경제적 자립이 안되었던 것이다.
나는 이 문제 때문에 오래 괴로웠다.
내 취향이나 의견과는 전혀 상관없는, 아니 완전히 무시당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사주는 사람 마음대로 꾸며진 집에서 나는 울기도 많이 했다.
내가 처음으로 혼자살게 된 집에서 나는 복덕방에나 있을법한 아빠가 제멋대로 고른 물소통가죽 소파에 앉을 때마다 화가 났다.
이미 그 소파가 들어올 때부터 나는 싫다고 울고 있었는데 아빠는 일년에 몇 번 오지도 않을 내 집에 자기 취향의 물건을 들여놓았다.
엄마는 자기가 살림하면서 좋다고 생각하는 가구나 가전. 주방용품들을 사다날랐다.
작은 집에 어울리지 않는 큰 청소기같은..
내 공간이었지만, 내 선택은 절대 아니었다.
이 문제는 나중에 좀 더 자세히 쓰고 싶은 주제인데, 부모의 취향은 내게도 너무 큰 영향을 끼쳤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사실 얼마 전까지도 정서적 자립이 안 됐다.
부모를 존경하고 존중한다는 미명아래 많은 것들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심정적으로 의지했다.
부모가 권하는 건 무조건 다 좋고 옳은 건 줄 알았고, 거역하면 안되는 건 줄 알았다.
감정적으로도 분리가 안되어서 일상생활의 거의 모든 것을 공유하며 지냈다.
엄마의 기분이 나의 하루를 좌우했고, 아빠의 표정 하나에 내 선택이 흔들렸다.
나도 세상을 살아가는 가치관과 기준이 명확해지는 때였으니 어느 순간 부모에게도 나만의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기도 했다.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나를 놓지 못했다.
나 역시 부모의 기대를 놏지 못했다.
그래서 내게 부모와의 정서적 독립은 '무심함'이나 '단절' 같은 게 아니라 '건강한 거리감'을 배우는 일이었다.
부모와 가깝게 지내고 화목하고 모든 걸 공유하고 그런 건 결코 건강한 관계가 아니었고 더 늦기 전에 어떻게든 달라져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부끄럽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마흔이 된 지금에야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완벽한 독립을 하고 있는 중이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나는 몇 가지 개념에 꽂히게 되었는데 내가 그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자립"이다.
이 개념에 대해 사유하다 보니 정작 나 자신도 자립이 안된 채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것의 목표는 아이가 자립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태어나서 성인이 되는 사람들에게만 한정되는 말이 아니었다.
성인도 자립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내보니 의외로 자립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세상이다.
자립에는 여러 단계가 있다.
내 몸을 스스로 돌보는 신체적 자립.
스스로 먹고 사는 경제적 자립.
혼자 시간을 견디는 정서적 자립.
그리고 공간적 자립.
자립에는 이처럼 너무나 많은 영역이 있는데 일단 씻고 용변을 보는 등 내 몸을 관리하는 개인위생관리가 스스로 되어야 한다.
노인이나 환자가 되면 이걸 스스로 못하는 일이 생기고 그러면 누군가가 이 문제를 해결해줘야 한다.
배우자나 자녀가 하면 그나마 (보이는) 돈이 안 들지만 남의 손에 맡기는 순간 돈이 들어간다.
개인이 부담을 하든 국가에서 지원을 받든 나 스스로 할 수 없는 그 순간부터 다 돈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먹고사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이건 경제적 자립과도 연결되는데 하루 삼시 세 끼를 스스로 지어먹든 사 먹든 숨이 붙어있는 동안에는 어떻게든 먹고 살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먹는다는 건 그냥 씹어 삼키면 되는 게 아니다.
뭘 먹을지 결정하고 장을 보고 음식을 장만하고 차려서 먹고 먹은 걸 치우는 그 모든 행위에 대해 배워둬야 한다.
보통 은퇴한 이후에 남자들이 이 문제 때문에 배우자와 가장 큰 갈등을 빚는다고 한다.
그리고 스스로 돈을 벌어보지 못한 사람들, 물론 돈을 벌 필요가 없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누구든 직접 노동을 하든 재테크를 하든 돈을 벌어서 생활을 유지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국가의 지원을 받는 방법이라도 알아두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복지체계가 아주 잘 되어 있어서 조금만 노력하면 먹고사는 문제도 다 해결된다.
그리고 세 번째는 혼자 시간을 잘 보낼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은 감정과도 연결되어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걸 하기 어려워한다. 결혼 유무, 자녀유무에 관계없다. 부부사이에도 혼자만의 시간은 생기기 마련이고 자식도 크면 타인이다.
외롭지 않아야 둘이서도 셋이서도 넷이서도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내 감정을 내 시간을 스스로 감당할 줄 알아야 괴롭지 않다.
그래서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나이가 들면 최대한 오~래 혼자 생활할 수 있도록 진정한 자립을 해야 한다고 봤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환경이 제일 첫 번째라고 생각했고.
그러므로 마지막으로 내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공간적 자립이다.
나이 들어서도 내가 스스로 움직이고, 일상생활을 가장 편하게 영위할 수 있는 공간.
내가 나답게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손잡이 하나, 조명의 색, 의자 하나의 위치, 싱크대의 높이, 나의 늙어감에 따라 불편을 최소화하고 효율을 극대화 할 수 있는 공간이야 말로 내 독립성을 지켜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효테리어의 본질이다.
자립이란 결국 나를 돌보는 기술이다.
돈과 시간, 감정과 공간까지 스스로 다스릴 줄 아는 사람.
그래서 나는 돌봄을 기다리지 않는다.
스스로를 돌보는 삶. 그것이 내가 말하는 효테리어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