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클수록 여행 캐리어는 단순해진다. >
가족여행을 많이 하다 보니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 여행 가방은 어떻게 챙기세요? 네 가족 짐 챙기는 것도 만만치 않을 텐데...."
여행 출발일이 임박해 오면 "짐은 다 쌌어요? "이다.
나는 여행짐 꾸리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여행 캐리어는 보통 출발 하루 전날 챙긴다. 물론, 필요한 서류 (여권, 국제운전면허증) 등은 미리 확인하고 꺼내어 놓는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목적지도 다 사람 사는 곳이고 여행이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문화를 접하기 위해 가는 건데 이사를 하듯 꼼꼼히 챙겨갈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짐을 대충 챙기면 그만큼 현지에서 필요 없는 지출을 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그 또한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그 경험은 여러 번 반복될수록 리스크도 적어지는 게 사실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여름과 겨울 두 가지 기후를 다 접해야 하므로 다른 때와 다르게 효율적으로 캐리어를 구분해서 진을 챙기는 기술이 필요했다. 여행에 앞서 몇 가지 간단한 팁을 정리해 본다.
1. 비상식량: 아이들이 어릴 땐 햇반과 참치캔, 김 등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해 '비상식량'을 항상 챙겼다. 하지만 아이들이 초등학교 입학하고 학년이 올라감에 따라 이른바 '한국 음식'의 비중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그래도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과 함께 가는 여행이라면 참고할 만한 '비상식량' 리스트이다.
*누룽지 : 햇반보다 더 요긴하게 사용될 수 있다. 햇반은 전자레인지가 없으면 사용하기 어렵다. 실제로 전자레인지가 구비되지 않는 숙소에 갔을 때 뜨거운 물( 90% 이상의 숙소들은 커피 포트를 구비하고 있다. )을 부어 덜 익힌 햇반을 겨우 먹어 본 경험이 있다. 그에 반해 누룽지는 뜨거운 물만 부으면 구수한 국밥이 완성되니 추천할만하다. 이동하는 기차 안에서 누룽지를 부셔 먹는 것도 아주 별미이다.
*미역국&된장국 블록 : 마트에 가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오뚜기 국물 건조블록을 추천한다. 건조되어 가볍고 커피처럼 물만 부으면 되니 간단하다. 사용 후 남으면 외국인 여행객에게 선물하고 와도 아주 좋다. 특히, 리조트 등 수영 놀이 후 아이들에게 코코아 대신 된장국을 타준다면 '최고의 엄마'라며 뽀뽀를 해줄 것이다.
*컵라면& 조미김은 추천하지 않는다 :
집에 이미 사놓은 게 있다면 남는 공간에 넣기는 하지만 트렁크 안에 방치되다가 그대로 다시 귀국길에 함께 온 적도 있다. 그리고 해외에서 요즘 K-POP과 한국 문화가 인기를 끌면서 현지에서 한국식의 간식이나 음식들을 아주 쉽게 찾을 수도 있다.
*참치캔도 추천하지 않는다 :
우리나라보다 더 다양하고 저렴한 참치, 연어 등 다양한 캔 제품들은 해외 마트를 가면 오히려 사 오고 싶을 정도이다.
*이번 여행은 좀 특별하다. 지인이 살고 있는 독일에 가기도 하지만 그 후에 가는 아이슬란드는 워낙 고물가로 유명한 나라. 실제로 많은 여행객이 아이슬란드 현지에서는 마트에서 장을 봐 숙소에서 해 먹거나 도시락을 챙겨서 다닌다고 들었다. 현지 식당 메뉴들이 보통 우리나라 파인 레스토랑 가격과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번엔 기본 재료들을 좀 챙기기로 한다.
소금, 설탕, 다시다, 오일(스페인에서 구매 예정), 된장찌개 건조 블록, 참치캔, 김, 햇반, 봉지라면
*비교적 부피가 많은 컵라면은 제외
2. 옷 : 일반적으로 여행을 위한 옷을 챙길 때는 낡아 버리기 직전의 티셔츠나 속옷 양말 등을 위주로 챙긴다. 먼 이 국 만 리에서 정들었던 나의 옷들과 하는 작별이 아쉬울 수도 있지만, 여행을 하다 보면 짐은 늘어나기 마련이고 세탁도 쉽지 않기에 과감히 마지막으로 입고 버려도 좋을 옷들을 챙기는 편이다. 물론, 일정에 맞는 예쁜 사진을 남기기 위한 의상들도 한두 벌 센스 있게 챙기는 건 필수!
이번 여행 목적지는 22~28도의 화창한 여름 독일과 스위스, 30도가 넘는 불볕더위 스페인과 폴란드, 10도 남짓의 초겨울 날씨를 보이는 아이슬란드까지 기온의 차이가 커서 두 계절 옷을 동시에 준비해야 한다. 특히, 아이슬란드 여행을 위한 의상 팁을 정리하였다.
8월의 아이슬란드는 여름이지만 낮 최고 평균기온이 10도 남짓이고 백야가 있다고 한다. 게다가 빙하 트레킹 일정이 있어서 등산화와 방수복은 필수. 한국에서도 등산해 본 경험이 없는 아이들과 난 이 기회에 등산화를 구입하고 생활방수가 가능한 바람막이 점퍼와 바지 등을 챙겼다.
*등산화: 국내 아웃도어 브랜드에는 어린이 등산화가 없다. 우리나라에 그렇게 많은 산악회가 있는데 아이들이 산에 가는 경우는 드문가 보다. 10세 려환이의 사이즈는 220mm, 유일하게 판매했던 곳이 콜롬비아였는데 지난해 단종되었다고 한다. 내가 아는 다른 모든 브랜드를 찾아봤지만 가벼운 트레킹용 운동화만 판매하고 있어 절망에 빠져있었는데 운 좋게 등산을 즐기는 사촌 조카의 등산화를 빌릴 수 있었다.
실제로 빙하트레킹을 해보니 국내 브랜드에서 나오는 가벼운 트레킹용 등산화도 무난하다고 생각했다. ( 그 위에 아이젠을 착용하기 때문에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방수되는 등산복 : 방수와 방풍이 되는 아웃도어 점퍼와 바지는 필수이다. 눈이나 비가 오지 않아도 아이수 많은 폭포를 방문하게 될 것이다. 이때 우산이나 비옷은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좋은 아웃도어를 챙겨 입자. 나는 '아디다스' 바람막이, 신랑과 아이들은 '파타고니아'제품을 입었다.
*히트텍 등의 이너웨어 : 가볍고 따뜻하고 잘 마른다. 통풍이 잘된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아이슬란드 여행의 필수품
*핫팩 : 옷은 아니지만, 여름의 아이슬란드를 무시하면 안 된다. 핫팩 한두 개 정도 챙긴다면 아주 소중하게 쓰일 것이다.
3. 스케치북과 색연필: 언제부터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여행 갈 때 꼭 챙기는 아이템! 몇몇 패밀리 레스토랑을 갔을 때 메뉴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아이들에게 제공되는 종이 식판(?)과 크레파스를 보고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여행 중 식당을 가거나 숙소에 들어가서 휴식을 취할 때 보통 신랑과 난 다음 여행 루트에 관해 이야기하거나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들을 정리할 때가 많다. 이럴 때 아이들이 심심해하거나 지루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 스케치북은 아주 요긴하게 사용된다. 우리가 여행하는 장면을 각자의 느낌으로 그리거나 쓰고 색을 입힌다. 여행을 마친 후 아이들은 각자의 작품(?)을 보며 사진과는 다른 또 다른 추억을 간직한다.
*이 준비물은 지인들이 여행을 간다고 하면 꼭 추천하는 단골 아이템이기도 하다.
4. 너희들의 개인 캐리어: 비슷한 듯 다른 형제. 환브로는 좋아하는 장난감도 간식도 다르다. 장거리 여행에 능숙한 아이들은 각자가 여행하면서 즐길 만한 소지품들은 이제 각자의 소형 캐리어에 챙긴다. 스케치북과 색연필, 작은 보들이(?) 인형도 하나씩 챙기고 비행기에서 먹을 달달구리 간식도 챙긴다. 기내에서 영화 2편 이상 거뜬히 볼 지환이지만 무거운 책도 꼭 챙긴다. 반면 려환이의 가방 안은 비교적 가볍다. 뭘 챙겨야 할지 모르겠단다. 풀지 안 풀지 모르는 일일 수학이 그 안에 있다는 게 귀엽다. 공간이 여유 있는 려환이 캐리어에 윤서랑 예윤이에게 선물할 포켓몬 빵을 넣기로 했다. ( 편의점에 지인이 있어야만 예약 구매가 된다는 포켓몬 빵을 윤자매를 위해 특별히 챙겼다.)
5. 소중한 물건들: 어른들한테 귀중품이 있듯이 아이들에게도 나름의 소중한 물건들이 있다. 아이들이 어릴 땐 애착인형이나 본인들이 좋아하는 작은 물건들을 집에 두고 여행 가기가 아쉬운지 따로 챙겨 애지중지 함께 여행을 하기도 했다. 2019년에 간 이탈리아 여행에 있었던 일이다. 밀라노에서 렌터카를 빌려 친퀘테레를 거쳐 지환이가 보고 싶어 한 피사의 사탑이 있는 피사까지 가는 여정이었다. 오후 4시경 피사에 도착해서 숙소에 체크인하기 위해 차에 짐은 남겨둔 채 아이들만 데리고 숙소로 향했다. 그때 난 잠든 려환이를 안고 있어 몸엔 아무것도 지니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체크인을 마치고 짐을 가지러 다시 차에 온 순간 내 앞에 펼쳐진 장면은 현실이라 믿기엔 너무나 비현실적인…,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하다.) 오른쪽 차량 뒷문 유리창이 깨져 있고 차 안에 있던 우리의 캐리어 2개와 내 현금이 든 숄더백이,, 그러니까 그냥 다 사라진 상태였다. 말대로 맨 몸뚱어리만 남은 것. (이 여행에 대한 하소연만으로도 책 한 권 거뜬히 나올…, 믿기 어려운 사건이었다.) 아무튼 이 사건을 경험한 여행 이후부터는 아이들도 본인들의 소중한 장난감과 의미 있는 물건들은 더 이상 챙기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