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4인 1조 끈끈한 완전체 가족여행을 추구하는 남자.
남들 하기 전에 먼저 해보는 걸 선호하는 남자.
아무리 배가 고프고 대기 시간이 길어도 맛집을 찾아다니는 남자.
하고 싶은 건 꼭 하고야 말고 먹고 싶은 건 꼭 먹고야 마는 남자.
책이나 영상 등의 간접 경험보다 직접 경험을 중요시하는 남자.
여행에서 남는 건 사진과 영상이라며 인물 '인증샷'을 끝도 없이 찍는 남자.
이렇게 구라미 여행사 사장님의 수식어는 정말 많다.
'구라미 여행사'는 지인들이 불러주는 여행을 좋아하는 우리 가족의 애칭으로 1년에 두세 번 정도 문을 열고 밤~새벽까지 업무를 보는 극한 직장이다. 구라미 사장님한테 직장 은퇴하면 진짜 여행사 차리라는 주변의 조언이 있을 정도로 가족 여행 일정을 참 잘 짠다. 게다가 아이들의 나이를 고려해 적절한 교육과정을 담아낸 여행 프로그램을 준비하기 때문에 주변에서 구라미 여행사와 함께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이야기도 많이 듣는다. 하지만 일정이 '빡센' 만큼 힘든 경우가 많아 함께 여행하면서 아이들이 안쓰러워 보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난 아빠 없는 여행 일정은 나와 아이들에게 최대한 느슨한 자유를 주기로 마음먹었다. 꼭 맛집이 아니더라도 배고프면 가까운 길거리 음식도 먹을 수 있고 유명한 관광지를 갈 수도 있지만 어느 날은 로컬인들처럼 심심한 듯 느긋하게 움직이려고 한다. 신랑은 평소 풍경 사진이나 음식 사진은 인터넷 찾아보면 다 나오기 때문에 인물 위주로 찍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당연히 인물 샷도 찍지만, SNS에 올릴 나만의 감성이 담긴 풍경 사진도 많이 찍을 예정이다. 그리고 마트 구경도 천천히 여유 있게 하고 싶다. 그로서리 마트나 동네 상점을 들락거리며 그곳에서의 일상을 함께 느껴보고 싶다. 여행도 일상의 한 부분이므로,,,
신랑이 우리에게 허락한 해외 여행은 내 기억상으로는 처음이다. 아니 국내 여행에서도 없었던 거 같다.
자유부인이라고 들어봤니??!! 얘들아~~ 엄마는 이제 해방이야~~
정확하게 말하면
이번 여행, 21일 중에서 절반, 그러니까... 독일-스페인 구간은 아빠 없이 진행하고 중간에 바르셀로나 공항에서 신랑이 합류 후 아이슬란드로 이동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무엇보다 굿 뉴스는 독일에 있는 윤서네 가족이 스페인 여행에 함께하기로 한 것! 윤서와 예윤이는 환브로와 10여 년을 함께한 가족 같은 친구다. 독일로 이주하기 전 하루가 멀다고 함께 먹고 놀고 공동육아를 했고 일본과 대만 여행도 함께한 경험이 있어 오랜만에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생각을 하니 아이들은 벌써부터 흥분의 도가니다. 여기에 희소식이 하나 더 있었으니 신랑의 센스 있는 선물이었다. 평소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팬인 나에게 스페인 피게라스에서 하는 조성진 리사이틀 일정을 찾아 내민 것. OMG! 신랑은 본인이 학생 시절 방문했던 달리 박물관을 환브로도 꼭 직접 가서 봤으면 좋겠다며 피게라스 일정을 추천한다고 했지만 난, 사랑하는 아내를 위한 선물로 리사이틀 티켓을 주고 싶었던 그의 숨은 의도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공연 예정일은 8월 17일, 나의 생일은 8월 20일! 더없이 최고의 선물이었기 때문에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좀 반강제적으로 전체적인 여행 루트는 신랑이 잡아줬지만 디테일한 일정과 숙소 등은 윤서네 가족과 단톡방에서 여행 계획을 짜느라 매일 밤 나의 머리는 이미 유럽에 가 있었다.
윤서네가 살고 있는 Villingen Schwenningen (빌링앤슈베닝엔) 은 프랑크프루트에서 3시간 거리에 있다. 강릉-인천공항 정도의 거리라고 설명을 들으니 한 번에 감이 딱 온다. 감사하게도 공항으로 나와준다고 하는 민경 씨 부부, 연고가 있는 곳으로 여행 가는 안정감과 설렘이 동시에 든다.
이들 부부의 추천으로 독일에서는 집에서 멀지 않은 근교 도시 프라이부르크( Freiburg), 트리베르크 (Triberg), 콘스탄츠 (Konstanz)를 가보기로 했다. 독일 현지는 코로나로 인한 규제들이 거의 풀린 상태이고 자국의 내수와 관광객 유치를 위해 한 달짜리 무제한 기차 티켓을 9유로에 판매하고 있었다. 교통비 비싼 독일에서 무제한 교통카드가 단돈 9유로라니 뭔가 일이 술술 풀리는 느낌이다.
독일에 머무는 일주일은 윤서네 집에서 지내기로 해서 숙소를 따로 알아볼 필요는 없었다. 대략 일정을 짜고 집에서 가까운 슈투트가르트공항에서 바르셀로나 가는 비행기와 숙소를 예약했다. 스페인 저가 항공사인 부엘링 항공과의 악연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