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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유라 Sep 15. 2021

도시 맞벌이에서 시골 외벌이로

보기보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


보글보글 끓던 어머님의 된장국에 홀딱 반해 시골 살이도 할만하겠다는 배팅 감이 자신감으로 둔갑할 때쯤, 우린 이미 맞벌이에서 실직자와 휴직자의 신분으로 변신을 끝낸 뒤였다. 도시의 맞벌이였던 우리는 시골로 터를 옮겼다. 나라에서 주는 육아휴직 수당 100 원이 수입의 전부였다. 살아갈 날의 두려움보다 살아   삶을  원했던 탓에 낭만 지수는 끝을 모르게 올랐고, 서로의 추레함보다 여유 있는 낯빛이 소중했다. < 속의 자본주의자>에서 박혜윤이 그랬다. “돈이 적어도 많아도 우리는 돈처럼 완전해지지 않는다.”라고. 10  마음이 그랬다.


자연을 벗 삼아 아이들과 노는 게 최선인 양 살았다. 밑도 끝도 없이 입에 풀칠은 하며 살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아무런 계획은 없었지만 두려움 또한 없었던 이유는 어머님의 된장국 때문이었다. 풀밭의 냉이를 캐다 끓여 먹어도 좋을 자신감이었다. 맞벌이로 얻었던 안정보다 그 시절의 위안이 좋았다.



직장 생활 12년 차에 가장 배우고 싶었던 기술이 살림이었다. 직장을 전전하는 것이 누릴  있는 삶의 최선이라 여겼던 탓에, 살림을 몰랐다. 변명치곤 궁색하기 짝이 없지만, 나를 시험해보고 싶었다. 살림 스킬을 얻은 후의 삶이 내가 그리던 삶과 같을지 궁금했다. 돈을 벌어 가방을 섬기느니, 시간을 아끼며 하고 싶은  해보기로 했. 그런 삶도 결국엔 돈이 먼저여야 한댔지만, 하고 일이란   아니었다. 남들처럼 스카이다이빙을 해보고 싶다거나, 우후죽순같은 커피숍을 차려보고 싶다거나, 거창하게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 아니었다.



  가지.  좋은 날에 이불을 널어말리는 엄마가 되어 보고 싶었고, 홈웨어만 걸쳐도 품위 있는 아줌마가 되어 장을 보고 싶었으며, 아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으면 좋겠다는  다였다. 돈을 벌지 않으면 시간쯤이야  것이 되는 거였으니 배팅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뻔한 수입으로 불확실한 소비를 조절할  있어야 했다. 의식주 해결에 가진 돈을 배분했다. 최대한 효율적인 방안을 고민하다 아빠 옷을 줄여 내가 입고, 조금  줄여 아들을 입히고 다시 줄여 딸을 입히는 대물림 의생활을 시작했다. 딸이 있다는  다양한 재봉 기술의 습득을 위한 샘플 제작이 가능하다는 . 아빠의 옷은 훌륭한 원단의 원천이 되었고, 만들어 입힌다는 소문이 돌자 주변에서  옷들을 가져다줬다. 얻어 입히고 물려 입히고 고쳐 입혔다. 그러다 바느질이 늘고, 재봉질이 늘었다. 남편은 요즘 세상에 양말 기워 신는 사람이 우리구나, 했다. 돌아보니 지지리 궁상의 최고봉을 살았다. 어떻게 하면  아끼며 신이 주신  시간을 알차게 보낼  있을지를 처절하게 고민하며 살았다.





 100으로 4 가족이 먹고사는 삶을 살았다. 지금

   있을  벌어서 쓰며 살자는 생각을 한다. 최대한으로 졸라매는 삶을 살고 보니 어디에 어떻게 쓰는 돈이 제대로인지 웠다.  인색했다. 베푸는 삶이 뭔지도 모르는, 코가 석자인 삶을 살았다. 아들만 보였으니 어쩔  없던 삶이라 변명해 본다. .



 버는 기술은 아끼는 기술과 달리, 돈의 다른 면을   있어야 가능하다. 그리고, 버는 기술보다 아끼는 기술이 훨씬 쉽다. 쉬운 길을 먼저 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때를 후회하지 않는 이유다.





불안한 마음은 불확실함에서 온다. 돈에 대한 불확실함보다, 아들에 대한 불확실함이 더 컸던 그 때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최소한의 돈으로 삶을 영유하는 법을 어머님을 통해 배우며 시도해볼 맛이 났고, 지금이 아니면 나중은 없음을 떠올린다. 미련 없이 택할 수 있었던 그 시절의 배팅에 감사하다.



그때의 배팅감은 어디서 왔던 걸까. 시궁창에 고꾸라져도 키워 놓은 팔뚝의 힘을 믿으며 일어설 수 있다는 자기 확신은 이미 내 몸에 자리하고 있었다. 지나고 나서야 보이는 이 자신감은 부모님과 학교와 사회가 만들어줬다는 걸 이해하게 됐다. 넘어져도 일어설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기 효능감’ 말이다. 돈은 없어도 야릇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가장 큰 자산이었다. 덕분에 값진 삶을 얻었으니 잘 써먹어 보겠다.



아이들에게도 다시 일어설  있다는 자기 믿음만 키워   있다면 부모로서  일은  했지 싶다. 아이 스스로 해내야 하는 부분이 많기도 하겠지만, 부모가 40프로를 도와주고, 학교가 30프로를, 사회가 30프로를 도와준다면 어려운 미래가 와도 이겨낼 힘은 돋아날 것이다. 생계유지 능력, 쓰러져도 다시 서게 하는 (자기 효능감이라는) 빨간 물약 하나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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