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유라 Dec 29. 2021

냉장고를 바꾸기로 했다

주방에 로망 한 줌


냉장고 탓이라 하면 부끄러울까. 그래도 냉장고 탓이라 하겠다. 내 요리 수준에 대한 변명을.


미니멀리즘이 유행하기도 전이었다. 쓰리룸에서 투룸으로 이사를 하며 집안의 모든 책을 쓸어 담아 버릴 때, 냉장고도 같이 버릴 수 있는 삶이면 얼마나 가뿐할까 동경한 적이 있다. 여전히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흙을 갈아 대파라도 심지 않을 일이라면 주방에 냉장고는 현관에 신발장놓듯 해야 함을 수긍하기로 했다.



사기로 했다. 내 신혼의 단꿈을 함께 꿔준 냉장고가 힘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기로 했다. 냉장실이 얼기 시작한 지 어언 2년째. 김치를 위 칸에 넣어두면 살얼음이 살살 어는 동치미 냉장고와 밥상을 함께 차렸다. 신혼의 단꿈이 조금씩 부서지고 있다는 걸 야채실을 열다 부러지는 야채통의 손잡이로 알았다. 토마토를 꺼내다 한 번, 당근을 꺼내다 또 한 번, 상추를 꺼내다 또 한 번씩 자꾸자꾸 부러지는 손잡이에 나의 꿈도 부서지듯 했다. 그래도 고장 한 번 없이 웅~하는 애교 섞인 소리마저 귀여워져버린 냉장고가 못내 아쉬운 건 스스로 알아서 새 몸으로 바꿔오진 못하는 수동성에 있달까. 응?



새 냉장고가 왔다며 자꾸 문을 열어재낄 찬이가 두렵지만 사기로 했다. 좀 더 넓어진 냉장실이 아까워 소주를 짝으로 사다 먹는 남편이 안주도 짝으로 사다 놓느라 내 살이 찔까;;; 두렵지만 사기로 했다. 더 두었다간 진짜로 유물이 될지 모를 냉동고의 그것들을 어떻게 채굴해야 할지 도통 감이 없지만 일단 사기로 했다.



한창 크는 아이들이 간식을 찾는 일이 잦아지고, 코앞에 코로나와 방학을 둔 나는 하루 세 끼를 내어주기 위해서라도 사야 한다. 살얼음 냉장실을 가지게 된 게 뭉근하게 아쉬워 이별이 쉽지 않지만 사야 한다. 냉장실에 보관할 수 있는 맥시멈의 반찬 수가 고작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가 됐고, 꺼내 먹을 간식칸도 구차할 정도가 되었으며, 손잡이 다 부러진 야채칸과 과일칸 덕에 아이들은 손도 못 대는 영역이 되어버렸으니 사야만 한다. 냉동실은 말해 뭐하랴. 이미 부러져 내다 버린 서랍이 두 칸. (쓰다 보니 이제서야 깨달음. 아. 그 자리에 서랍이 있었구나.. 했다.) 아이스크림 보관할 곳도 마땅치 않아 먹고 싶으면 코앞에 편의점에서 꺼내다 먹으면 될 일이다 하며 살았다. 하여, 이제는 정녕 사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막상 마음을 먹고 보니 냉장고 사는 일이 쉽지가 않다. 그래 너와 이별하겠노라, 다짐을 하고서야 찾기 시작한 요즘의 냉장고 스펙들을 살피는 일이 왜 이리 어려운지 모르겠다. 냉장고 너희들이 다양해져 힘든 건지, 내 나이가 들어서 힘든 건지, 아니면 둘 다인지 모르겠다.



양문형이면 그만이었다. 얼음이 패스트푸드점 음료코너처럼 쏟아진다는 냉장고까지 무에 필요하겠느냐 했다. 기능이 많으면 고장이 잦다는 후일담에 기대며 홈바 정도만 달고 나오면 그만이다 했다. 작은 창을 달고 빼꼼 내미는 혓바닥처럼 생긴 그 애가 귀여워서 하루에도 열두번을 열고 닫으며 좋아라 했다. 고르고 고를 일이란 게 딱히 없었다.



요즘 냉장고들은 어찌나 오색 찬란한지 색상에 재질까지 고르란다. 두 판이던 문을 네 판으로 쪼개 놓고 네 가지 색상을 고르라 했다. 고르지 않으면 결제창으로 넘어갈 수도 없다. 매일 한 가지씩 골라먹으라고 31개의 아이스크림을 주는 것처럼, 냉장고도 조합하는 재미를 주는 거라면 좌우상하 매일 바꿔 달 수 있게 해주지. 노란색으로 할까, 고민이 시작되는 순간 창을 닫았다. 초록색으로 할까, 유리로 할까 하다가 다시 창을 닫았다. 주방에 맞춰 입혀준다는 키친 핏?으로 할까 하다가 창 닫기를 여러 날..  지나가던 찬이는 낙낙하면 안이 보이는 걸로 하잖다..



이럴 줄은 몰랐다. 얼리어답터까지는 아니더라도, 새로 가전을 사야 한다면 가전 주부 정도는 된다 생각했다. 나름의 비교 검색실력은 기본으로 갖추고 있다 생각했다. 성능 비교와 구색맞춤까지 꼼꼼 비교를 하며 제대로 된 가전을 들이는 데 옹색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사고 들이는 데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과 신경 씀을 아끼지 않았다. 아꼈다면 최저가를 향한 쿠폰과 혜택으로 비용을 아꼈다. 애들 옷 하나 더 사주고도 남을 돈에 즐거웠다. 즐겁게 맞이했고, 즐겁게 보냈다. 그러던 내가 새 냉장고를 고르는데 들이는 노오오오오오력에 한창 괴롭다.



누가 대신 입맛에 맞게 골라서 주방에 딱 갖다 놨으면 좋겠어. 이런 직업도 있을텐데.. 간밤, 허울 좋은 소리를 들은 남편은 신혼 때처럼 같이 골라주지 못해 미안해..라는 말은 하지 않더라. 그래도 당신이 골라야지 않겠냐며 위로를 가장한 전가를 해댔다. 냉장실을 1/4로 쪼개 각자 영역을 나눠 쓸 일이 아니고서야 주관리자는 있어야 바람직하다 했다. 힘들겠지만 다시 힘을 낼 것을 권고했다.



하여, 난 오늘도 냉장고를 고민한다. 소파와 혼연일체의 로망을 꿈꾸며 대형 티비를 사는 남편의 그것처럼, 냉장고 사는 일에도 로망은 필요해서 우리 네 식구 입에 근사한 식사를 안겨줄 냉장고에 이름이라도 붙여 다정하게 굴고 싶다.



우리 집에도 다녀가실 그분에게 바라노니 냉장고는 무리겠고, 중년의 단꿈이라도 꿀 수 있게 꿈뭉치라도 던져 주고 가십사는 부탁의 글이다. 산해진미 가득한 요리를 내는 주방을 향한 로망을 다시 가져보리라 발동을 거는 글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