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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유라 Dec 30. 2021

아는 맛이라고 다 그 맛은 아니니까

먹을 때마다 떠오르는 그것처럼


어차피 아는 맛이라고 했다. 아는 맛이니까 굳이 먹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먹어봤자 아는 맛이니까, 눈으로 보고 맛을 떠올리면 되는 거라고 했다. 옥주현이 남긴 다이어트 명언이라며 남편이 가르쳐 준 신박한? 체중관리 비법이다. 듣고 보니 그럴듯해서 '아..!' 했다. 대단한 진리라도 얻은 듯 그러면 되겠구나 했다.     



굳이 먹어보지 않아도 보는 것으로 만족이 된다는 남편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는 알아서 새로운 음식점이 생기면 알려주었다. 태국 음식이 그리웠던 나에게 하나 생겼으니 가보라고 했다. 아는 맛이니까 좋아하는 사람들과 먹고 싶었다. 분명 맛이 있을 거니까 웃으며 함께 먹고 싶었다. 이 맛을 기억하며 함께 떠올리는 사람들이 추억이 될테니까.    


  

본래의 이름을 알기도 전, 동료들과 즐겨 먹던 음식이 있다. 뿌파뽕커리라는 이름이 흔하게 불리지 않던 시절, 방배동에 자그마한 태국음식점이 있었다. 아담한 가계의 사장님도 그 때는 '꽃게를 통째로 튀겨 올린 게살볶음 카레덮밥'이라고 썼다. 꽃게 한마리 곱게 올려 있는 음식사진이 낡은 재생지에 프린트된 메뉴판을 기억한다. 쌀국수와 볶음면을 같이 시켜 셋이서 함께 먹던 그 음식이 먹고 싶었다.     



새로 생겼다는 태국음식점에 그 메뉴가 있었다. 10여년만에 먹는 뿌팟뽕커리의 맛은 추억의 맛이 됐다. 아는 맛이니까 굳이 먹지 않아도 떠올릴 수 있는 게 아니더라. 아는 맛이 더 무섭다는 말처럼 한 입 넣는 순간 오래된 그 시절의 내가 떠올라서 그립도록 웃음이 났다. 그 날에 나와 같이 먹던 친구들이 생각이 났고, 올해는 귤 한 박스 못 보냈구나 싶어 헛헛했다. 다들 잘 있겠지.     



어머님과 뿌파뽕커리를 먹고 싶었다. 어머님을 생각하면 떠오를 음식과 식재료가 가득이지만, 내가 먼저 권해 먹었던 음식은 기억나는 게 없었다. 둘 까지는 모르겠지만, 하나 정도는 있어야 되지 않겠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떠올려보니 내가 먼저 권해 드린 음식을 맛있게 드셨던 기억이 별로 없다. 세월이란 걸 지나보냈으니, 어머님의 입맛 정도는 파악이 되었다 자부하며 새로운 음식 문화를 어머님 입속에 선사해드리고 싶었다. 



“어머니~ 우리 카레 먹으러 갈까요?” 맛있는 음식 먹으러 가자하면 잔뜩 기대라도 하실까 두려워 꺼낸 말이 카레 먹으러 가자는 말이었다. 카레였으니 카레라 했을 뿐인데 입에서 나오는 말조차 초라하다. 돌아오는 말은 역시, 카레씩이나 된 걸 왜 나가 먹느냐는 타박뿐. 아니.. 이게 카레지만 같은 카레가 아니라, 좋은 카레.. 아니 색다른 카레랄까.. 아는 맛이지만 아는 맛은 또 아니라서 갈만하다는 말을 하려는데 조여드는 목구멍이 꿀떡 꿀떡 침이 말라왔다. 



일단 가보시면 좋아하실 거 같아요. 한 번 같이 가세요. 제가 요즘 돈을 좀 벌었으니 한 턱 좀 내겠습니다, 정중히 다시 뫼셨다. 그랬더니 그곳이 어디냐며 물으시길래 요 앞 멀지 않은 곳이라 했더니 에이.. 금새 기대감이 급강하를 하신다. 가네 마네 업치락 뒤치락 하는 사이, 밭에 가셨던 아버님이 들어오셨다. 아버님의 기침 소리따라 오붓한 외식 접견은 해산 양국으로 흘러갔고, 뿌파뽕커리의 꿈은 잠시 소강상태를 맞았다.    


 

대충은 10년이라는 시간마다 챕터 하나를 덮는 기분이다. 10년이라는 시절마다 추억하게 되는 음식이 달라지는 것처럼, 먹을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이 많은 삶을 살고 싶다. 이제 새로운 10년을 시작하며 뿌파뽕커리의 추억은 어머님과 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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