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게 다는 아니라서
디자이너였다,라고 쓰려니 왜 때문에 닭살이 돋으려는지 모르겠다. 응..? 13년 차 디자이너 시절을 까무룩 잊어버리게 만든 사건을 겪으며 다시 10년을 지나와서 그런가.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디자이너였다 말하고 다닌 적이 없다. 하긴 아줌마의 과거 따위 궁금해할 사람이 있다면 그 게 더 희한할 일이겠다. 왕년에 내가 말이야..라는 말처럼 비굴모드는 없지 싶다.
어쩌다 한 번 디자이너였노라 입을 떼면.. 응? 진짜? 라며, 세상 공무원같이 생겼는데 의외로 디자이너? 라며 놀라던 그들의 반응에 세상 반듯한 척 살았다. 그래서 그랬는지 현재의 삶(응.. 아줌마 혹은 엄마의 삶)에 충실하자 생각하며 입을 닫았다. 디자이너 시절을 싹둑 잘라버린 것처럼 살았다. 그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 당장 내 삶엔 소용없을 시절이라 단정했다. 그 시절은 영광이고 지금은 아니다, 라며 오래된 필름 자르듯 했다. 나의 영광이 지금이길 바라는 마음은 그 시절은 잊고 살아야 가능하다 이야기했다.
수험생이라도 볼라치면 공부 그거~ 잘할 필요 없어요~라며 회의주의자 코스프레를 그렇게 해댔다. (어이구.. 못났다.) 지금은 공부가 전부인 것 같겠지만 사는 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며 꼰대의 절정을 달렸다. 삶이 뭔 줄도 모르고 허세만 좇으며 살았구나 했다. 무얼 바라 공부를 했을까, 무얼 바라 밤낮으로 그렸을까, 무얼 바라 시간과 돈을 쪽쪽 빼다 썼을까, 무상하다 생각했다. 배신당한 내 삶을 보란 듯이 내리 깎았다. 트럼프를 앞세운 반이성주의 탄생을 이해할 정도가 되어서야 기대했던 내 삶에 배반당한 반이성주의 졸개짓을 반성했다.
인생은 운이며, 노력 여부에 따른 인과가 계산기 두드리듯 딱 나오는 게 아니라 믿었다.
청소하다 꺼내본 명함엔 UX디자이너라고 적혀 있었다. 북 디자인, 웹디자인, 그래픽 디자인, 브랜딩을 포함한 UI/UX 디자인을 지나왔다. 디자이너를 관둔 후로 10년 즈음 지나고 나니 내가 만들었던 세상 속 디자인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을 정도가 됐다. 설령 찾았던들 10년도 더 지난 디자인이 지금까지 좋은 디자인으로 남을 실력이었다면 유명해지고도 남았을 테다. 어쩌면 내세울 것 없이 쪼그라들어버린 시절에 대한 감각 때문에 묻혀버린 나의 커리어에 더욱 인색했을지도 모르겠다.
구차할 정도로 비굴한 그 시절의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싹둑 잘라버렸다 생각했던 그 시절에 은근히 의지하며 살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룬 게 없는 인생인 것 같지만, 헛된 시간이란 없다 말하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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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가 시작되어 디자인 단계로 넘어오면 디자이너는 프로젝트 방향을 디자인 언어로 재구성한다. 이때 사용되는 방향 설정법 중 이미지맵 단계가 있다. 이미지로 연상하며 프로젝트의 골을 설정하는 것인데 괜히 영어로 말해보자면 "비주얼 씽킹" 정도가 되겠다. 글로 이러이러한 방향으로 가겠다는 설정에 이미지를 추가하며 이런 이미지와 분위기 혹은 비주얼로 여러 사람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과정이다. 이미지로 엇갈린 의견을 조율하고 발전된 아이디어를 모색하는 것. 어? 난 동글동글한 꽃을 생각했는데, 그렇게 길고 동그란 꽃일 줄 몰랐잖아요..라고 헛소리를 방지하는 방법이다.
디자이너의 생각법이라 말하지 않더라도, 자기 계발이나 처세술, 혹은 긍정의 심리학.. 같은 책에도 보면 자신의 미래를 이미지로 그려보는 연습을 종종 소개한다. 아이들의 교육 방법에도 심심찮게 소개되는 방법인데, 미술치료를 할 때도 사용된다는 걸 후에 알았다. 웃을 일 없는 일상을 살 땐 이 단순한 방법이 꽤나 신통하다.
오랜 시간 반복해서 다져온 습관은 삶에도 녹아들게 마련이고 디자이너는 관뒀지만 일상에서 앞으로의 일을 생각할 때면 이미지로 연상하기를 자연스레 해왔나 보다. 냉장고 문에 원하는 몸매의 스타 브로마이드를 붙여두는 방법도 이 방법의 하나라면 이해가 쉽다. 단순 유치해 보일른진 몰라도 무시할 수 없는 효과를 낸다. 쓰고 보니 끝내주는 몸매의 그녀를 진작에 붙여뒀어야 했다는 생각이 문득 들지만... 응? 내 벽에는 꿈에 나올 법한 작업실의 풍경과 홀로 앉아 공상하는 여인들의 모습이 잔뜩이다. 제발 좀 혼자 있고 싶어서 그랬던 듯? 응.. 그러고 보면 혼자인 여인들을 괜히 자주 그렸던 게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의 난, 한 평 남짓한 내 책상에서 공상하며 글을 쓴다.
서울에서 찬이를 낳고 기르던 신혼집은 신정뉴타운 사업이 막 시작되던 근방이었다. 은행이 사준 한 동짜리 아파트도 너무 좋다며 단꿈을 꾸었더랬다. 꿈도 잠시, 작은 소음에도 번쩍번쩍 잠을 깨던 찬이를 24시간을 넘어 48시간까지 제대로 재우지 못해 꿈인지 생신지 비몽사몽 생사를 넘나들 것처럼 살았다. 열어 둔 창으로 뉴타운을 향해 굉음을 내며 지나가는 덤프트럭 소리에 온 신경이 쭈뼛 서곤 했다. 제발 이 아파트만 고대로 제주에 옮겨다 줬으면 좋겠다는 꿈을 꾸었다. 쉬 잠들지 못하는 아이를 안고 매일 머릿속으로 상상을 했나 보다. 그리고 그 상상은 월터의 그것처럼 현실이 되어 아파트 그대로 제주에 옮겨주었다. 와중에 서울 아파트 시세 차익을 굳이 생각하시는 분? 말자요..? 맙시다;; 쿨럭;
글보다는 이미지로 생각하는 습관은 지금도 가지고 있다. 이미지로 그리고 글로 쓴다. 이미지로 그리는 나의 미래는 부지런히 색칠 중인데, 냉장고에 붙여둘 곡선 좋은 몸매의 그녀? 이면 좋겠지?라고 생각만 하고 다른 그림을 그린다. 내가 가장 기분 좋아지는 이미지로 모아 둔다. 은밀한 이 그림 그대로 10년이 지나 실현이 됐을 나를 생각하면 기분이 좋다. 생각만으로 기운이 난다. 이래서 내가 이상주의자인가 생각하며 나의 이웃님들도 적당히는 이상주의자이길 슬쩍 추천드려보는 바이다.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이미지들을 모아 두기만 해도 이루어지는 경험을 해보시라 권하고 싶다. 천재가 된 아들 이미지 뭐.. 그런 걸 모으면 이뤄지나?라는 생때같은 이미지는 두고 아들 말고 자신을 위한 이미지를 그려보십사 권해 본다. 어떤 풍경 속에 있길 원하는지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드는 이미지를 한 번 모아보시라고 말이다. 말하고 보니 뭔가.. 한물간 시크릿 같고 그런데.. 응..? 조금은 더 센 꿈을 꾸어도 좋을 나이라고, 아직 죽지 않았다고, 꿈꿀 일은 앞으로 더 많을 거라고, 이 연사 강열하게 외치진 못하고.. 나긋하게 이야기하고 싶다.
뭔가 대단한 업적이라도 이루고 나서 이런 말을 해도 해야 될 것 같아 망설이다 쓰는 이 글은 버릴 시절이란 없다고 나와 화해를 좀 해보려는 글이다. 너의 영광은 늘 지금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어 쓴다.
꿈꾸기 좋은 나이는 평생이니까.
하드털이 해보려다 닭살 돋아 바로 덮;;; 아직 덜 자랐나 봅니다.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