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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유라 Jan 12. 2022

이 삶을 반복해서 살아야 한다면

다 같은 반복이 아닐 수 있게 살겠다


덜덜덜덜. 후덜덜덜덜. 50도 각도로 섰는지 누웠는지 모를 자세로 왼손은 비스듬한 돌산을 잡고 오른손은 앞선 찬이 손을 잡았다. 다음 스텝을 어떻게 밟아야 할지 나조차 모르겠는데, 알려줘야 하는 찬이를 1미터 위에 두고 스텝이 꼬여 이대로 구르면 동글동글 눈사람이 될까 상상까지 되려던 참이었다. 와들와들 찬이와 나의 무게를 견디기가 버거워 가실 때에는.. 응? 정신차려..응.. 산중에 호랑이도 아닌 돌산을 만났을 뿐인데 정신줄 붙잡을 일이 생길 줄은 몰랐다. 돌산엔 손잡이도 없고, 즈려밟을 오솔길도 없다. 한결 같은 돌들만이 떡 하니 버티고 서서 해볼테면 해보라는 묵묵함만 뽐낼 뿐이었다.



한 층 높이의 이 돌산만 오르면 정상이라는 매리트 외에 내가 가져야 할 마음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안전 이전에 생존. 돌아갈 수도 없는 이대로 멈춰라가 되어 무작정 올라갈 수밖에 없다. 올라간들 내려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못할 것 같으면 대통령이라도 불러줄 어머님께 헬기라도 불러달래야지 생각했다. 오는 길에 국가지점번호를 읽어뒀으니 그 중 하나라도 다시 읊어보라며 찬이에게 이를 생각이었다. 와중에 핸드폰은 꺼낼 수 있었으려나.. 끄응..






주말에 좀 무리를 해서인지 (응.. 많이 먹어서;;) 온 몸이 붓고 기운이 없었다. 세상의 모든 엠에쎄지를 들이부은 다음 날엔 눈도 붓고 손도 붓고 발도 부어서(내 몸의 살을 모두 부은 것으로 생각하는 편) 신던 신발도 안 들어갈 지경이라 어딜 나가지도 못할 것 같은 몸이 되었다. 예정된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드러눕고만 싶은 월요일이었다. 와중에 모닝페이지는 쓰고 앉아서는 쓴다는 첫문장이 '아무것도 안 하고픈 월요일이다아아아아아아...'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픈 월요일이지만, 아이들 밥은 했다. 비몽사몽간에 밥돌이 찬이 밥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챙기는 나를 내가 신기해 할 정도가 되었다. 축 늘어진 빨래덩이마냥 부엌을 향하는데, 찬이가 그랬다. 엄마! 오늘은 베릿내 오름 말고 군산으로 가요! 응...으으응? 눈이 번쩍 굽었던 등이 활짝. 응? 두개의 오름 높이를 굳이 찾지 않더라도 몸이 먼저 반응하는 높이의 차가 적어도 두배일 것인데.. 왜 때문에 찬이는 군산오름엘 가자는가. 창밖을 보니 미세먼지가 앞을 가려 코가 가렵고 눈이 가렵고 몸이 가렵고도 나서기조차 어려울 것만 같은데, 무슨 마음인지 군산엘 가자는지 모르겠다. 왜 군산에 가고 싶은데? 군산 가요. 베릿내 말고. 이유는 묻덜 말고 그냥 가자는 찬이의 말에 아니 갈 수가 없다.



수학 공부 한 장만 하랬는데, 영어에 국어공부까지 하겠다는 아들에게 간식은 해주지 못할망정 말릴 필요까진 없잖은가. 다녀오고 나서 찾았더니 군산 오름은 334.5미터, 베릿내 오름은 100.2미터였다. 세 배 이상 차이 나는 오름을 발런티어해서 오르시겠다는데 암말 없이 에스코트해드리는 것이 엄마된 도리다 싶었다. 격렬한 자기와의 싸움 중에, 배고프다는 아이들 한 마디면 벌떡 일어나 쌀을 씻는 바빈스키적 행동이랄까.



다행인지 한번 뱉은 말은 되담지 않는 찬이를 알지만...응? 혹시나 다시 담을지도 모를 미래를 염려하며 뭐라도 당긴김에 빼본다. 물 한 통 달랑 들고 출발. 미세먼지도 우리를 도우려는지 어느새 물러났고, 오름 앞 주차장엔 우리밖에 없다. 산엘 오르는 사람이 우리밖에 없다는 생각에.. 슬쩍 무섭기도.



1년여만에 다시 찾은 군산은 그대로다. 군산을 찾아야 하는 날은 날이 맑고 구름 한 점 없을 때여야 하는데..(뒤로는 한라산, 삼방으로는 바다를 볼 수 있는 뷰맛집 오름이기 때문이다.) 구름 잔뜩 희뿌연 공기로 가득찬 오늘 올라야 한다는 게 섭섭할 뿐이다. 덕분에 사람들이 없다. 볼 거리도 없다. 덕분에 무습다아. 산 하나를 통째로 묘지로 썼다는 그 시절의 여느 산들처럼 군산도 가는 길마다 피어있는 들꽃처럼 무덤이 많다. 여기 어디쯤엔 찬이의 할아버지에 할아버지에 할아버지도 누워계시다던데... 어딘지 알았으면 문안 인사라도 드리려다.. 난 모르겠으니 패쓰.



보이는 게 무덤이니 찬이는 오늘도 묻는다. 엄마! 이건 뭐에요? 응..무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누워 있는 거예요? 응. 오래전에 살았던 할아버지 할머니가 누워 계시지. 누구네 할아버지 할머니에요? 그건 엄마도 모르지. 찬이도 모르는 것처럼 엄마도 모르지. 그럼 누가 알아요? 여기 누워있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손자 손녀가 알겠지. 그 손자 손녀는 누군데요? 아마 이 동네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겠지. 그 사람들이 누군데요? 너 같은 손자 손녀지. 나 같은 손자 손녀 이름이 뭔데요? 찬이 아니면... 아연이? 왜 누워 있는 건데요. 돌아가셨으니까. 돌아가셨으니까 누워있는 거에요? 그렇지. 누가 누워있게 한 건데요 ... 끝말 아닌 트집 잡기 같은 말잇기는 이후로도 이어지고 말 없는 등산 로망은 접어두고 오르고 오른다... 끄응..




어디가 정상이에요? 질문따라 올려다본 정상에는 마침 개미보다 작은 대자모양의 사람 형상이 서 있다. 저기 사람모양 보여? 네. 눈 앞에 정상 위 서 있는 사람이 보일 정도의 산. 가볍게 가보자. 그래! 다시 간다. 늘 가던 코스 말고 다른 코스로 가볼까? 네. 이쪽으로 가보자. 혼자였다면 오르지도 않았을 오름이지만 찬이와 함께 하니 용기가 난다. 사람이라고는 정상에 서 있는 점 같은 사람 하나 본 게 다이지만, 그 점만한 사람에 의지하며 올랐다. 역시 사람없는 오솔길이다. 찬이 손을 뭉근하게 잡고 걸었다. 즈벅즈벅 마른 풀 밟는 소리를 내며 좀 걸으려는데, 눈 앞에 바다가 펼쳐졌다. 낭떠러지 길을 간신히 난간으로 막아두고 산을 빙 둘러 둘렛길을 만들어놓으니 동쪽에서 남쪽을 거쳐 서쪽 바다까지 바라볼 수 있는 길이 매몰찬 선물 같다. 역시 찬이가 아니었다면 보지 못했을 뷰. 와..



엄마! 저기가 정상인가봐요. 응 그러네. 엄마, 가봐요. 응? 가봐요. 갈 수 있겠어? 네. 좀 가파를 거 같은데 괜찮겠어? 엄마 손 잡고 가면 되잖아요. 그랬다. 좀 전 돌산을 오르기 직전의 찬이가 그랬다. 돌산을 오르는 지금, 돌아가고 싶어도 별 수가 없이 빼기도 박기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찬이나 나나 만만찮은 무게가 되어 잘못 삐끗하는 날엔 달려라코난의 포비처럼 구를 거 같다. 하아.. 불과 몇 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오르고 싶기도 하고 아니 오르고 싶기도 하고 지금 아니면 언제 가보나 싶다가 가늘고 길게 살까 하다가 젤 가벼울 때 가보자 싶어서 기어코 오르고야 말았던 좀 전으로 나 다시 돌아갈래~ 라며 두 팔이라도 벌려볼까 싶지만양 팔에 달린 우리 둘의 생명줄을 놓아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때 떠올랐던 글귀 하나가 하필, 고정순 작가가 말한 "지금 이 삶을 계속 반복해 살아야 한다면 너는 어떻게 살래?" 였다. 그 물음에 답을 하듯 오르기로 선택한 상황에, 내가 할 일은 무조건 오르는 일 뿐.



엄마.. 어떻게 가요? 진짜 무서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음 스텝을 묻는건지 아닌지 모를 아들 앞에 떠는 건 엄마가 아니고 너여야만 하니까 당당하게 말한다. 응! 거기 손 짚고 올라가! 모르는 게 약이라기보단 천만다행이다 싶다. 모르니까 오른다. 우리 찬이 오른다. 온 몸의 체중을 나에게 싣고 끄응차차차차차. 학. 무너질 거 같다. 낼 수 있는 온 힘을 다하고 거미줄이라도 뿜어 돌산을 부여 잡고 땅을 디뎌 꿔다 논 보릿자루 같은 찬이를 시지푸스 빙의하듯 올렸다. 드디어 찬이가 오르는가 싶은데 손잡이 없는 돌산 어디를 잡아야하는지 알 길 없는 공간지각능력.. 정보처리능력.. 뭐라도 대응할 수 있는 능력.. 아무거나 솟아라~ 가제트!!! 하아...



때 아닌 자두 엄마의 힘이 솟았나 보다. 어느새 둘이 좁다란 돌산 모퉁이에 섰다. ㅎㅎㅎ 우뚝 오른 우리 머리 위엔 더 이상 오를 곳은 없고, 머리 위에 하늘만 맞닿아 우리 둘이 딱 섰다. 하아.. 떨어질 것 같아 서로 부둥켜 안았다. 하아.. 난간 없는 돌산 위에서 이대로 찬이가 의지할 수 있는 돌산이 되어 버티리. 군산 오름의 정상은 나도 처음이었다. 이대로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뭐라도 되어 뭐라도 하며 살 것 같다. 눈물이 으렁으렁 가슴이 뭉클하려는데, 찬이는 어디를 잡고 서야할지 몰라 둥절했다. 찬이가 대견했고, 내가 대견했다.



등산을 모르지만, 아마 이런 마음 때문에 하는 거겠지.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 지금 순간을 사는 감각, 돌산을 오르던 찰나의 두려움을 이기고 하늘과 맞닿은 정수리에서 느껴지는 공감각, 살아있다는 순정의 감각을 다시 느끼고 싶어 오르는 거겠지. 오를 때마다 쿵쾅대는 가슴의 소리를 더 자주 느끼고 싶어서겠지.



지금 이 삶을 계속 반복해서 살아야 한다면 너는 어떻게 살래? 라는 물음에 또 하나의 답을 얻고 싶어 오르는 거겠지. 다시 나에게 묻는다면,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을 찾아 살겠노라 하겠다.



쓰다만 모닝 페이지의 마지막 문장은 ‘뭐라도 할 것 같은 오후가 되었다’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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