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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유라 Jan 14. 2022

높이 오르면 보이는 것

오르지 않아도 보이는 것


아침 눈을 뜨자마자 찬이가 말했다. 엄마! 오늘도 베릿내오름 가요? 당황했지만 당연한 표정으로 재빠르게 답했다. 응! 가야지! 했다. 뭐든 얻어걸리길 바라는 심정은 아줌마에겐 상비심(常備心)이니까 재빠르게 답이 나왔다. 어제의 돌산 경험이 엄청나게 힘들었을 텐데, 안 간다는 말은 않길래 이대로 다시 가려나 했다. 너님의 엄마는 오늘도 오름을 오르고야 말 거라는 오기를 탑재한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는 듯했다.    


 

시간이 되었다. 밥을 잘 챙겨드렸으니 너님이 해야 할 일은 오로지 오름만 오르시면 된다는 맹목적 의지로 출발. 물 하나 달랑 들고 출발하려는데... 엄마! 베릿내오름 말고 군산 오름으로 가요.... 응? 어제 그 돌산의 그 오름? 네. 군산 오름 가요. 방정식 풀다 말고 미적분 푸시겠다는데 말릴 이유는 없지 싶다. 본인이 생각해도 미적분이 풀어질 것 같아서 풀겠다는 걸 테지. 너의 의견을 존중하노라. 오냐! 군산오름으로 가자!    


 

군산 오름 주차장에는 차 한 대가 있었다. 오늘은 어제보다 사람이 있겠구나 위로하며 오르려는데 눈발이 날린다. 춥다. 바람이 분다. 바람 부는 겨울에도 배산임수를 자랑하는 따뜻한 오름 중 하나인 군산 오름도 오늘만은 춥다. 가져간 물이 얼 것 같다. 조금 더 오르려는데 눈이 안 녹았; 어제 내린 눈들이 쌓여 모퉁이에서 혹여 녹아 사라질까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래도 오른다. 촉촉한 낙엽이 기운 없어 보여도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절반은 이룬 셈이니까. 오름이란 자고로 오르라고 있는 존재, 오름을 아니 오르면 오름만 높다 하련가.. 잡생각에 파묻히며 찬이를 응원했다. 실은 날 응원했다. 남들은...이라는 말을 하려다 말았다. 남들은.. 한번 구경 오라는 1,950미터의 한라산도..라고 말을 하려다 말았다. 우린 우리만의 길이 있는 거니까, 오른다.     



헉헉헉헉. 어제 돌산을 올라서 그런지 숨이 가쁘다. 오늘날이 훨씬 추워서 그런가 숨이 많이 가쁘다. 오르고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재 만난 바람이 초속 12미터는 족히 되었다. 오르고 오르니 저~ 멀리 다른 동네 풍경이 촤라락 한 눈이다. 머리 위에 시커먼 구름 떼가 저기 저~ 고근산엔 없구나. 화창한 고근산을 멀리서 바라보노라니 오늘 같은 날엔 또 다른 배산임수의 산 고근산엘 갔어야 했다고 잠깐 푸념을 해...봤자, 우리는 군산이니 군산을 오를밖에,라고 생각했다.     



높이 오르면 보이는 것들은 우리가 어디를 가면 좋을지 보인다는 점이다. 하늘이 제아무리 높아도 하늘 아래 구름은 한참이나 밑이라서 구름이 하는 일을 볼 수 있고, 구름이 가는 곳을 알 수 있다. 구름을 피하고자 하면 피할 수 있는 시야를 가질 수 있다. 오르면 오를수록 높이높이 오르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다. 알지 못할 당장의 미래에 내가 어디로 가면 좋을지 살필 수 있는 능력이 갖고 싶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높이 오르고 또 오르자고 공부를 하고 실력을 쌓고 체력을 기르는 거겠지.     



높이 오른 누군가 좋은 곳을 보거든, 저기 저~~짝이 구름 한 점 없고 볕 들어 좋겠노라 일러줬으면 좋겠다. 만약, 그 누군가가 내가 된다면(무슨 공약 같고;;; 응..) 그렇게 이야기해 주는 사람이고 싶다고 생각하는 와중에 정상에 다다랐다.          



집으로 돌아와 손을 씻다가 찬이가 씨익거렸다. 왜 그러냐 물으니 자기 얼굴이 빨개졌다며 웃었다. 엄마! 내 뺨이 왜 빨간 거예요? 응. 추운 바람맞아서 빨개졌네. 예뻐졌네~ 했더니 더 신이 난 듯 웃었다. 왜 군산 오름 가자고 했어? 음.. 가고 싶어서 갔을 뿐 왜 갔냐 물으시면 너님은 어떻게 설명할 줄을 몰라 한참이나 말이 없다. 손을 다 씻을 때까지 기다렸더니 생각이 난듯 말했다. "집도 보이고.."라고 했다. 아.. 마을이 보여서 좋았구나~ 네. 베릿내 오름에 오르면 집이 없다고 했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이 정겹고 보기 좋은데 그런 집들 구경하는 재미는 군산에만 있다고 했다. 베릿내 오름에는 집이 없단다. 역시 사람 사는 풍경은 찬이에게나 누구에게나 재밌는 법이다. 세 배 이상 힘들어도 조금의 재미만 있다면 재미가 있는 곳으로 가고 싶은 게 당연하다.     



나 혼자 오르면 정상만 보며 전력 질주했을 오름이 찬이와 오르면 쉬엄쉬엄 오르게 된다. 한 바퀴 휘 돌아보며 오른다. 굳이~ 내 걸음과 찬이 걸음의 차이 때문에 그런 거라고 이야기할 일은 아니다. 


    

어떻게 살면 좋을지 일러주는 일은 높이 오르지 않아도 곁에 있는 누군가는 알려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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