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유라 Jan 25. 2022

할머니의 영업력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라서


엄마를 산방산 아랫마을에 사시는 이모 댁에 모셔다드리는 길이었다. 산방산을 돌아 깎는 해안 도로를 붕~ 타고 올랐다.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사계 마을이 촤라락 펼쳐졌고 바로 눈앞이 노오랬다. 어! 유채꽃이네! 노란 유채밭에 사람들이 옹옹옹 모여 사진을 찍는 모습이 마치 코로나 이전 시대를 보는 것만 같았다. 봄인가 싶게 노란 볕이 비치는 정오의 유채밭은 보는 것만으로 유채향이 났고 따뜻했다.



엄마가 한 마디 했다. 저 봐라며, 할머니 돈 센다며. 꽃무늬 화려한 헝겊주머니를 무릎에 올려두고 그 위로 나란하게 놓인 두 손 사이로 두둑한 천 원짜리 돈뭉치가 보였다. 할머니 돈 많이 버셨네~ 할머니 옆에 세워둔 하얀 팻말엔 '사진 촬영 인당 1,000원'이라는 글씨가 쓰여있었다.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이 찍고 갔구나 생각하며 스윽 지나가려는데, 엄마가 다시 한 마디 했다. 바로 맞은편 자그마한 유채밭이 이모 밭이라고 했다. 돌담이 세워진 유채밭의 경계마다 간이 의자를 세워 두고 할머니 한 분씩 앉아계셨다. 이모의 유채밭엔 이모가 없었다.



엄마를 이모 댁에 내려주고 돌아오는 길에 이모의 유채밭이 보였다. 마침 길가에 주차하기 딱 좋은 자리가 하나 남았길래 냉큼 주차를 했다. 유채 사진이나 찍고 가야지, 돌담 입구에 발을 들여놓기가 무섭게 "어이~ 에이~ 거기 가면 안 돼! 이리 와! 이리 와서 사진 찍어. 거긴 안 돼." 응?... 돌아보니 길 건너편 유채밭에 앉아계셨던 좀 전의 그 할머니셨다. 급기야 도로를 횡단하시고는 날 붙잡으시며 거긴 꽃도 다 안 폈으니 거기는 안 되고 당신의 밭으로 가자시며 내 팔을 붙잡으셨다. 아니. 여기가 우리 이모밭이라서 잠깐만 찍고 나올 거라고 했다. 아니. 이모는 나도 이모니까 이리 와서 예쁘게 찍고 가라며 팔을 세차게 잡으셨다. 아니 진짜 우리 이모밭이니까 여기서 찍겠다며 팔을 뿌리치려는데 자그마한 할머니가 보통이 아니셨다. 입심에 밀려 포기하기 직전이 됐다. 이리 와~ 여기 우리 밭에 가면 사진이 이뻐~ 거긴 가면 안 돼!



안 되겠다 싶어 필살기를 꺼냈다. 얼굴을 바르르 털면 나오는 사투리적 변신술. "아니 이모~ 여기 진짜 우리 이모밭 마씸. 게난 예~ 나 호꼼만 사진 찍엉 가쿠다예. 이모한텐 말 고랑 와수다." 변신술 효력이 언제 떨어질지 모르니 유채밭으로 냅다 달렸다. 작디작은 할머니의 팔을 거의 뿌리치다시피 해야 겨우 놓여날 수 있었다.



노랗고 노란 유채꽃들 사이, 벌써 벌들이 웅웅 거리고 있었다. 산들 부는 바람 따라 산방산을 방패 삼아 예쁘게 핀 유채꽃이 정오의 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이 났다. 꽃들이 예쁜 건 겨우내 사라졌던 색을 보여주기 때문일 거고, 무채색으로 덮였던 세상에 유채색油菜色의 유채색有彩色으로 눈길을 끌기 때문일 거다. 그도 아니라면 은근히 내뿜는 고유의 향 때문이겠다. 유채밭 너머로 보이는 바다 풍경까지 마음이 이토록 시원해질 지경인데 돈 천 원이 대수겠나 싶은 생각이 드는 걸 보면 할머니가 끌어당기던 내 팔뚝의 끌림은 스르르 져드려도 좋을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벌들도 찍고, 노란 유채꽃향기도 맡고 적당히 찰칵 찰칵 찍고 돌아서는데 맞은편 할머님이 다시 건너오셨다.



그니까 이모가 몇째 이모냐고 물으셨다. 큰 이모니까 첫째 이모지요. 그럼 네 어머니는 몇째 가 되느냐고 물으시길래 우리 엄마는 셋째지요,라고 했다.



단 두 마디를 물으셔서 단 두 마디 답을 했을 뿐인데, 단 두 마디의 근거로 할머니는 내 출생지와 내 본가와 시가를 모두 맞추셨다. 헐.. 그럼 느가 그 동네 아이로구나, 그 동네에서 저 동네로 시집간 그 아이로구나, 하셨다. 띵.. 아니 그걸..이라고 되 물을 겨를도 없이 당신도 저 동네서 시집와 60년을 여기서 살고 계신다 했다. '임'가라 시며 다 알만한 집안의 알만한 사이니까 아까 그렇게 말한 거는 양해 바란다는 장황한 말씀이 이어졌다. 딴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아무나 들어가면 유채밭이 상하고 엉망이 되니 이모 밭을 지켜주려던 거라 하셨다.  



아이고 너무 반갑다며 얼싸안으시며 이왕 이렇게 만난 김에 당신 밭으로 가서 사진 예~쁘게 찍고 가라 셨다. 아... 예? 아니 저는 안 찍어도 된다고 한사코 마다했지만, 자그마한 할머니의 손길이 어찌나 굳세던지 아까 세고 계셨던 천 원짜리 지폐의 두둑함이 다시 떠올라 못내 끌려가고 나서야 끝이 나겠구나 했다. 반짝 웃음이 나서 흐지부지 이끌려서는 이모의 유채밭을 앞에 두고 임씨 할머니의 유채밭에서 썩소 먹은 사진 한 장을 기어이 찍고 돌아섰다.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드리고 돌아서는데 "잘 가라이~~"라며 손 흔드는 할머니의 영업력에 감탄이 절로 났다. 저 정도의 기술이라면 뭐라도 못할 게 없지 싶었다.



닮고 싶다기엔 두려운? 할머니의 영업력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나도 할머니 나이가 되면 자연스레 갖게 되는 걸까 궁리하며 돌아오는 길에 할머니 손끝에서 번졌는지 모를 유채향이 내 팔에서 웅웅 돌아 자꾸 웃음이 났다. 어머님께 산방산으로 시집간 임씨 할머니 이야기를 해 드려야겠다 생각하니 피식피식 웃음이 났다.



*


후에 이모에게 들은 바로는 예전엔 이 밭에서 채소도 심고 쪽파도 심어서 소소한 일거리로 장에 내다 팔며 살림에 보태 쓰곤 했었는데, 근 10년 사이 아무것도 한 게 없는 당신들의 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소일 거리 하던 땅마저 유지하기만도 힘들어졌다고 했다. 농사를 지어 반찬 사 먹던 그 땅이 이제는 내야 할 세금만 치르기에도 벅찬 땅이 되어버렸다는 거였다. 일 년에 딱 한 철 유채꽃이 피는 이 때에 바짝 사진값이라도 받아두지 않으면 세를 감당하기가 어려워 땅이라도 내놓아야 할 지경이 되었다 했다.



어쩌면 임씨 할머니의 영업력은 생계 전선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노년의 간절함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피식 웃음이 났던 귀여운 할머니의 모습이 어쩐지 쉬 잊히지 않는 밤이었다.  



이전 20화 아는 맛이라고 다 그 맛은 아니니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