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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조지가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속삭임

by 주토피아

세상과 멀리 떨어진 채 자신만의 비밀을 간직한 섬을 상상해 본 적 있나요? 섬은 푸른 바다라는 거대한 장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오랫동안 다른 대륙과 교류 없이 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학자들은 이런 곳을 마치 자연이 벌이는 위대한 실험실과 같은 ‘고립된 생태계’라고 부릅니다. 이곳에서는 시간이 대륙과는 다른 속도로 흐르는 것만 같습니다. 외부 세계의 치열한 경쟁이나 포식자들의 위협 없이, 섬의 생명체들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수만, 수백만 년에 걸쳐 진화의 여정을 계속합니다.

갈라파고스 제도의 지도

이런 특별하고 평화로운 환경에서는 아주 신기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외부의 간섭 없이 오랜 시간 동안 진화하면서, 그 섬에서만 볼 수 있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생명체, 즉 ‘고유종’이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특히 남아메리카에 위치한 갈라파고스 제도는 화산 활동으로 태어난 고독한 섬들의 집합체로써 바로 이런 ‘고유종’들로 가득 찬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핀타섬에는 오직 그 섬에만 사는 특별한 종인 핀타섬 코끼리거북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거북들은 수만 년 동안 천적이라는 개념조차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그들은 두려움 없이 섬을 거닐며 식물의 씨앗을 멀리 퍼뜨려 숲을 가꾸고, 육중한 몸으로 길을 내어 다른 작은 동물들의 통로를 만들어주는 ‘생태계의 정원사’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100년 넘게 장수하는 핀타섬 코끼리거북이들은 섬의 주인이자 살아있는 역사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핀타섬의 주인이었던 코끼리거북의 길고 평화로운 역사는 인간이라는 ‘낯선 손님’이 섬에 발을 들이면서 비극적인 종말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비극은 ‘무분별한 사냥’이었습니다. 19세기, 망망대해를 항해하던 고래잡이배와 해적선에게 핀타섬은 중간 기착지였습니다. 냉장 기술이 없던 시절, 몇 달씩 이어지는 항해에서 신선한 식량을 구하는 것은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이때 선원들의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코끼리거북이었습니다. 먹이나 물 없이도 배 안에서 1년 가까이 살 수 있었던 거북은 그들에게 ‘살아있는 통조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수백, 수천 마리의 거북이 단지 인간의 식량이 되기 위해 배에 실려 고향을 떠나야 했습니다. 섬의 위엄 있던 주인은 순식간에 인간의 식량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하지만 더 끔찍하고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은 ‘외래종’의 등장에 의해 초래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식량을 얻으려고 섬에 무심코 풀어놓은 염소 몇 마리가 문제의 시작이었습니다. 천적이 없는 섬에서 염소는 기하급수적으로 번식하며 섬의 생태계를 통째로 집어삼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마치 강력한 진공청소기처럼 섬의 풀과 나무, 심지어 거북들의 유일한 안식처였던 선인장 군락까지 닥치는 대로 먹어 치웠습니다. 푸르렀던 섬은 점차 흙먼지 날리는 황무지로 변해갔습니다. 수만 년 동안 먹이 걱정 없이 살아온 코끼리거북들은 갑자기 나타난 이 강력한 경쟁자에게 속수무책으로 먹이를 빼앗겼습니다.

결국, 무자비한 사냥과 끔찍한 굶주림 끝에 핀타섬에서 코끼리거북의 모습은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971년, 잿더미 속에서 기적처럼 단 한 마리의 생존자가 발견됩니다. 바로 ‘조지’였습니다.

조지는 자신의 동족이 사라지는 모든 과정을 온몸으로 겪어낸 마지막 핀타섬 코끼리 거북이로써 지구에서 홀로 남겨진 마지막 생존자였습니다. ‘외로운 조지’라는 별명을 얻게 된 조지는 발견된 후, 찰스 다윈 연구소의 과학자들 보호 아래 40년을 더 살았습니다. 그의 발견은 전 세계에 ‘아직 희망은 있다’는 메시지를 주었고, 인류는 자신들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조지의 후손을 남기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종복원 연구자들은 먼저 핀타섬 암컷 거북을 찾기 위해 전 세계 동물원을 샅샅이 뒤지고, 핀타섬에 1만 달러의 현상금까지 내걸었지만 암컷 코끼리 거북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계획이 허사가 되자 연구자들은 차선책을 선택했습니다. 유전자 분석을 통해 조지와 가장 가까운 친척인 이사벨라섬의 울프 화산 지역에 사는 암컷 거북 두 마리를 데려와 조지와 함께 살게 한 것입니다. 연ㄱ 자들은 혹시라도 조지가 짝짓기에 관심을 보이지 않을까 봐 인공 수정을 위한 정자 채취까지 시도하며 애를 태웠습니다. 하지만 수십 년간 홀로 지내온 조지는 암컷들에게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핀타섬 코끼리 거북 '외로운 조지'

그러던 2008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조지가 드디어 암컷과 짝짓기에 성공한 것입니다. 연구자들은 기뻐하며 조심스럽게 13개의 알을 인공 부화기로 옮겼습니다. 모두가 숨죽여 아기 거북의 탄생을 기다렸지만, 몇 달 후 돌아온 소식은 절망적이었습니다. 모든 알이 부화에 실패한 무정란이었던 것입니다. 그 후에도 몇 차례 더 알을 낳았지만 결과는 같았습니다. 인류의 후회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조지의 편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2012년에 조지는 조용히 눈을 감고 말았습니다. 그의 죽음은 단순히 100살 넘은 거북 한 마리의 죽음이 아닙니다. 핀타섬 코끼리거북이라는 수백만 년을 이어온 하나의 종이 지구에서 영원히 사라졌음을 알리는 공식적인 선언이었습니다.

조지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교훈을 남깁니다. 섬처럼 고립된 생태계는 외부의 작은 충격에도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곳의 생명체들은 오랜 시간 자신들만의 규칙에 완벽하게 적응해왔기 때문에, 갑자기 나타난 사냥꾼이나 염소 같은 강력한 외래종 앞에서 살아남을 힘이 없습니다. 조지의 외로운 마지막은 우리에게 큰 슬픔을 전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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