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밤 - 박용래
겨울밤
박용래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마늘밭에 눈은 쌓이리.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추녀밑 달빛은 쌓이리.
발목을 벗고 물을 건너는 먼 마을.
고향집 마당귀 바람은 잠을 자리.
마늘은 모든 추수가 끝나가는 늦가을에 심는다.
그래서 마늘은 겨울을 땅속에서 보내고 봄이 되면 싹을 틔워 감자를 캘 때쯤,
그러니까 여름의 초입새에 캐는 것이다.
마늘을 심어놓은 밭에는 겨울을 조금이라도 포근하게 나라고 짚으로 이불을 해 엮어 덮어주거나 왕겨를 덮어둔다.
그러면 그 짚이나 왕겨 위로 눈이 또 한 번 쌓여 한번 더 이불을 덮어준다.
내가 마늘을 먹어온 년수는 살아온 날만큼이나 오래되었겠지만,
마늘을 언제 심고 언제 캐는지 알게 된 것은 불과 몇 년 전이다.
그러니 이 시를 몇 년 전에 읽었더라면 저 마늘밭이 어떤 모습인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전혀 다른 풍경을 상상했을 것이다.
아는 만큼 느낄 수 있다는 말이 모든 경우에 다 해당되는 말이라고 믿지는 않는다.
아무것도 알지 못해도 아름다운 시가 있고, 음악이 있고 그림이 있다.
하지만 담겨 있는 것에 대해, 그 작품의 작가에 대해 알고 감상하면
훨씬 절절하게 와 닿는 작품들도 분명 존재하는 법이다.
내가 마늘밭에 주목한 이유는,
마늘밭은 다른 밭과는 달리 겨울에도 여전히 생명을 품고 있는 밭이라는 것과
어쩐지 그 마늘밭은 내년에도 봄이 돌아올 것이라는 농부의 믿음이 함께 숨 쉬는 밭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쓸쓸해 보이는 겨울에도 고향집이, 집 옆에 휑한 밭이 그저 추워 보이지만은 않는 것이다.
바람도 와서 잠을 자고 갈 만큼, 생각만 해도 포근하고 평온한 어느 시골 마을의 한 누추한 집.
집 옆의 마늘밭에 눈은 쌓이고 추녀 밑에는 달빛이 쌓이는 겨울밤이다.
올 가을에는 나도 꼭 마늘을 심어보고 싶다.
그래서 우리 집도, 시인이 이렇게 그리워하는 고향집 같은 포근한 집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모든 것이 얼어붙은 매서운 겨울밤에도 봄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는 농부가 되어야겠다는 마음으로.
겨울 같은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생명을 품어야겠다는 의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