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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현락 Apr 21. 2022

나의 아저씨, 나의 해방일지

심플리뷰

요즘 어떤 드라마 보시나요?


넷플릭스를 켜도 제목만 넘기다가 한 시간 그냥 지나가 버린 경험 있으시죠 ㅎㅎ 저도 그렇답니다. 저녁 아홉 시 전후로 리모컨을 들고 넷플릭스와 유튜브 그리고 각종 케이블과 공중파를 넘나들며 이번엔 뭘 보나 여기저기 기웃거린답니다.


그러다 얻어걸린 드라마가 바로 '나의 해방일지'예요. 잔잔하게 흘러가다가 명대사가 한 줄씩 나오곤 하죠. 알고 보니 인생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박해영 작가 작품이네요. 어쩐지 대사가 남다르더라고요.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TVN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삼남매의 막내 염미정(김지원)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술에 절어 사는 구씨(손석구)에게 겨울이 오면 멍하니 밖을 바라 볼 일도 없어진다며 자신이 할 일을 줄 테니 자신을 추앙하라고 하죠. 구씨는 이게 무슨 일인가 멀뚱하니 염미정을 바라봅니다.


염미정이 구씨에게 자신을 추앙하라고   저는 거꾸로 자신이 구씨를 추앙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들렸어요. 아니다를까 다음 회에 보니 추앙의 의미를 염미정은 응원으로 해석해 주더군요.  격하긴 하지만 서로를 응원하는 사이가 되자고 손을 내민 셈이죠.

TVN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아무나 한 번만 뜨겁게 사랑하고픈' 염미정의 언니 염기정(이엘)은 오늘도 지하철 차장에 비친 응원의 문구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오늘 당신에게 좋을 일이 있을 겁니다.


분명 응원이에요. 하지만 오늘 염기정에게는 이 문구가 야속하게 느껴졌을 거예요. 소개팅을 망치고 돌아가는 길이거든요. '힘내, 잘 될 거야!' 때로 위로의 말을 건네주긴 하지만 '힘내!'라는 말조차 요구처럼 들릴 때가 있죠. 힘을 낼 수가 없어서 힘이 없는데 어떻게 힘을 내란 말야. 마치 어떤 강요처럼.


좋은 일이 없는데 그래서 내 인생은 꽝인가 싶은데 떡 하니 '오늘 당신에게 좋을 일이 있을 겁니다'라는 문구가 눈앞에 딱 나타나니 그 좋은 일들은 다 어디로 가고 난 이렇게 홀로 지하철 한 구석을 차지하고 앉자 있는가 싶죠. 남의 얘기로 들리지 않는 건 왜일까요?

TVN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처음에는 이 장면이 그냥 우연히 들어간 거라 생각했어요. 3회에 이어 4회에 한번 더 나오고 나서야 다 계획이 있었구나 싶었죠. 드라마든 영화든 어느 한 장면도 우연히 들어간 장면은 없죠. 더구나 이 지하철 장면은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고요.


드라마에서 서울은 계란의 노른자, 경기도는 그 노른자를 둘러싸고 있는 흰자로 불립니다. 우리가 노른자 땅, 노른자 땅 하잖아요. 아마도 거기에서 따온 대사 같아요. 주로 삼 남매의 둘째인 염창희(이민기)가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얘기한 걸 누나 염기정이 듣고 소개팅 자리에서도 얘기하죠.


경기도 북부에 사는 소개팅 상대와 경기도 남부에 사는 염기정은 서로 만나기 위해 그 중간지점인 노른자 땅 서울에 1시간 30분 걸려서 나온 거예요. 서로의 집에 가기 위해서 3시간이 걸리죠. 염기정은 3시간이면 여행도 가겠다면 소개팅 상대에게 웃픈 농담을 해요.


서울에 집이 있었다면 뭔가 달라졌을까? 오늘도 힘겹게 마을버스와 지하철을 두세 번 갈아타기 신공을 발휘해 출근하는 기정과 창희는 혼잣말처럼 되뇝니다.

TVN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2020년 겨울, 전화 한 통이 왔어요. 집주인이 9년이나 살았던 집에서 갑자기 나가라는 거예요. 분명 재건축이 한참이나 남았다며 계속 살 거면 살라고 했었는데 갑자기 나가라니 막막하더라고요. 이미 전세는 오를 대로 올라서 전세금을 돌려받고 저축해 놓을 돈을 다 찾아도 서울에서는 집을 구할 수 없었죠.


서울살이에 그렇게 미련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날 저녁에는 좀 서럽게 울었습니다. 슬프더군요. 이제까지 뭘 하고 살았는지 싶기도 하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막막하기도 하고요. 드라마가 팩트로 다가오는 건 그래서 인가 싶어요.  


글을 쓰려고 드라마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지하철을 타고 있는 삼남매와 구씨 사진이 있고 '오늘 당신에게 좋은 일이 생길 겁니다'라는 문구가 가운데 살포시 자리 잡고 있군요. 드라마를 허투루 본 건 아니라는 안심이 드네요 ㅎㅎ

TVN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박해영 작가의 작품에는 곁에서 응원해 주는 한 사람이 등장하곤 하죠. '나의 아저씨'에서는 지안에게 동훈이 어른으로서 그런 역할을 했죠. '나의 아저씨'의 마지막 장면에서 지안은 회사에 취업해 목에 사원증을 걸고 테이크아웃한 음료를 들고 동료들과 밝은 웃음을 지어요. 동훈은 그런 지안에게 '평안에 이르렀느냐'라고 묻죠.


'나의 해방일지'의 삼 남매는 어엿한 직장인이에요. 번듯한 회사에 다니고 있죠. 물론 직장 생활 팍팍합니다. 비록 1시간 30분 걸려도 삼 남매에게는 출근할 직장이 있어요. 미정은 직장 내 행복지원센터에서 동호회에 들라는 압박을 받죠. 일종의 강요된 행복과 인간관계예요.


마주 보고 대화하는 게 편한 사람도 있지만 그걸 압박으로 느끼는 사람도 있죠. 박상민 부장과 조태훈 과장 그리고 염미정은 마주 보는 것보다 따로 또 같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게 편한 사람들이에요.


이 삼인방이 사고를 쳐요 ㅎㅎ 행복지원센터에서 계속 동호회 들라고 압박을 하니 아예 자신들이 '해방클럽'이라는 동호회를 만들어 버려요.  보는 사람 속이 다 시원한 장면이었어요.


강요된 행복에서 벗어나 해방을 맛보고자 하는 삼인방들의 잔잔한 활약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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