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영화제
시작은 그랬다. 동네에서 작은 영화제를 기획하고 있는데 마침 그 전 주에 영화관을 하는 분과 식사를 했다. 우연찮게 그 영화관에서 찾아가는 영화관이란 프로그램도 진행한다는 걸 알게 되어 도움을 바라며 전화를 했다. 흔쾌히 승낙을 받고 담당 프로그래머와 연락이 됐다.
그렇게 현장 답사에서 만난 프로그래머와 영화가 상영될 지역 인문아카데미센터를 둘러보고 식사를 함께 하며 무슨 영화가 좋을지 상의하다가 낙점된 영화가 '우리들'이다.
희소식은 영화 상영 후 '우리들'을 만든 윤가은 감독과 대화 나눌 시간을 마련할 수도 있다는 사실. 윤 감독과 통화한 후 프로그래머가 다시 답을 주겠다고 해서 두 손 모아 GV가 성사될 수 있도록 기도했다.
며칠 뒤 윤 감독으로부터 회신이 왔고 관객과의 대화 시간은 그렇게 준비됐다. 시간은 어찌도 그렇게 빨리 가는지 동네 영화제가 코앞. 서둘러 포스터를 붙이고 현수막을 걸고 분주히 영화제 손님맞이를 준비했다.
두근두근 과연 몇 명이나 올까? 예상인원을 초과해서 장소는 꽉 찼고 영화제는 순조롭게 시작됐다.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제일 걱정되면서도 제일 기대되는 시간은 관객과의 대화였다. 혹시나 질문이 없으면 어쩌나 노심초사.
BUT, 영화에 대해 궁금한 점 질문하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예!'라는 소리와 함께 번쩍 올라가는 손을 보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처음부터 이 이야기였어요?"
첫 질문에 윤가은 감독은 놀란 눈치였다. 와우! 이런 질문을 해 주어 고맙다는 듯이 윤 감독은 정성껏 시나리오 구상 단계에서부터 이야기가 무르익어가고 몇 번의 수정을 거듭한 끝에 영화가 완성되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구성지게 풀어놓았다.
"우리들, 우리집. 다음 영화 제목도 우리가 들어가요?"
두 번째 질문은 많이 받는 질문인 듯했다. 어떤 사람은 다음 영화는 그러면 '우리나라'냐고 했단다.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스텝 중에 한 명이 그랬다는 것도 같고. 암튼.
"저도 얘랑 맨날 싸워요!"
뜻하지 않게 이런 고백을 하는 어린이도 있었다. 마치 영화 속 주인공 윤이 같았다. 윤이는 친구랑 싸우다 눈에 멍이 든다. 누나가 윤이에게 너는 왜 맞기만 하냐며 때려 주라니 윤이가 싸우면 언제 노냐고 반문한다.
싸우고 풀어지고 다시 놀고. 아이들은 그렇게 자란다. 난 그날 영화를 보며 거듭해서 오해하고 싸우는 선과 지아의 모습이 나의 일상과 크게 다를 것 없어 보였다. 다른 점은 선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지아의 편을 들어주며 다시 손을 내민 것.
어린 시절을 거쳐 어른이 되면 남의 마음을 살피는 게 조금 쉬울 줄 알았다. 어찌 된 일인지 남의 마음은커녕 내 마음도 내가 몰라 바보짓을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적어도 그날 영화제에 참석한 아이들은 자기 마음은 제대로 아는 듯했다. 연신 손을 올리고 궁금한 것을 감독에게 물어보고 자기 심정을 가감 없이 그대로 얘기하는 모습에 어린이는 어른의 스승이라는 명언이 떠올랐다.
예상외로 뜨거운 GV를 마치고 윤가은 감독의 산문집 '호호호'를 추첨을 통해 참여자 중 몇몇에게 나눠주고 직접 사인받는 시간도 가졌다. 경품 운이 없을 줄 알고 내 돈 내산 한 '호호호'를 들고 마지막까지 기다린 끝에 윤 감독에게 팬심을 가득 담아 사인을 요청했다.
활짝 웃으며 윤 감독은 사인과 함께 '덕분에 좋은 시간 만들고 가요!'라는 인사말을 남겨 주었다. 난 윤가은 감독의 다음 영화를 기다린다.
혹시 정말 제목이 '우리나라'는 아닐까? 그럼 난 누구보다 빨리 다음 작품 제목을 알게 된 사람 중에 하나가 된다. 이런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다.
물론 윤가은 감독의 다음 산문집도 기다린다. '호호호'가 그만큼 끝내주게 재밌었다. 이런 다재다능한 사람은 시샘이 날만큼 부럽다.
윤 감독은 산문집에서 뭘 하다가 자꾸 포기한 얘기를 꺼내 놓았고 재능도 고만고만한 자신이 영화만큼은 사랑하기에 끝까지 해냈노라며 영화에 대한 사랑고백을 한 것 마저도 부럽기만 하다.
'우리들'의 선, 지아, 보라, 윤 그리고 '우리집'의 하나, 유미, 유진이 함께 밥을 지어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먹고 오므라이스를 나눠먹는 장면을 나는 이 영화들의 명장면으로 꼽고 싶다.
윤 감독은 아이들에게 상황을 설명해 주고 대화를 주고받으며 아이들의 입말을 그대로 대사로 사용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명대사 중 하나인 윤이의 김치볶음밥 레시피도 그렇게 탄생했다.
뜻밖의 장소에서 만난 아이들이 서로를 보듬어 주며 한 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 장면은 찡하다. 어쩌면 우리는 그런 가족을 여전히 꿈꾸는지도 모르겠다. 보슬보슬 김 나는 밥을 주걱으로 한 공기 퍼담아 김치와 계란에 쓱쓱 비벼 먹는 그 시간이 눈물 나게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