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의 마음은 모래 같다는 생각이 든다. 찰흙이 되지 못하고 모래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을 만나도 그릇으로 빚어지지 못하고 모래가 되어 그릇이 되지 못하는 것 같다. 물을 만나도 하나가 되지 못하고 물이 지나간 발자국만 남아있는 것만 같다. 내 가슴속에 파도의 물결만 새겨질 뿐 온전히 한 몸이 되어 쓸모 있는 도자기로 부활하지 못하는 것 같다. 나도 언젠가 찰흙이 되어 아름다운 청자나 백자로 부활하고 싶다. 옹기라도 되고 싶다. 내 몸에 딱 맞는 물과 불을 만나서 항아리가 되고 싶다. 죽어서도 숨을 쉬는 달 항아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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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살 기운이 있었던 것일까. 감기 기운이 있었던 것일까. 전날 야간근무 때 쉬지 못하고 다음날도 쉬지 못해서 그랬던 것일까. 사진 공부 한다고 너무 유튜브를 많이 봐서 그러는 것이었을까. 가슴이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신경성이라며 정신신경용제만 처방을 해준다. 피검사를 하고 심전도를 체크하고 엑스레이를 찍어보아도 특이사항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어제는 운전도 겨우 하고 회사에 출근해서 가슴이 아파서 일을 할 수 없었다. 오늘 아침에 다시 병원에 다녀왔다. 가슴 사진을 앞과 옆으로 찍어 보아도 별 이상이 없다고 한다. 신경안정제 한 가지 더 추가로 처방을 해준다. 한 일주일 더 지켜보고 차도가 없으면 종합병원에 가서 CT를 찍어보라고 한다. 어젯밤에 메모한 것들을 다시 한번 본다. 그런데 신기하게 좀 좋아진 느낌도 든다. 나는 아직도 내 몸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잘 먹지 못하고 무리해서 나무를 심고 밭을 정리하고 무거운 화분들을 들어 옮기느라 몸이 많이 놀랬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음부터는 무리하지 않고 쉬엄쉬엄 해야만 하겠다. 잠을 잘 자도록 노력해야만 하겠다. 잠이 보약이다. 꿈이 보약이다. 오늘도 나는 꿈속에서 그대를 만난다.
증상 메모
1. 심장 수술받고 가래 빼내려고 기침할 때처럼 가슴이 많이 울리고 많이 아프다
2. 심장 수술받고 뼈가 덜 붙었을 때처럼 가슴 가운데 부분이 아프다
3. 가슴이 아파서 걷기도 힘들고 일상생활이 어렵다
4. 목 아래쪽 가운데 흉골을 누르면 너무 많이 아프다
5. 무엇을 들거나 옷을 입을 수 없다
6. 팔을 쓰면 가슴이 아파서 쓸 수 없다
7. 가슴이 아파서 팔에 힘을 줄 수 없다
8. 숨을 쉬거나 걸을 때 가슴이 아프다
9. 운전할 때 가슴이 많이 아파서 운전을 할 수 없다
10. 누웠다 일어날 때 못 일어날 정도로 많이 아프다
11. 오른쪽 옆으로 팔을 쭉 뻗어 누우니 좀 편안해진다
12. 평소에 반듯하게 누워서 자는데 반듯하게 누워있으면 가슴 가운데가 아프고 왼쪽 옆으로 누우면 왼쪽 가슴이 아프고 오른쪽 옆으로 누우면 그나마 조금은 편안해진다
13. 가만히 앉아 있어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아프다
14. 수술자국 있는 위쪽이 많이 아프다
15. 앞쪽으로 가슴을 내릴 때 가슴이 쏟아질 듯 아프다
16. 걸을 때 가슴이 울리면서 아프다
17. 팔을 움직일 때 아프다 양치질을 하거나 화장실에서 팔을 뒤로 뻗을 때 아프다
18. 숨을 들이쉴 때보다 길게 내쉴 때 더 아프다
19. 몸살처럼 가슴과 팔부분이 기운이 없고 아프다.
20. 기침할 때 가슴이 아프다
21. 약 한 달 전에 치과에서 스케일링받았는데 혹시 염증이 생겨서 그런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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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린 시절 고향에는 모래밭이 많았다. 논에 물을 대기 위해 만든 보가 둘 있었다. 위쪽에 있는 보는 모래방천보라 하였고 아래쪽에 있는 보는 성천 보라고 하였다. 우리들은 여름에 주로 왕산 아래 있었던 모래방천에서 목욕을 하였다. 모래가 많아서 수영하기도 좋고 모래밭에서 놀기도 좋았다. 모래방천에서 목욕을 하고 씨름을 하고 닭싸움을 하고 기마전을 하기도 하였다. 아주 어린아이들은 모래밭에서 땅 짚고 헤엄치기부터 배우곤 하였다. 그리고 여자 아이들은 산 쪽으로 한참 더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은밀한 각시툼벙에서 목욕을 하였고 어른들은 아래쪽에 있었던 넓은 성천에서 늦은 밤에 목욕을 하곤 하였다.
그리고 모래방천과 성천 사이에는 모래들과 자갈들이 섞여 있었다. 그곳을 마을 사람들은 갱본이라고 불렀다. 그 갱본에는 주로 소를 내다 매어두곤 하였다. 그 갱본과 정자나무가 있는 놀이터 사이에는 징검다리가 위아래 하나씩 있었다. 어른들은 놀이터에서 물 건너 갱본에 매어져 있는 소들을 보며 소 잘 먹였다느니 곧 새끼를 낳겠다느니 소 이야기를 하시곤 하였다. 그리고 아이들은 정자나무 아래 놀이터에서 공기놀이를 하거나 딱지치기 놀이를 하든지 고무줄놀이를 하든지 비석 치기를 하든지 진돌이를 하든지 숨바꼭질 놀이를 하곤 하였다.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놀고 있으면 어른들은 시끄럽다고 다른 곳에 가서 놀아라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였다. 사람들은 가끔 그 갱본에서 모래를 가져와 집을 짓거나 자갈을 더 잘게 깨뜨려서 집 짓는 데 사용하거나 건설현장에 팔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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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모래알들이 모여 물과 함께 화양연화를 이루었다
우리들의 작은 꿈들이 모여 아름다운 꽃밭을 만들었다
모래 한 알의 꿈들이 모여 더욱 의미 있게 바꾸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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째깍째깍째깍 시계소리가 들린다. 꿀렁꿀렁꿀렁 물소리도 들린다. 바닷가 모래밭에서 빈 조개가 물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집주인은 집을 비우고 어디로 떠나갔을까? 빈 물소리만 빈 시계를 들여다본다. 껍데기의 삶과 알맹이의 삶을 생각한다. 하늘을 보니, 하늘 바다에 벌써 초승달 하나, 별을 따라서 소리도 없이 노를 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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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바다가 좀 더 깊은 속살까지 보여주고 있다. 바다가 멀리 나가 집을 비운 사이에 사람들은 부지런히 어린 게를 잡고 해초들을 뜯어 나온다. 어린 게를 깅이라고 말한다. 한 바케스 가득 잡아 나오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깅이죽이나 깅이볶음의 고소함을 떠올리지 못하고 어린 새끼들의 울부짖음과 새끼 잃은 어미의 흐느낌이 붉은 노을까지 어둠으로 어둡게 젖어들게 만든다. 어쩌면 이것도 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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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모래밭으로 간다. 바다에서 왔던 물들이 뒤늦게 돌아가는 것인지 아니면, 한라산에서 내려온 물들이 용천수로 솟아올라 바다로 가는 것인지 나는 잘 알 수 없다. 바다로 가는 크고 작은 물줄기들이 모래밭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어쩌면 모래밭의 상처인지도 모른다. 사람의 손으로는 도저히 그릴 수 없는 그림들이 그려졌다 사라지고 또한 수시로 수정되고 있다. 어쩌면 우리들의 상처도 이와 같을 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상처가 생기고 지워지고 또 다른 상처가 생겨날 것이다. 우리들의 슬픔도 이와 같아서 한쪽에서는 무너지고 또 다른 쪽에서는 쌓여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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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알 하나에 온 세상이 있다. 나는 모래알 하나가 된다. 너도 모래알 하나가 된다. 우리는 그렇게 온 세상이 된다. 그런 세상들이 반짝이고 있다. 그런 세상들이 젖어서도 빛나고 있다. 어쩌면 나의 오랜 꿈이 기어이 이루어질 것만 같다. 나의 먼 태아의 꿈이 드디어 인연을 만나 꽃을 피울 것만 같다. 나의 태아가 어머니 배 바깥의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뇌가 생기고 심장이 생기고 손과 발이 생기더니 뇌 속에서 더욱 바빠지는 뉴런과 시냅스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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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해수욕장은 그동안 덮어 두었던 그늘막을 걷어내고 본격적인 여름을 준비하고 있다. 서둘러 찾아온 사람들도 눈에 띄게 많아졌다. 이호해수욕장에는 원담이 쌍으로 있다. 마침 물이 많이 빠져서 온전히 드러나 있다. 원담 중간쯤에서 구멍 낚시를 하는 사람이 있다. 제주도 어느 바닷가에서나 잘 잡히는 물고기라고 했다. 장어 종류의 일종이라고 했다. 보들레기라고 알려주었다. 보들레기를 너무 쉽게 잡고 있었다. 고춧대 지지대라고 말했다. 작은 쇠막대 끝에 한 뼘 정도의 낚시 줄을 검정 테이프로 감아 만든 낚싯대로 구멍에서 쏙쏙 뽑아내는 낚시법이 내 눈에는 참으로 신기했다. 성산일출봉 근처에서 어린 시절에 많이 잡았던 물고기였고 또한 그때부터 해왔던 낚시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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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틈에서 쑥쑥 뽑아내는 모습이 너무 신기해서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나에게 해보라며 낚싯대 하나를 들려주었다. 지금 물이 막 밀려오기 시작했으니 저 구멍 속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말했다. 누구라도 쉽게 할 수 있는 낚시라고 말했다. 죽은 새우를 낚시에 끼우고 구멍에 쑤셔 넣었다. 역시 바로 입질이 왔다. 힘도 좋았다. 보들레기는 멍청해서 바로 덥석 물어 삼켜버린다고 했다. 그러니까 낚싯대를 끝까지 꽉 잡고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너무 서두르는 바람에 물고기들에게 밥만 주고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물고기가 물면 바로 쑥 뽑아서 돌멩이에 패대기를 쳐서 기절을 시켜야만 하는데 나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물고기들에게 저녁밥만 주고 빈 손으로 일어서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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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해수욕장 곁에는 이호랜드 부지가 있다. 넓은 매립지로 놀이시설이 들어설 거라는 소문이 있는데 여론이 좋지 못해서 몇 년째 공터로 방치되어 있다. 그런데도 말모양의 등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다. 단체 관광객들도 관광버스를 타고 많이 놀러들 오곤 한다. 공항과 시내가 가까워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비행기들이 수시도 낮게 내려앉는다. 노을이 점점 아름다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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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테우해수욕장에서 나는 나의 마음을 모래에 베껴 쓰고 있다. 민물이 바다를 만나러 가는 길이 선명하게 보인다. 용천수가 바다로 가는 길이 선명하다. 맹물이 짠물을 만나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바다를 처음 만난 강물은 어떤 생각을 할까. 바닷물과 강물을 만나는 모래들은 또한 어떤 생각을 할까. 나는 지금 민물일까 바닷물일까 아니면 모래일까. 눈부시게 빛나는 해안에서 나는 오늘도 해안선으로 들락거리고 있다. 저 모래처럼 나의 마음이 무너지기도 하고 물길을 따라서 파문이 새겨지기도 한다. 모래밭에 오랜만에 하트를 그렸는데 개 한 마리가 달려와서 발자국을 남기고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