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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Apr 09. 2024

사계리 발자국

꿈삶글 118



사계리 발자국


아주 먼먼 옛날에도 사람들이 살았다

사람들의 발자국이 화석으로 남았다

나는 송악산에서 산방산으로 간다

산방산은 백록담을 엎어서 놓았다

저 산 안의 방에서 살아도 좋겠다

산방산 안으로 간다 상모리에서

사계리 해안으로 봄바람으로 간다

죽솥에 빠진 설문대할망 뼈를 보고

이곳까지 와서 매일 삼천 배를 올리는

오백장군 형제의 막내 형제섬을 보면서

사람발자국 화석에 나의 발을 맞춘다

소와 사슴 발자국에 나의 발을 대본다

매머드의 발자국에 나의 발을 넣어본다

나는 먼 옛날에 무엇으로 살다가 갔을까

나는 지금 어느 계절의 모래밭에서

사랑하는 그대를 찾고 있는 것일까

아주 먼 다음에도 사람들은 살 수 있을까



제주사람발자국과 동물발자국 화석산지


이 유적의 정식 명칭은 '제주사람발자국과 동물발자국 화석산지'이다. 사람발자국이 발견된 지역은 안덕면 사계리와 대정읍 상모리 경계 해안 일대로 1920년대까지만 해도 모래밭이었으나 기후변화와 해안 시설물 등으로 인한 해류 이동의 변화로 점차 모래가 유실되어 발자국 화석층이 드러났다.


사람발자국 화석의 생성 시기는 퇴적층에 대한 층서 확인을 비롯한 시료에 대한 방사선 탄소연대 측정 등의 결과와 함께 멸종된 장비류(털 매머드)의 발자국 형성시기 등을 근거로 생성시기를 규명했는데 플라이스토세(홍적세) 말기인 1만 9000~2만 5000년 전으로 추정했다.(김정빈 순천대 교수, 김정률 한국교원대 교수, 김경수 진주교대 교수, 임현수 극지연구소 연구원 등 공동연구팀, 국제전문학술지 Journal of Archaeological Science(고고과학저널) 인터넷판)


100여 점에 달하는 사계리의 사람발자국 화석은 2003년 10월 한국교원대 김정률 교수와 진주교대 김경수 교수에 의해 발견됐다. 아시아에서는 중국에 이어 두 번째 발견이며 대량 발견된 것은 세계 최초이다.


현장에는 사람발자국 화석 이외에도 조류, 코끼리, 소와 사슴, 육식동물, 어류, 무척추동물, 게, 식물, 전복·소라 등의 동물화석과 식물화석이 함께 발견됐다. 후기 구석기 인류의 이동경로 연구를 비롯하여 고고학, 고인류학, 고생물학, 고생태학 분야 연구에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향토문화] 1만 9000~2만 5000년 전 추정.. 사계리 사람발자국화석

기후변화와 해안 시설물 등 해류 이동으로 점차 모래가 유실돼 발자국 화석층이 드러났다.


사계리 사람발자국화석


위치 ; 안덕면 사계리 바닷가
시대 ; 플라이스토세(홍적세) 말기(1만 9000~2만 5000년 전)
유형 ;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 제464호(2005년 9월 8일 지정)


제주 사람발자국 화석 옮겨 보존 : 전국일반 : 전국 : 뉴스 : 한겨레 (hani.co.kr)

똥 밟고 흙 밟던 ‘발’은 인류 기원의 열쇠 : 의료·건강 : 사회 : 뉴스 : 한겨레 (hani.co.kr)


이 유적의 정식 명칭은 '제주사람발자국과 동물발자국 화석산지'이다. 사람발자국이 발견된 지역은 안덕면 사계리와 대정읍 상모리 경계 해안 일대로 1920년대까지만 해도 모래밭이었으나 기후변화와 해안 시설물 등으로 인한 해류 이동의 변화로 점차 모래가 유실되어 발자국 화석층이 드러났다.


사람발자국 화석의 생성 시기는 퇴적층에 대한 층서 확인을 비롯한 시료에 대한 방사선 탄소연대 측정 등의 결과와 함께 멸종된 장비류(털 매머드)의 발자국 형성시기 등을 근거로 생성시기를 규명했는데 플라이스토세(홍적세) 말기인 1만 9000~2만 5000년 전으로 추정했다.(김정빈 순천대 교수, 김정률 한국교원대 교수, 김경수 진주교대 교수, 임현수 극지연구소 연구원 등 공동연구팀, 국제전문학술지 Journal of Archaeological Science(고고과학저널) 인터넷판)


100여 점에 달하는 사계리의 사람발자국 화석은 2003년 10월 한국교원대 김정률 교수와 진주교대 김경수 교수에 의해 발견됐다. 아시아에서는 중국에 이어 두 번째 발견이며 대량 발견된 것은 세계 최초이다.


현장에는 사람발자국 화석 이외에도 조류, 코끼리, 소와 사슴, 육식동물, 어류, 무척추동물, 게, 식물, 전복·소라 등의 동물화석과 식물화석이 함께 발견됐다. 후기 구석기 인류의 이동경로 연구를 비롯하여 고고학, 고인류학, 고생물학, 고생태학 분야 연구에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문화재청에 의하면 이 화석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기까지는 순탄한 과정을 거친 것이 아니라 몇 가지의 논란이 있었다. 국내에서 사람 발자국 화석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전 국민의 주요 관심사였고, 세계적으로도 중요한 학술적 의의를 갖는 것으로 외신에서도 관심을 보였었다. 따라서 사람 발자국 화석에 대한 논란 또한 국민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하였는데, 첫 번째는 정말 사람 발자국 화석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으며, 두 번째는 사람 발자국 화석의 생성 연대가 5만 년 전이냐 아니면 2-3천 년 전이냐에 대한 것이었다.


이 지역의 화석은 2001년 제주도내 고등학교에서 지구과학을 가르치는 강지현 교사가 논문 준비 중에 사계 해안에서 처음 관찰되어 한국교원대학교 지구과학교육과 김정률 교수에게 알려졌다.(블로그 꿈꾸는 섬, 작성자‘바닷가’ 2007년 11월 1일) 8월에 김 교수와 그의 제자들이 이 지역 일대를 조사하던 중 우제류와 새 발자국 화석을 최초로 발견하였다.


이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니는 사람 발자국 화석은 최초 발견 이후 한국과학재단으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아 새 발자국 화석과 우제류 발자국 화석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던 중, 2003년 10월에 공식 발표되었다.


당시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던 김경수 박사(충북과학고 교사)가 주로 사진을 촬영하면서 우제류 발자국 화석과는 조금 다른 형태를 나타내는 발자국 화석을 보고 다소 이상하게 생각하였으나 당시에는 ‘진흙과 같은 뻘층에서 우제류가 미끄러져 형성된 발자국일 것’이란 생각을 하고, 일단 촬영을 하였다고 한다.


촬영을 마친 후 연구실로 돌아와 사진을 분류하는 중에 아무리 보아도 우제류의 발자국과는 다른 발자국이 있어, 고민을 하다가 잠정적으로 분류를 보류하고 별도로 보관하였다. 새 발자국과 우제류 발자국 화석에 대한 연구가 어느 정도 진척된 후에 김경수 박사는 예전에 미처 분류하지 못하였던 사진을 다시 꺼내어 보았고, ‘어떤 발자국일까?’하고 고민하던 중에 발자국의 패턴이 4족 보행을 하는 동물에 의한 것이 아니라 2족 보행을 하는 한 동물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하였고, 결국 2족 보행을 하는 동물 중에서 가능성을 찾다가 사람 발자국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생각하고 이러한 생각을 김정률 교수에게 이야기하였다.


김정률 교수는 이것이 사람 발자국 화석이라면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하였고, 곧 관련 자료를 수집하여 최종적으로 사람 발자국 화석이라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사람 발자국이라고 하면, 뚜렷하고 잘 찍힌 발자국을 생각한다. 뚜렷하고 잘 찍힌 사람 발자국은 경계가 분명하고, 다섯 개의 발가락 자국이 잘 나타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제주도의 사람 발자국은 뚜렷하고 잘 찍힌 발자국이 아니기 때문에 생흔 화석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에게도 생소하게 보였다. 현지 조사과정에서 많은 관련 학자들은 사람 발자국 화석을 현장에서 관찰한 후, “(무게를 받는) 뒤꿈치가 파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올라가 있다”며 “발뒤꿈치 부분이라고 주장되는 곳이 발에 눌린 자국이라면 지면보다 들어가야 하는 게 정상”이고, “사람 발자국인지 신중하게 조사해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이러한 지적은 대체적으로 옳은 것이다. 하지만, 김정률 교수에 의하면, 자연 상태에서 보존되는 발자국들은 퇴적물의 조건에 따라 매우 다양한 형태를 나타낸다고 한다. 그리고 지표면에 드러났을 때, 풍화 침식의 조건 등과 같은 여러 가지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이러한 예로, 우리가 흔히 여름철에 해수욕장의 모래사장을 걸었을 때, 모래 위에 찍히는 발자국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발자국에는 발가락이 보존되기가 어렵다. 그리고 갯벌 체험을 해 본 많은 사람들도 발목까지 깊이 들어가는 갯벌에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발자국의 형태를 찾아볼 수 없다.


김정률 교수의 이러한 주장은 추가적인 발굴 조사와 외국의 학자들의 현장 검증을 통해서 옳은 것으로 증명되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주변의 사물을 관찰할 때, 흔히 자신들에게 익숙한 것들을 먼저 떠올리게 되고, 그와 일치되지 않는 것들은 보지 못하고 지나치게 된다고 한다. 아마도 자연의 어느 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보다 세밀히 관찰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일반인들과는 다른 세상을 보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사람 발자국 화석지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두 번째 문제는 사람 발자국 화석의 정확한 생성 시기에 관한 것이었다. 사람 발자국 화석의 발견에 대한 문화재청의 공식 발표가 있은 다음 날 경상대학교의 손영관 교수에 의해 연대 추정이 잘못되었다는 이견이 제시되었다.


손영관 교수는 사람 발자국 화석이 산출되는 지층이 하모리층이며, 송악산 서쪽에 분포하는 하모리층의 하부에서 산출된 연체동물 화석의 탄소동위원소 연대측정 결과가 약 4,000년 전이므로 사람 발자국 화석의 생성 연대가 그것보다는 더 오래될 수 없다는 주장을 제기하였다.


문화재청에서는 이러한 논란을 해결하기 위해 즉시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연대 측정을 의뢰하였다. 그 결과, OSL 측정법으로는 약 7,000년 전으로 측정되었고, 탄소동위원소 측정법으로는 약 15,000년 전으로 측정되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는 OSL 측정값과 해수면 변동 등을 근거로 약 7,000년 전에 형성되었다고 주장하였으나, 연구 결과 보고서를 검토한 김정률 교수는 오히려 탄소동위원소 측정값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하여 사람 발자국 화석의 생성 시기를 약 15,000년 전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문화재청에서는 비록 동일한 연대 측정 자료를 놓고도 서로 엇갈린 주장이 있었으나, 각각의 주장은 추후 학문적 성과로 보완될 것으로 판단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연대 측정 결과에 의하면, 제주도 사람 발자국 화석의 생성 시기는 손영관 교수가 주장한 약 2,000년 전 내지 3,000년 전이 아니라, 적어도 약 7,000년 전보다 오래된 것이 확실하다는 것이 밝혀졌고, 그러한 사실만으로도 천연기념물로써의 학술적, 문화재적 가치가 충분하다는 판단 하에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게 되었다.(출처 ; 제주도 사람 발자국 화석이 문화재로 지정되기까지. 작성자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지원과장 차도윤)


문화재지정 이후 파도 등 자연풍화 침식으로 발자국화석 표면이 마모, 발자국 화석이 훼손되고 있고, 파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지역에 위치해 있어 점점 마모되고 있는데도 뚜렷한 보존방안이 없는 실정이었다.


사계리 김건익 이장은 “화석이 처음 발견될 때는 발자국이 선명했으나 이제는 훨씬 희미해졌다”면서 “파도가 칠 때마다 노출된 화석의 윤곽이 떨어져 나가고 마모된다”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인근 화순항 기반공사를 비롯해 곳곳에서 이뤄지는 방파제 등 시설물 공사를 그 원인으로 지목한다. 이런 시설물 때문에 물의 흐름이 바뀌어 파도가 세졌고, 그에 따라 발자국 화석이 있는 곳에서 2만 년 이상 덮여 있던 모래가 유실됐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서귀포시는 문화재청의 도움을 받아 전남대 산학협력단(총괄책임 허민 교수)에 훼손 우려가 큰 일부 화석에 대해 구제발굴 용역을 맡겼다. 전남대 발굴팀은 2010년 11월 29일부터 2011년 2월까지 구제발굴과 고환경 연구 등 용역을 추진하게 된다.


이번에 발굴된 화석 중 일부는 전국에서 발굴된 화석 샘플을 모으는 ‘대전 천연기념물 센터’로 보내고 나머지는 화석 보호구역 내에 수장고를 마련해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서귀포시 관계자는 “화석은 어떤 방식이든 현장에서 보전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며 “그러나 그냥 방치할 경우 화석 자체가 사라져 버린다는 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합의했다”라고 말했다.


구제발굴이 제대로 이뤄질지도 의문이다. 일대 지층이 응회암 퇴적층으로 외부충격을 받으면 쉽게 부서지는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 화석지대가 바닷가 쪽에 넓게 분포하고 있어 발굴작업을 위한 중장비가 들어서면 화석층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 김정률 교수(문화재위원)는 “희귀한 화석자원을 떼어내야 한다니 무척 안타깝지만 뾰족한 대안이 없기 때문에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면서 “하지만 떼어내는 과정에서 어려움에 봉착하면 발굴을 중단하고 다른 방안을 찾아봐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경향닷컴, 제민일보, 제주의 소리, 제주일보, 한겨레, 한라일보 2010년 11월 25~26일)


KBS 역사 스페셜(120419)에 따르면 이들 발자국의 생성 연대는 상하 지층을 분석하는 방법으로 조사한 결과 19,000~25,000년 전이며 이는 서귀포시 천지연 생수궤의 구석기 유적과 같은 시대라고 한다. 당시는 마지막 빙하기로서 제주도가 한반도와 연결되어 있었다.


또한 역사스페셜은 사람 발자국 화석과 함께 매머드 발자국 화석도 20개 정도 발견된 것을 근거로 이 발자국의 주인공들은 많은 양의 고기와 양질의 움막 재료, 양질의 연료가 되는 매머드 뼈를 얻기 위해 매머드의 서식지를 따라왔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한편 안웅산은 송악산 화산 폭발로 인해 형성된 화산재층 위에 발자국이 발자국이 찍힌 것이므로 4500년 이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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