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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Jul 11. 2024

터빈을 아시나요


터빈


날개가 너무 많아서 슬프다

지옥이 너무 뜨거워 슬프다

지옥 밖으로 탈출을 꿈꾼다

멈추면 밖으로 나올 수 있다

멈추면 너무 무거워 슬프다

날개가 많아도 날 수가 없다


기력 발전소의 핵심 설비는 보일러와 터빈과 발전기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나라 전기의 대부분은 바로 이 기력  발전소에서 생산한다. 기력 발전소란 증기의 힘으로 전기를 만드는 방식이다. 대부분의 화력 발전소와 원자력 발전소가 바로 이 기력 발전소인 것이다.


태양광 발전소를 제외한 대부분의 발전소는 발전기 회전체의 회전으로 전기를 생산한다. 그 회전력의 핵심 설비가 바로 터빈이다. 보통 540°C의 온도와 127kg/cm²의 압력을 가진 과열증기로 1분에 3600바퀴를 돌려준다.


그러니까, 초대형 보일러나 원자로에서 생산한 고온과 고압의  속도 에너지를 터빈에서 회전 에너지로 바꾸어주는 것이  핵심이다.


여러분들도 다 알다시피 100°C가 되면 물이 끓기 시작하고 증기가 발생한다. 주전자 뚜껑이 들썩거리며 밖으로 나가려고 탈출을 꿈꾼다. 열에너지가 속도 에너지로 바뀌는 순간이다. 여기서 쉬지 않고 계속 열을 가하면 온도는 더 올라가고 속도 또한 더 올라간다. 밖으로 뛰쳐나가려는 속도를 가두면  압력이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540°C의 온도다. 540°C가 되면 물의 속성이 전혀  없는 순수한 증기가 된다. 물기가 전혀 없는 과열증기가 된다. 무게도 형체도 완전히 없어진다. 바로 이 부분에서 여러분들은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그 많은 터빈 날개가 손상되지 않고 분당 3600바퀴로 쉬지 않고 돌아갈 수 있는 비밀이 바로 여기에 숨어있다. 증기 속에  수분이 조금이라도 존재하면 터빈 날개는 부러지고 말 것이다.


여러분들에게도 반드시 그런 날이 올 것이다. 몸을 완전히 벗고 영혼만으로 살아갈 날이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다. 그날의 가벼운 비상을 위하여 우리들은 오늘도 최선을 다하여 아름답고 의미 있게 살아야만 할 것이다.


그런  터빈은 일 년에 한 번씩 멈추고 한 달 동안 검사를 받는다. 터빈뿐만 아니라 보일러와 발전기도 일 년에 한 번씩 멈추고 약 한 달 동안 검사와 치료를 받는다. 고장이 나기 전에 계획예방정비를 한다. 우리 인간들도 최소한 일 년에 한 번쯤은 모든 생각과 생활을 멈추고 계획적으로 예방하고 정비를 하여야만 한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길, 그리고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해야지


0000 프로필


서른 살까지 사는 것이 꿈이었다. 왼쪽 가슴이 아팠다. 남몰래 가슴을 안고 쓰러지는 들풀이었다. 내려다보는 별들의 눈빛도 함께 붉어졌다. 어머니는 보름달을 이고 징검다리 건너오셨고아버지는 평생 구들장만 짊어지셨다. 달맞이꽃을 따라 가출을 하였다. 선천성 심장병은 나를 시인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아무도 몰랐다. 나의 비밀은 첫 시집이 나오고서야 들통이 났다. 사랑하면 죽는다는 비후성 심근증심장병과 25년 만에 첫 이별을 하였다. 그러나 더 깊은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 바다는 나를 이어도까지 실어다 주었다. 30년 넘게 섬에서 이어도가 되어 홀로 깊이 살았다. 나는 이제 겨우 돌아왔다. 섬에서 꿈꾼 것들을 풀어놓는다. 꿈속의 삶을 이 지상으로 옮겨놓는다. 나에게는 꿈도 삶이고 삶도 꿈이다. <꿈삶글>은 하나다. 윤동주 시인을 또다시 만나 함께 길을 찾아 나선다. 생명의 숲으로 가는 길을 찾아서 함께 마지막 순례를 떠난다.


0001 정리


나는 내가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다. 그리하여 나는 지금부터 나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내가 언제 어디서 죽게 되더라도 후회하지 않고 잘 떠나기 위하여,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삶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나는 언제나, 늘 정리가 서툴렀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정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틈틈이 정리를 하려고 한다. 앞으로 잘 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리를 잘해야만 한다. 영정 사진을 서둘러 찍으면 오래 산다는 말이 있다. 영정 사진을 찍는 마음으로 나의 삶과 나의 꿈과 나의 글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0002 함양 방짜징


함양 방짜징 소리를 들은 다음부터 자꾸만 징소리가 들린다. 수천 번의 두드림으로 만든다는 방짜징, 그 아픈  방짜징 소리가 해에서도 들리고 달에서도 들린다. 방정맞고 가벼운 꽹과리  소리가 아니라 깊고도 멀리 가는 방짜징 소리, 징소리가 들린다. 지리산 같은 방짜징 소리가 들린다. 한라산 같은 방짜징 소리가 들린다. 오늘 아침에도 해의 가슴에서 빛의 징소리가 쏟아지더니, 오늘 밤에는 달도 보이지 않는데 달빛 징소리가 쏟아진다. 나의 몸과 마음이 함께 방짜징 소리를 달빛처럼 입는다. 


0003 꿈이냐 삶이냐 


요즘에 다시 꿈을 자주 꾼다

40년 가까이 떠나지 못하는

발전소에서 검은 기름을 흘려

온 세상이 붉게 타오르는 꿈


요즘에는 꿈도 연작으로 꾼다

내가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꿈

꿈속에서는 왜 가능한지 모른다


콩을 갈아서 두부를 만드는데

할머니 한 분이 강가의 바위들을

솔로 박박 이끼를 닦아내고 있다

그러니 강물이 콩물 되어 흐른다


두부가 너무 많아 처치 곤란하다

하였더니 너무 걱정하지 말란다

콩물은 강물이 되어 바다로 간다

바다로 가 파래 청각 미역 다시마

온갖 해초들 키워 목장을 만든다


넓은 초원 목장으로 소풍을 간다

언덕을 굴러가는 풀 더미들 사이

우리도 서로 끌어안고 굴러간다

하늘과 땅이 한 몸 되어 굴러간다


전화벨 소리가 꿈 밖으로 부른다

해운대 바닷가로 또 오라고 한다

이것 또한 꿈속의 꿈인가 삶인가


지리산의 방짜징 소리가 들린다

함양군의 방짜징 소리가 들린다

하늘에서 들리고 땅에서 들린다


코끼리 마늘이 피터팬 모자를 쓴다

팅커벨은 어디 가고 왜 혼자이더냐

다녀오는 동안 집 잘 지키고 있거라


0004 윤동주 시인과 함께 길을 떠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보았던 윤동주 시인은

죽어서 드디어 별이 되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했던

윤동주 시인은 죽어서도

바로 눕지 못하는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죽어서도 땅만 보고

엎어져 있는 사람들을 부른다

윤동주 시인과 함께 나도

이제는 그 아득한 길을 걸어간다

예수 그리스도와 석가모니 부처님과

서불선생과 설문대할망과 마고할미와

죽은 사람들과 함께 살다가,

윤동주 시인과 나는 함께

이어도 문을 열고 나와서 순례길에 나선다

설문대할망의 고향으로 간다

마고할미의 고향으로 간다

윤동주 시인의 고향으로 간다

생명의 숲으로 가는 길을 찾아서

길을 떠난다 한라산으로 간다

지리산으로 간다 백두산으로 간다 북간도로 간다

다시 처음부터 세상을 깊이 읽으며

멀고도 긴 순례를 떠난다

30년도 넘은 유배생활을 마치고

내 삶의 마지막 순례를 떠난다

제주도에서 온 영혼들이 함께 따라나선다

정방폭포에서 온 영혼들이 먼저 따라나선다


0005 누룩뱀과 뻐꾸기와 붉은머리오목눈이와 애벌레


붉은머리오목눈이가 열심히 둥지를 만든다


나무의 껍질을 벗기고 마른 풀잎을 물어온다

질긴 거미줄로 엮어서 튼튼한 둥지를 만든다

붉은머리오목눈이는 푸른 알을 낳아 품는다

잠시 둥지를 비운 사이에 뻐꾸기가 탁란 한다

붉은머리오목눈이는 푸른 알을 함께 품는다

뻐꾸기 새끼가 먼저 태어나 둥지를 차지한다

붉은머리오목눈이는 뻐꾸기 새끼를 키운다

수없이 많은 애벌레들이 뻐꾸기 먹이가 된다

뻐꾸기 새끼는 등으로 알과 새끼를 밀어낸다

둥지 밖으로 떨어지는 알과 새끼가 불쌍하다


누룩뱀이 찾아와 뻐꾸기 새끼를 잡아먹는다

누룩뱀이 찾아와 알들도 모조리 삼켜버린다


둥지를 떠나지 못하는 어미의 눈이 붉어진다


사람은 누룩뱀을 잡고 뻐꾸기는 산에서 울고

연꽃은 꽃잎 떨어뜨리며 연밥의 종을 울린다


0006 윤동주 시인이 나를 읽는다


윤동주 시인을 다시 읽는다
윤동주 시인이 나를 읽는다

윤동주 시인을 읽다가 잠이 들었다. 이제 꿈속에서도 윤동주 시인이 보인다. 눈을 뜨니 방 벽에서도 눈이 보인다. 눈들이 보인다. 윤동주의 눈이 보이고 송몽규의 눈이 보이고 강처중의 눈이 보이고 정병규의 눈이 보인다. 벽에 서있는 나무판자에 눈동자가 많다. 옹이들이 죽으면 저렇게 벽의 눈이 되기도 한다. 아예 눈알이 빠져서 뻥 뚫린 구멍도 있다. 


오늘은 자꾸만 <자화상> 생각이 난다. 나의 자화상을 어떻게 그릴까.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 제목은 처음에는 <외 딴 우물>이었다가 <우물 속의 자화상>이었다가 최종적으로 <자화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나의 자화상은 최종적으로 어떤 자화상으로 남을 수 있을까. 나 자신도 나의 자화상이 궁금해진다. 나는 이렇게 다시 윤동주 시인을 읽는다. 아니, 윤동주 시인이 나를 읽는다. 東柱(동주)와 童舟(동주)와 童柱(동주)가 나를 읽기 시작한다. 우리는 이렇게 다시 만나서 함께 길을 찾는다.


0007 윤동주 시인의 거울을 보니


윤동주 시인의 거울을 보니 내가 보인다

송우혜 선생님의 <윤동주평전>을 읽는다. 윤동주 시인을 만나려면 먼저 간도로 가야만 한다. 간도는 좀 특별한 곳이다. 간도를 한문으로는, 간도(間島)라고 쓰기도 하고 간도(墾島)라고 쓰기도 한다. 청나라는 병자호란 뒤, 간도를  봉금(封禁) 지역으로 정하고 조선 사람이든 청나라 사람이든 아무도 들어가 살 수 없도록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간도라는 지명은 조선과 청나라 사이[間]에 놓인 섬[島]과 같은 땅이라는 데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조선 후기에 우리 농민들이 이 지역에 이주하여 땅을 새로 개간하였다는 뜻에서 ‘간도(墾島)’라고 적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윤동주 시인을 만나려면 사이섬으로 가야 한다. 개간한 섬으로 가야 한다.


"처음엔 두만강 위쪽 땅을 그냥 '간도'라고 했다. 그러나 후에 압록강 이북을 '서간도'라 하면서, 두만강 이북은 '북간도'로 구분해서 불렀다" 윤동주 시인은 북간도에서 태어났다.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났다. 명동촌이 또한 특별한 곳이다. 명동촌은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마을이 아니다. 1899년 2월 18일에 생겨난 마을이라고 한다. "두만강변의 도시인 회령과 종성에 거주하던 네 명의 학자들 가문에 속한 22개 집안 식솔들로 이루어진 총 141명의 이민단이 그날 일제히 고향을 떠나 두만강을 건넜다"라고 한다. 그러니까 북간도 명동촌은 학자들 가문이 두만강을 건너 이국땅에 세운 개척마을이다. 윤동주 시인은 그런 특별한 마을에서 1917년 12월 30일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런데 나는 언제 어디에서 태어났을까? 


0008 몸은 아래로 정신은 하늘로


윤동주 시인의 일생은
몸은 아래로 내려가고 정신은 하늘로 향했다

윤동주 시인은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났다. 명동촌의 명동소학교를 나와 용정의 은진중학교로 진학했다. 평양의 숭실중학교를 거쳐 다시 용정으로 돌아와 광명학원 중학부에 편입했다. 그리고 1938년 4월 9일 드디어 송몽규와 함께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했다. 또한 1942년 4월 2일 동경 입교대학 문학부 영문과에 입학하였고, 같은 해 10월 1일 경도의 경도 동지사대학 영문과로 편입학하였다. 다음 해 1943년 7월 14일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고 1945년 2월 16일 오전 3시 36분에,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윤동주 시인은 특별한 곳에서 태어나 평생 길을 찾다가 떠났다. 평생 공부를 하다가 길을 찾아 떠났다. 나는 어디에서 언제 어떻게 태어났을까? 나는 전남 곡성군 삼기면에서 태어났다.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려고 밤새 나를 찾아 헤매었다. 인터넷으로 주민등록표 초본을 열람하였다. 옛날에 내가 보았던 초본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간편하게 변했다. 초본에는 나의 출생지가 나와 있지 않았다. 나의 주소지 변동사항이 29번까지 기록되어 있었다. 1 전라남도 곡성군 삼기면 원등리 957번지, 1975년 9월 23일 전입...., 나는 그 이전의 나의 행적을 찾고 싶었다. 1번의 주소지는 지금 내 고향집이 있는 주소지였다. 내 기억 속에는 그 고향집 징검다리 건너에 유년시절이 있었다.


0009 어머니의 기억과 아버지의 기억


나는 다시 제적초본을 열람하였다. 출생장소가 전남 곡성군 삼기면 원등리 1099번지로 되어 있었다. 나의 기억과 달랐다. 나는 지금껏 징검다리 건너 월경리 외딴집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 이전에 살았던 월경리 2구, 행정리(행경리)에서 태어나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하였다. 내 무의식적인 기억 속에는 방 벽이 기울어져 있고 방바닥도 수평이 아니고, 천정에서 빗물이 떨어져서 방에 세숫대야를 놓고 밤새 빗물을 받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껏 원등리 1099번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신고일은 1968년 10월 15일로 기록되어 있었다. 신고인은 아버지로 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왜 2년도 더 지나서 출생신고를 하셨을까. 그리고 왜 2월 28일로 출생신고를 하셨을까? 어머니께서는 늘 내가 2월 24일 아침 6시에 태어났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태어나서 아침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제적초본에 기록된 나의 출생지와 나의 기억 속의 출생지를 비교하며 밤새 고향의 길들을 둘러보았다.   


0010 늦게 쓰는 일기


1966년 참꽃 불타는 2월 29일 새벽 두 시

그믐달도 보이지 않았다 하늘의 눈썹이

떨어지고 닭도 울지 않았다 개 한 마리가

어둠 속에서 컴컴한 어둠을 향해

컹컹 짖었다 그리고 나는 울지 않았다

울음 없는 아이로 태어나 누워만 있었다

송아지 울음소리가 걸어 나오는 물소리

가느다랗게 들리고 핑경 같은 별들이

말똥말똥 눈을 뜨고 잠들지 못하는 그 사이로

보이지 않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나는

별무덤을 파헤치고 다시 태어났다

그 자리에 나의 탯줄과 함께 누워있는 어머니

무덤가 어린 쑥 잎에도 향기가 오르고

나는 어머니가 누운 만큼 겨우 일어설 수

있었다 별똥별이 떨어지고 숲이 있는

지상으로 내려왔다 그 지상에

세상은 있었고 내가 태어나면서 같이 태어난

또 다른 세상이 있었다 그러한 아침으로

때 아닌 비가 내리고 담장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0011 생명의 숲으로 가는 길을 찾아서


태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늘도 없었고 땅도 없었고

하느님도 없었고 말씀도 없었다

태초라는 말도 없었다


빛도 없고 어둠도 없는 허공에

아무도 모르는 씨앗 하나 날아왔다

그 작은 씨앗은 스스로 하나님이 되었다


처음은 그렇게 하나로 시작되었다

하나의 껍질을 벗으니 둘이 되었고

둘은 다시 하나가 되어 넷이 되었다


어느 맑은 날 문득 하늘이 생겼다

하늘은 텅 빈 없음이니 없음이

자꾸만 무엇인가를 낳기 시작했다


먼지를 낳고

바람을 낳고

구름을 낳고

어둠을 낳고

별과 달과 지구를 낳고

뜨거운 태양을 낳았다


하나가 둘이 되면서 빛과 어둠이 생겼고

둘이 넷이 되어 동서남북을 낳아 길렀다

그렇게 세상은 생겨나서 팔방으로 퍼졌다


하지만

처음의 세상은 너무나 뜨거웠다


너무 뜨거운 세상에

구름은 물이 되어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물과 흙은 생명을 낳았고

생명들은 물에서 흙으로

흙에서 허공으로 퍼졌다


세상에 태어난 것들은

따뜻함을 중심으로 모였다

손에 손을 잡고 돌기 시작했다

따뜻함은 가득한 사랑이니

사랑은 사랑을 낳아 길렀다

세상은 그렇게 사랑이 되었다


사랑은 시간을 만들고

시간은 인간을 낳았다

인간은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 신들을 낳았다


공간이 만든 신들은 죽고

인간이 만든 돈이 빛났다

신들의 시대는 지나가고

인간의 시대도 지나가고

화폐의 시대도 지나가고

지구는 병이 깊이 들었다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은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떠나거나

메타버스를 타고 가상공간으로

서둘러서 떠나가고 있다


인간이 만든 신은 죽었고

스스로 신에 등극한 돈이

인간들을 지배하는 세상에서

신과 사람과 나무들이 숲을 이루어

옹달샘의 숲이 되어 숲으로 살아간다


0012 도끼와 육철낫


시 한 편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그 시인을 알아야 하고 그 시인이 살았던 시대를 알아야만 한다. 시는 시인이 벗어놓은 옷이며 시대가 벗어놓은 허물이다. 시는 그 시인이 사용했던 도끼이며 그 시대가 사용했던 바늘이다. 시는 어둠을 쪼개주는 도끼이며 눈물주머니를 꿰매주는 바늘이다. 나는 오늘도 도끼를 갈고 있다. 아무리 찾아도 도낏자루가 보이지 않는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도끼를 숫돌에 갈고 있다. 윤동주 시인의 눈물을 발라가며 도끼를 갈아서 바늘을 만들고 있다. 시대의 돌담에 숫돌을 꽂아 넣고 조선낫을 갈 듯 도끼를 갈고 있다.


0013 좋은 시와 좋은 글을 쓰기 위하여


시와 글은 쓰는 때와 장소와 상황에 따라서 그 결이 달라진다. 물론 그 시인의 사상과 의지와 세계관에 따라서 달라지지만 쓰는 순간의 환경에 따라서도 많이 달라진다. 그래서 좋은 시인은 자신의 사상과 의지와 꿈이 잘 반영될 수 있도록 적합한 상황을 스스로 만들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소극적으로 자신의 상황에 맞는 시와 글을 쓸 수도 있지만 적극적인 시인들은 좋은 시와 좋은 글을 쓰기 위하여 때와 장소와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서 좋은 시나 좋은 글을 쓰기도 한다. 자신이 원하는 시와 글을 쓰기 위하여 스스로 감옥에 가기도 하고 스스로 머리를 깎고 절에 들어가기도 한다. 그렇다면  나는 나의 시와 나의 글을 쓰기 위하여 어떤 때와 어떤 장소와 어떤 상황을 만들어야만 할까?


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의 처지와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결국 내 삶의 주인이 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자유를 실천해야만 한다. 아니,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니코스 카잔차키스처럼 영혼이 자유로워야만 한다.


오늘은 어찌 보면 실질적인 임금피크 첫날이다. 앞으로 1년 동안 일주일에 3일 출근을 한다. 나는 일단 화수목 3일 출근하기로 하였다. 그 3일 동안은 화순에서 지낼 예정이다. 나머지 4일은 제주시에서 지낼 예정이다. 아침 7시쯤 아침을 먹고 서귀포시로 간다. 나의 제주 생활은 주로 서쪽에서 이루어진다. 제주시 서쪽 외도와 서귀포시 서쪽 화순에서 이루어진다. 제주도는 크게 제주시와 서귀포시로 나누어지지만 문화적으로 생각하면 서쪽과 동쪽으로 나누어지는 경향이 많이 있는 듯하다. 나는 주로 평화로를 많이 이용하는 서쪽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평화로를 이용하여 한라산을 넘다 보면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날씨가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장마철에는 그 차이가 많은데 주로 남쪽이 흐린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구름들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지나는 경우가 많은데 높은 한라산 봉우리에 걸려서 머무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그래서 제주시 서쪽이 내가 사는 서귀포시 서쪽 화순보다 맑은 날이 많은 듯하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내가 사는 화순은 장마철에 상대적으로 습기가 많아서 곰팡이도 많이 생기는 것 같다. 구름이 한라산에 걸리는 경우도 많지만 상대적으로 낮은 산방산에 걸리는 구름도 많은 것을 자주 목격하곤 한다.


열흘 이상 비워두었던 달문에 풀들이 많이 자랐다. 특히 이맘때 풀이 무섭게 투쟁적으로 잘 자라는데 길도 없어져버렸다. 오늘은 길이라도 풀을 뽑아야만 하겠다. 내가 없는 사이에도 오후 네 시의 꽃이라는 분꽃이 피어나고 연꽃이 피어나고 목백일홍이 피어나고 자귀나무꽃이 피어나고 도라지꽃이 피어나고 붉은 칸나가 피어나고 범부채꽃이 피어나고 아가판서스가 피어나고 호박꽃이 피어나고 오이꽃이 피어나고....,


아, 내가 없는 사이에 복숭아들은 홀로 익어서 곤충과 벌레들의 잔치상이 되었구나. 특히 장수풍뎅이와 흰점박이꽃무지가 복숭아나무를 점령하고 말았구나.  그래도 아직 손을 타지 않은 복숭아도 있어서 나도 좀 맛을 볼 수 있었다. 내일도 모레도 복숭아 몇 개는 더 따서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고맙다. 나에게도 부드럽고 맛 좋은 복숭아를 먹을 수 있도록 남겨주어서 정말 고맙다. 오늘은 점심시간에 나가서 도서관에 들러 책도 빌려왔다.


0014 끊임없이 자신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는  자기 성찰의 시인


제습기에서 물방울이 똑똑 떨어진다. 물먹는 하마가 물방울을 빨아들여서 플라스틱 용기 가득 물을 채운다. 군용 반합 같은 물통 가득 물이 차오른다. 나는 아직도 공기 중의 습기를 빨아들여서 저렇게 많은 물을 수집하는 원리를 잘 모른다. 세상에는 참 신기한 것들이 많다. 우리들이 호흡하는 공기 중에 저렇게 많은 물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참으로 신기하다.


내가 존경하는 권영민 교수님의 우리 시 깊이 읽기를 읽는다. 권영민 교수님께서 미국 버클리대학교 외국인 학생들에게 가르쳤다는 시들을 읽는다. 윤동주 시인의 대표작으로 여섯 편을 소개하고 있다. 쉽게 쓰여진 시, 길, 십자가, 또 다른 고향, 별 헤는 밤, 간 등이다. 내가 좋아하는 서시와 병원과 반딧불 등이 없어서 좀 아쉽기는 하지만 나름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윤동주 시인의 모든 시와 모든 산문을 소개하고 싶다.


윤동주 시인  관련 책으로 가장 의미 있는 책은 아무래도 <사진판 자필 시고전집>과 <윤동주 평전>과 <처럼, 시로 만나는 윤동주>와 <정본 윤동주 전집> 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중에서 <처럼, 시로 만나는 윤동주>는 시의 일부분들만 실어서 좀 아쉽다. 책이 좀 두꺼워지더라도 시의 전문을 실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혼자서 생각을 한다.


나는 이런 의미 있는 책들과 조금 결이 다른 윤동주 관련 책을 쓰고 싶다. 인터넷의 발전과 정보통신의 발달로 인하여 정보의 홍수 시대가 되었다. 이런 시대에 나는 윤동주라는 거울 하나 들고 촛불 하나 들고 좀 더 의미 있는 길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책으로 쓰고 싶다. 시인은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수공업자일 수밖에 없으며 끝까지 홀로 갈 수밖에 없는 고독하고 외로운 길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윤동주 시인처럼 다정한 시인과 함께 동행할 수 있으면 그 외롭고 쓸쓸하고 고독하고 높은 길이라도 끝까지 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카메라의 등장으로  구상화가 추상화로 발전하였듯이 우리들의 시와 소설 또한 좀 더 깊은 내면을 팀구구하기 위해서 더 깊고 아득한 내면 속으로 걸어서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 또한 자명할 것이다. 우리는 깨달아야만 한다. 우리 인간들을 가장 많이 죽인 것은 바로 모기라고 사실을 알라야만 한다. 한없이 약해 보이지만 그렇게 약한 존재인 모기가 우리 인간들을 가장 많은 죽음 속으로 인도했다는 사실을 똑똑히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오늘 밤에도 모기들이 많이 침투했다. 모기퇴치기의 푸른색 불빛이 엄지손톱으로 톡톡톡 이를 잡듯이 모기를 터트린다. 순간적으로 고압의 전기를 먹어버린 모기들이 기절을 하거나 타서 죽는다.


0015 아침에 풀을 뽑으며


오전 9시부터 비가 온다기에 6시부터 길을 점령한 풀을 뽑는다. 장마 때문에 뽑힌 풀들도 새로운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만 나의 죄책감도 덜어질 수 있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나의 길을 차지해 버린 풀들과 아침부터 타협을 한다. 아니다. 내 입장에서 타협이라 말하고 싶지만 엄연히 일방적인 나의 폭력이다. 풀에게 길 밖에서 살아가라고 풀을 뽑아 길 밖으로 옮겨준다.


여뀌풀꽃 강아지풀 분꽃 사위질빵 닭의장풀 토끼풀 엉겅퀴 씀바귀 왕고들빼기 야생팥 환삼덩굴 그리고 청려장을 만드는 명아주풀과 원추리꽃까지 뽑아서 길 밖으로 옮겨준다. 아욱메풀도 앉은뱅이 풀들도 살짝 옮겨준다.


수국꽃도 시들고 코끼리마늘꽃도 시들고 나리꽃도 시들고 토란꽃도 시들고 방풍꽃도 시들고 장마철에도 이렇게 시드는 꽃들이 많다. 수국꽃이 다 시들면 장마도 물러날 것이다. 


9시쯤 비가 올 줄 알았는데 7시 30분부터 비가 오기 시작한다. 비를 맞으며 풀을 뽑는다. 뿌리가 다치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하면서 풀을 뽑아서 길가로 옮겨놓는다. 최소한 며칠은 비가 올 것만 같다. 길 밖에서 뿌리를 잘 내리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는 샤워를 하고 아침을 먹는다. 뽕잎과 호박잎과 깻잎과 왕고들빼기 잎을 따서 아침을 싸 먹는다. 온몸이 투명해질 때까지 뽕잎을 먹는다. 누애처럼 뽕잎을 먹고 투명해지기를 바란다. 하늘을 우러러 잠을 자는 누애처럼, 한 잠 두 잠 세 잠 네 잠, 다섯 살이 되어 완전히 투명한 몸이 되리라. 그리하여 자신만의 고치 속에서 새롭게 부활하리라. 그렇게 나는 허물을 벗기 위하여 새로 돋아나는 뽕잎을 갉아먹고 가볍게 출근을 한다.


0016 부관참시 집행관이었다


나는 발전소에서 부관참시 집행관이었다

죄 없이 죽어간 나무 조상들을 

무덤에서 꺼내어 화형에 처하고 말았다

죄 없이 죽어간 오랜 조상들의 잠을 깨우고

급기야는 보일러 속에서 화형을 시켜버린

나는 용서받지 못할 부관참시 집행관이었다

석탄과 석유는 나무들의 먼 조상님이었다

오늘 밤에도 똑똑히 지켜보았던 별들이 운다



https://v.daum.net/v/20240711070115732


‘운주사 석불석탑군’ 유네스코 세계유산 우선등재목록 신청

운주사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불상 중 하나인 와불은 산기슭에 누워있는 불상으로 길이만 12m에 이른다. 이 와불이 일어서는 날 세상이 개벽한다는 전설이 있다. 2024.7.4 /김영근 기자

전남 화순군이 오는 10월 국가유산청에 ‘운주사 석불석탑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우선등재목록으로 신청할 계획이다.

화순군 도암면에 위치한 운주사(雲珠寺)는 일명 ‘천불천탑’으로 불리며, 다양한 석탑과 성불상이 밀집한 독특한 사찰이다.

신라 말 도선국사가 세운 것으로 알려진 이 사찰에는 9층 석탑(보물 제796호), 석조불감(보물 제797호), 원형다층석탑(보물 제798호), 와불 등 총 108기의 석불과 21기의 석탑이 있다.

특히 운주사의 대표적인 불상인 와불(와형석조여래불)은 길이 12m의 누운 형태의 불상으로, 그 규모와 독특함이 방문객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또한, 거대한 북두칠성 모양을 한 ‘철성석’은 국내 유일의 별자리 거석이다.

운주사는 그 문화적, 종교적 보존 가치를 높이 평가받고 있으며, 이를 인정받고자 지난달 화순군청에서 한국, 일본, 태국, 파키스탄 등 여러 나라의 학자들이 참여한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이 학술대회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학문적 토대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화순군은 2025년 상반기에 유네스코에 세계유산 등재 신청서를 정식으로 제출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운주사의 독특한 문화유산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보존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원형다층석탑(보물 제798호), 석조불감 (보물 제797호), 칠 층 석탑. 2024.7.4 /김영근 기자

'석불군 가'. 운주사 입구 9층석탑의 동쪽에 있다. 수직 단애면에 대좌를 마련하고 그 위에 불상을 모셨다. 2024.7.4 /김영근 기자

'석불군 바' 서쪽 산기슭에 있는 와불로 가는 길 중간 암벽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2024.7.4 /김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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