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鳶)
멀리 날아가 버리고 싶었다 보리논에서
솟아오르곤 했다 하늘을 들이받으며 뻑뻑하게
거슬러 올랐다 구름의 층계를 밟아
걸어도 길은 보이지 않았다 그 길 위에
비스듬히 떠오르는 집을 짓기 시작했다 더 높이
이마에 별을 달고 떠 있는 방패연이
부러웠다 꼬리를 잘라 버린 마음으로
떳떳한 어깨는 떵떵거리고 있었다
나는 꼬리 끝까지
온몸으로 흔들리는 그리움으로
기어오르고 싶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단단하게 끈을 감았다 거센 바람이
내 몸에 몰아쳤다 얼레가 정신없이 헛돌아
풀렸고 끈을 묶은 아버지 허리가
부서져 내렸다 너무 먼 곳에서 다시 내려다보았다
비틀거리다 넘어지는 겨울 허수아비가
꿈속으로 보였다 연실을 타고 올라온 소식
침 발라 붙인 편지가 아버지 목숨처럼 떨어졌다
나는 끈을 따라 내려가 음복 같은 바람에
취한 몸으로 땅에 깊이 엎드려야만 했다
끝내 나는 그렇게 겨울 밖으로 날아가지 못했다
저의 기억은 징검다리 건너 외단집에서부터 출발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전에 살았던 ‘행경’이란 마을에서, 아주 작은 정미소를 할 때 태어났다고 들었습니다. 원등리 2구에 있었던 좀 큰 정미소에서 망하고,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아주 작은 정미소를 하였는데, 바로 그때 제가 태어났다고 들었습니다.
아버지가 너무 순진하여 다 썩은 정미소를 인수하는 바람에 그야말로 완전히 거지가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께서는 늘 그 방앗간을 소개해주신 김** 아재를 원망하셨습니다. 중간에서 돈도 많이 떼어먹고 또 발동기가 고장 나면 고쳐준다면서 또다시 속이기를 반복했다며 평생 원망을 하시며 사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행경에서의 생활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제가 좀 자란 다음에 혹시 기억이 날까 싶어서 가끔 행경리에 가 보았으나 그때는 이미 방앗간도 없어져서 보이지 않았고 저의 잃어버린 기억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가끔 꿈처럼 보이는 모습이 있습니다. 벽도 반듯하지 못한 아주 작은 방에서, 비스듬한 방바닥에 세숫대야를 놓고 빗물을 받는 모습인데 혹시, 제가 아주 어렸을 때 보았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하곤 합니다.)
저는 겨울에는 주로 연날리기와 썰매 타기와 팽이치기를 많이 하였습니다. 그중에서 연날리기는 제 꿈의 비상이기도 하였습니다. 하늘 높이 날고 싶은 제 마음의 모습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제 꿈은 현실의 벽들 때문에 그렇게 높이 날지는 못했습니다. 제 꿈은 높이 높이 날아오르는 방패연이 되지 못했습니다. 방패연은 꼬리가 없어도 균형을 잘 잡고 하늘 높이 오를 수 있었습니다. 방패연에는 가운데 구멍이 뚫려있고 대나무 살도 튼튼하고 연실을 묶는 방법부터 달랐습니다. 그에 비하여 가오리연은 만들기는 간단하고 쉬웠지만 그렇게 높이 날지는 못했습니다.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만들어진 가오리연은 대나무살 두 개로 만들 수 있는데 균형 잡기가 어려워서 길게 꼬리를 달아야만 겨우 균형을 잡으면서 날아오를 수 있었습니다. 저의 처지는 당당하고 멋진 방패연이 되지 못하고 겨우 가오리 연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방패연을 만들기 위해서는 문종이도 커야 하고 대나무도 많이 있어야만 했습니다. 저는 겨우 대나무 두 개만 있어도 만들 수 있는 가오리연을 만들어서 하늘로 날려 보내야만 했습니다. 가오리연은 연실도 묶는 방법이 간단했습니다. 그냥 위와 아래쪽 두 줄만 묶어주면 되었습니다. 그렇게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대신에 스스로 균형을 잡을 수 없기 때문에 꼬리를 길게 달아주어야만 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이아몬드 연이 되지 못하고 꼬리가 긴 가오리 연일 수밖에 없습니다. 꼬리를 길게 만들어주지 않으면 자꾸만 하늘에서 뱅글뱅글 돌다가 논 바닥으로 쏜살같이 꼬꾸라져 내려와서 그냥 사정없이 코를 땅에 들이받으면서 연이 박살 나고 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꼬리를 잘 만들어주어도 바람에 꼬리가 떨어져도 연은 자꾸만 그렇게 땅에 머리를 처박고 박살 나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연실에 유리가루를 입혀서 연싸움을 하기도 하는데 저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겨우 연실에 편지를 올려 보내는 놀이만 할 수 있었습니다. 연 편지는 얼레가 있는 쪽 연실에서부터 연이 있는 하늘까지 편지를 보내는 놀이입니다. 작은 종이에 작은 구멍을 내서 연실에 걸고 양쪽 끝을 침이나 풀로 발라서 입으로 후 불어주면 연실을 타고 올라가는 놀이인데 잘 붙는 풀로 바르지 않고 침으로 바르면 연이 있는 높은 곳까지 가지 못하고 중간에 떨어져서 날아가버리고 잘 붙는 풀로 붙여서 잘 보내면 연이 있는 높은 곳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연이 있는 높은 하늘까지 편지가 도착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곤 하였습니다.
우리 집의 가장 큰 문제는 아버지에게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젊은 시절에 방앗간을 하시다가 천정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크게 다치셨습니다. 그 후유증으로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방앗간까지 망하는 바람에 화병까지 생겨서 모든 희망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그 후로 늘 아랫목에 누워 계셨습니다. 그렇게 누워서도 술을 얼마나 잘 드시던지 저녁 무렵이 되면 태양은 언제나 아버지 얼굴로 져서 붉게 취하셨습니다. 그렇게 취하신 아버지는 정신을 잃고 부엌칼을 들고 어머니와 자식들을 죽이겠다며 날뛰는, 광견병 걸린 개가 되었습니다. 주로 어머니를 상대로 트집을 잡아서 괴롭히셨는데 특히 제가 어머니 편을 많이 들어서 저와 어머니는 밤새 도망을 다녀야만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아침에 술에서 깨어나시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고 또다시 그렇게 아침부터 조금씩 술을 마시다 보면 저녁에 다시 취하시곤 하였습니다.
그렇게 아버지는 가장 역할을 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야말로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대신해서 어머니께서 가장 노릇을 해야만 했는데 궁여지책으로 보따리 장사, 즉 도붓장사를 하셔서 그나마 겨우 먹고살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술 때문에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는 모습을 보면서 자란 저는 절대로 술을 먹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였습니다. 또한 아픈 아버지 때문에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저 자신이 또한 아픈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에는 또 다른 누군가를 어머니처럼 고생시켜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결혼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였습니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쓴 시가 바로 이 연이라는 시입니다. 이 연이란 시 때문에 상패를 받으려고 숙명여대에 갔던 기억도 새삼스럽게 납니다. 그렇게 저는 여대에 처음으로 가 보았던 추억도 있습니다. 이렇게 불안하게 날아오른 가오리연(鳶)은 나중에는 연꽃의 연(蓮)으로 피어나고 세월이 지나고 즉 연(年)이 지나니 그 연꽃의 연(蓮)은 연의 향기로 인하여 인연의 연(緣)으로 발전하는 저의 시에 관한 '연'을 만나 보실 수 있을 것을 저는 믿습니다.
문학평론가 이경호 선생님께서 이렇게 평을 해주셨는데, 저의 첫 시집이 나오고, 지금은 소설을 쓰고 계시는 김훈 작가님께서 그때 한국일보에 크게, 신문 절반 정도의 지면을 할애해서 소개를 해 주셨는데, 이경호 선생님과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늘 마음에 새기고 시를 쓰는데 길잡이로 삼고 있습니다. 그때는 김훈 선생님께서 한국일보에 계셨는데 지금껏 인사를 드리지 못해서 늘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돌무덤을 기웃거린다
수탉이 이제
완전히 장닭이 되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날씨도 추운데
고생할 것이다
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을
이토록 어렵게 만드는 것일까
왜 이토록 고생시키는 것일까
지금이라도
대통령께서
백남기 선생님
병문안 가시어
진심으로 사과하고
적절한 후속 조치를 취한다면
오늘의 사태도 잘 마무리되련만....
왜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선거철에만 고개를 숙이는 것일까
아무쪼록
많은 시민들도
많은 경찰들도
추위에 무탈하시길 소망합니다
강아지도 걱정이 되는지
자꾸만 서성거리고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언젠가 다 죽을 것인데
좀 더 정답고 아름답게 살 수는 없을까
겨울 아침 인사
이어도공화국
12월 4일 아침
화순항이 수상하다
산방산 아래
화순항이 수상하다
은밀하게
밤낮으로
내가 알 수 없는
어떤 불순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제가 고향 친구에게 메밀밭 사진을 보냈는데, 제주도에도 메밀밭이 있느냐며 물었습니다. 사실, 메밀 최대 생산지가 바로 제주도인데 너무나 홍보가 되지 않을 것 같아서, 이번 기회에 제주 메밀에 대하여 좀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제주 메밀
제주도에서는 메밀을 1년에 두 번 수확한다. 보통 4월에 뿌려 6월에 걷고, 8월에 뿌려 11월에 걷는다. 제주도에서 메밀꽃이 절정을 맞이하는 때는 5월 말과 10월 초라고 할 수 있다. 이 무렵 제주도 중산간에서는 흔히 메밀꽃들이 흐드러진 메밀꽃밭을 볼 수 있다. 나는 그동안 메밀꽃만 보고 메밀은 자세히 보지 못했다. 내가 좋아하는 빙떡을 먹으면서도 제주도의 메밀에 대하여는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우연한 기회에 산록도로를 가다가 넓은 메밀밭과 함께 있는 제주 메밀 식당과 제주 메밀 카페를 만나서 들어갔다. 제주 메밀 체험관도 함께 있다고 하였다. 점심을 한참 동안 기다린 후에 제주메밀비비작작으로 먹고 메밀가루도 한 봉지 샀다. 기다리는 동안 넓은 메밀밭에 만들어놓은 산책길을 걷고 포토존에서 사진도 찍으며 재미있게 놀았다. 메밀꽃은 멀리서 보면 소금처럼 혹은 눈송이처럼 희게 보인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그냥 흰색만은 아니다. 심지어 온몸이 붉은 메밀꽃도 있었다. 사람들도 그렇듯이 가까이서 자세히 보아야 제대로 알 수 있다.
일곱 걸음 간격으로 나란히 서 있는 그 식당과 카페는 광평리의 마을기업이라고 하였다. 제주도에는 그런 마을 기업들이 많다. 가까운 서광리에도 그런 마을기업인 식당과 카페가 나란히 있다. 서광리에는 서광 곶자왈에서 마을 사람들이 따서 만든 산동 열매를 활용한 음식들이 유명한데 이곳 광평리에는 메밀을 특화한 식당과 카페였다. 특히 광평에는 넓은 메밀밭이 함께 있어서 더욱 좋았다. 그리고 무료로 나누어주는 <제주에서 만난 메밀의 맛 20, 제주 메밀 레시피북>은 나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때문일까, '봉평메밀국수' 때문일까. 사람들은 메밀 하면 강원도를 흔히 떠올린다. 하지만 우리나라 메밀 최대 생산지는 제주도라고 한다. 제주도의 메밀 재배 면적은 전국의 43%를 차지하며, 해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때로는 거의 절반에 가까운 메밀이 제주도에서 생산된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봉평에서 유통되는 메밀은 제주에서 생산된 상당수가 강원도로 건너가서 가공된 것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좀 더 알아보니 그동안 제주에는 메밀 가공 공장이 없어서 생산량 대부분을 강원도 등 외지로 보내왔다고 한다. 제주도에 메밀 가공 공장이 생긴 것은 최근의 일이라고 한다.
메밀은 제주도의 신화에도 등장하는 곡식이다. 제주의 농경신 자청비는 하늘나라에서 씨앗을 받아왔다. 쌀과 보리와 조와 콩과 기장을 받아와서 심었는데 메밀이 빠져 있었다. 그래서 자청비는 하늘나라에 다시 올라가서 메밀 씨앗을 되찾아왔다. 다른 작물보다 늦게 파종하지만 다른 작물과 함께 수확하는 메밀의 특징을 묘사한 이 이야기는 자청비 신화 '세경본풀이'의 대미를 장식한다. 또한 농경신 자청비는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한다. 먼저 자란 곡식이 다 떨어져 먹을 것이 없게 되면 배가 고프니 그때 메밀밭에 가서 환하게 핀 하얀 꽃(메밀꽃)을 보면 배고플 일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을 했다고 한다.
제주도는 이제 나에게 메밀의 고향으로 기억될 것 같다. 쌀이 귀했던 제주도에서 제주도 사람들이 메밀로 만들어 먹은 빙떡과 돌레떡, 꿩메밀칼국수와 메밀묵, 그리고 메밀가루를 덧보태는 몸국과 고사리육개장 등 여러 향토요리가 메밀의 고향임을 반증하고 있다. 메밀가루와 메밀쌀로 만들 수 있는 메밀음식 20가지를 알려주는 이 작은 책이 참 좋다. 제주 사람들과 생사고락을 나누며, 그들의 삶과 지혜를 품어 온 제주 메밀 이야기가 참 좋다. 전통요리부터 퓨전요리까지 어떠한 요리 장르도 찰떡같이 소화해내는 제주 메밀과 함께 풍성하고 질박한 제주의 맛과 멋을 경험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메밀 줄기의 높이는 보통 60∼90cm 정도 된다고 한다. 줄기 속은 비어 있다고 한다. 뿌리는 천근성이나 원뿌리는 보통 90∼120cm에 달하여 가뭄에 강하다고 한다. 그러니까 겉으로 보이는 부분보다 보이지 않는 땅 속의 뿌리가 더 깊이 뻗어 있다는 말이다. 생명력이 강한 제주도 사람들을 참 많이도 닮아 있다.
옛 선조들은 메밀을 ‘오방지영물(五方之靈物)’이라 부르며 신성하게 여겼다. 푸른 잎, 붉은 줄기, 흰 꽃, 검은 열매, 노란 뿌리 등 오색을 갖춘 신비한 영물이라는 것이다. 선조들의 표현처럼 메밀은 버릴 게 하나도 없다. 주로 열매를 먹지만 열매뿐 아니라 식물체의 모든 부분에 좋은 성분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잎은 차나 채소로, 꽃은 밀원으로, 열매의 껍질은 베갯속으로 쓰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메밀에 들어 있는 대표적인 좋은 성분은 항산화물질인 ‘루틴’이다. 메밀에서 처음 확인된 루틴은 비타민 P의 일종으로, 모세혈관 벽을 튼튼하게 하고 혈관의 투과성을 조절해 준다. 고혈압·고지혈증·동맥경화·당뇨·암 등 성인병의 예방과 치료에 효과적이며, 신부전증 등 신장 관련 질환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 실제로 고혈압 환자 60명에게 6주간 메밀 추출액을 섭취하게 했더니 혈압과 혈당이 떨어졌다는 국내 연구결과가 있다.
나는 메밀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제주 메밀을 되살리기 위하여 제주 메밀 육성사업단, 제주 메밀 영농조합법인, 한라산 아래 첫 마을영농조합법인이 앞장서고 있는 듯하다. 제주도의 중산간은 대부분 골프장이 들어서 있다. 큰 자본을 앞세우고 들어와 한라산을 유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중산간 마을에는 이제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떠나고 노인들만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농업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농업으로 살아남으려는 그들의 노력이 참으로 아름답다. 우리들을 먹여 살리는 농업과 임업은 그 무엇보다도 아름답다. 줄기보다 뿌리가 더 깊고 멀리 뻗어있다는 메밀, 그런 메밀보다 더욱 강인한 제주 사람들이 있어서 나는 그래도 안심이 된다.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메밀 생산량으로도 1위이고 메밀 생산면적으로 1위를 차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메밀 사업을 활성화하지 못했다. 척박한 제주 토양의 대표 구황작물로서 제주인의 삶과 더불어 신화적, 역사적, 생활적 유례를 갖고 있지만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제주 메밀을 소개하기 위해 2015년 제주 메밀 발전 5개년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이후 제주 메밀 육성사업단은 성산읍 난산리에 메밀 수확 및 원물 가공 공장, 안덕면 광평리에 메밀 제품 생산 공장을 설립했다. 난산리 공장은 '제주 메밀 영농조합'이, 광평리 공장은 '한라산 아래 첫 마을'이 운영한다. 광평리에 개관한 '제주 메밀 체험관'에서는 빙떡과 같은 향토음식 외에 메밀가루를 이용한 베이킹 등 직접 만들고 맛볼 수 있다. 두 곳 업체가 수확과 생산을 마치면, 제주 메밀 육성사업단이 다른 지역 음식 박람회 등에 참가해서 적극적으로 알리고 관련 워크숍과 강의를 갖는다고 한다.
우리들의 농업을 살리려는 제주도 당국과 늙어가는 고향 마을을 살리려는 마을 주민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참으로 아름답다. 이번에 내가 방문한 제주 메밀 식당과 제주 메밀 카페는 '한라산 아래 첫 마을'영농조합에서 운영하는 곳이었다. 산록도로를 지척에 둔 광평리는 해발 500 ~ 600m 지점에 자리한 중산간 마을이다. 봄과 가을, 메밀꽃이 만개하는 시기에는 광활한 평지라는 동네 이름에 걸맞게 너른 들판 가득 메밀꽃으로 뒤덮인다. 2015년 5월 마을 만들기 사업을 시행하면서 영농조합법인을 만들고, 광평리 마을 주민 12명을 조합원으로 하는 '한라산 아래 첫 마을'이 문을 열었다. 현재 메밀 생산 시설인 석발기, 선별기, 클리너, 탈피기, 제분기 등 다섯 가지 설비를 갖추고 하루 최대 500kg의 메밀을 생산한다. 광평리는 메밀 마을 공동체를 꿈꾸며 '제주 메밀 체험관'을 개관했다. 메밀 생산 공정 체험은 물론이고 음식 체험 등 제주 메밀에 관한 풍성한 프로그램을 더불어 진행하고 있다.
제주 메밀을 다시 본다. 큰 하트 모양의 푸른 잎이 하늘을 떠받들고 있다. 그 위에 흰 꽃들이 소곤소곤 귓속말을 하고 있다. 흰 옷에는 아직도 붉은 피가 묻어 있다. 흰 옷을 들춰보면 붉은 줄기가 뼈처럼 있다. 곧 검은 열매가 열릴 것을 나는 믿는다. 하트 모양의 작은 열매들이 열릴 것을 나는 믿는다. 대동맥 판막처럼 세 장의 하트가 모여 삼각뿔의 검은 하트를 만들 것을 나는 믿는다. 그 검은 열매의 겉껍질을 벗기면 그 안에 하얀 메밀쌀이 들어있을 것이다. 저승사자의 검은 옷을 벗으면 메밀꽃처럼 하얀 메밀의 마음이 드러날 것이다. 그런 하얀 마음으로 만든 메밀을 먹는다. 새하얀 빙떡을 먹고 제주 메밀 비비작작면을 먹는다. 바로 곁에 무섭게 들어선 골프장에서 날아온 골프공도 메밀밭으로 사라지고 골프장 잔디밭에도 메밀꽃들이 하얗게 다시 피어날 것만 같다. 한라산 아래 첫 동네 사람들처럼 종석산의 사람들이 메밀꽃처럼 아른거리고 산삼 꽃과 산약초 꽃들이 환하게 어우러지고 있는 모습을 황영처럼 본다. 열매가 다시 의미 있는 씨앗이 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야만 할까를 다시 한번 생각한다.
빙떡
내가 좋아하는 음식 중에 빙떡이 있다.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참 좋다. 자극적이지 않고 무덤덤한 맛이 참 좋다. 꼭 물맛처럼 맛이 없는 듯 깊은 맛이 있어서 나는 참 좋아한다. 그런데 이 빙떡이란 놈을 떡이라고 불러야 할지, 전이라고 불러야 할지, 전병이라고 불러야 할지, 아니면 만두라고 불러야 할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떡 같기도 하고 전 같기도 하고 전병 같기도 하고 만두 같기도 하다.
빙떡이란 이름은 떡 ‘병(餠)’이 ‘빙’으로 변하면서 유래했다는 설 외에 반죽을 국자로 빙빙 돌리면서 부친다, 혹은 빙빙 말아서 먹는 모양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차게 두고 먹어도 맛있다고 해서 빙떡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빙떡은 제주도에서 이웃이나 친족에게 대소사가 생겼을 때 선물하고 먹었던 축하와 위로의 음식이라고 한다. 제주도 내에서도 지역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고 한다. 남원에서는 모양새가 멍석 같아서 ‘멍석 떡’이라고 한다. 서귀포에서는 전기 떡(쟁기 떡)이라고 한다. ‘홀아비 떡’ 혹은 ‘홀아비 떡’으로 불리기도 한다. 열량이 낮고 단백질과 지방 등 영양소가 충분하다고 한다. 소를 달리하면 훨씬 다양한 종류로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소로 김치를 넣는 강원도 메밀총떡이나 프랑스식 전병인 갈레트도 있다고 한다. 겉모습은 강원지역의 총떡(메밀전병)과도 닮았다. 그러나 빙떡에는 주로 무만 넣는 데 반해 총떡에는 무뿐만 아니라 김치와 양념한 돼지고기·오징어 등이 들어간다고 한다. 나에게는 어쩐지 오리지널 제주 빙떡이 더 잘 맞을 것만 같다. 병원에서 수술을 받을 때 오래도록 저염식을 먹었는데 제주 빙떡은 환자들의 저염식 음식으로도 제격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금 없이도 이렇게 맛있고 고소한 음식은 드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나는 더 궁금해서 '빙'이라는 글자를 검색해 보았다. 약간 넓은 일정한 범위를 한 바퀴 도는 모양, 갑자기 정신이 어찔하여지는 모양, 일정한 둘레를 넓게 둘러싸는 모양, 한 바퀴 도는 모양, 둘러싼 모양, 등으로 검색이 된다. '빙'은 참 재미있는 부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빙떡은 빙빙이 핵심이다. ‘병(餠)’이 ‘빙’으로 변했다는 말도 재미있는 유추다. 제주도 사람들은 아마도 이 음식을 떡이라고 고집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축하와 위로의 음식으로는 전보다는 떡이 더 잘 어울리므로 떡을 강조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얼마나 떡을 강조하고 싶었으면 병 떡 즉 떡(병) 떡이라고 하였겠는가?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에서 가장 많은 메밀이 생산되는 곳은 제주도라고 한다. 예로부터 제주도 사람들은 메밀을 다양한 음식에 이용했는데, 특히 메밀가루로 만든 ‘빙떡’이 유명하다. 갈칫국·옥돔구이 등과 함께 제주도를 대표하는 ‘향토음식 7선’에 선정된 빙떡은 메밀가루로 얇게 전을 부치고 그 안에 채를 썰어 데쳐낸 무를 넣은 음식이다. 빙떡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메밀가루로 최대한 얇게 전을 부친다는 것이다. 빙떡을 잘 만드는 사람이 만든 빙떡은 속에 들어있는 무가 훤하게 보일 정도로 얇게 잘 부친다. 밀로 만든 밀가루보다 점성이 낮은 메밀로 어떻게 그렇게 얇게 잘 부치는지 참으로 신기하다.
빙떡을 처음 먹기 시작한 때는 제주도에 메밀이 들어온 700여 년 전으로 추정된다. 당시 탐라(제주도의 옛 지명)는 원나라의 지배 아래에 있었다. 속설에 따르면 탐라를 못마땅하게 여긴 원나라의 관료가 제주 사람들을 골탕 먹이기 위해 소화가 안 되고 독성이 있는 작물로 알려진 메밀을 전해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탐라 사람들이 메밀로 빙떡을 만들어 먹으면서 원나라의 계략은 수포로 돌아갔다고 한다. 메밀을 가루로 만든 다음 소화효소가 풍부한 무와 함께 조리를 해서 먹으니 아무런 탈이 없었던 것이다.
빙떡의 조리법은 간단하다. 우선 메밀가루에 미지근한 물을 섞어 반죽한다. 무는 채 썰어서 뜨거운 물에 살짝 익힌 뒤, 송송 썬 실파와 함께 참기름·소금·참깨를 넣고 버무린다. 이후 달군 팬에 기름을 두르고 메밀 반죽을 국자로 빙빙 돌리면서 얇고 넓게 전을 부친다. 양념한 무채를 전의 한쪽에 가지런히 얹어서 돌돌 말고서 가장자리를 손으로 꾹 눌러주면 ‘빙떡’이 완성된다.
* 무소 만들기
1 무는 결대로 채 썰고, 쪽파는 0.5cm 길이로 송송 썰어 준비한다.
2 끓는 물에 무를 넣고 4~5분간 데친다.
3 무가 익으면 건져서 물기를 짠다. 소금, 참기름, 참깨, 쪽파를 넣어 버무리고, 간한다.
* 전병 만들기
1 메밀가루와 소금은 체로 친다. 여기에 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묽게 갠다. 메밀가루와 물은 1:1.4 또는 1:1.5 비율로 한다.
2 달군 팬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키친타월로 닦아 기름기가 거의 남아 있지 않도록 만든 다음 메밀반죽을 국자로 떠서 얇게 두른다. 전병을 부칠 땐 타지 않게 약불로 조절한다. 반죽이 익으면 가장자리가 들리는데, 그때 뒤집어서 1~2분 더 익힌다.
3 메밀전병을 한 김 식힌 후 무소를 넣고 돌돌 만다.
4 무소가 빠져나오지 않도록 양 끝을 꾹 누른다.
빙떡의 맛은 사실 처음 먹어본 사람은 잘 느낄 수 없다고 한다.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간이 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번 먹고 나면 심심하지만 고소한 그 맛에 푹 빠져든다. 또한 열량은 낮지만 단백질·지방 등 영양소는 충분해 웰빙음식으로도 손색이 없다. 제주에서 빙떡을 맛보려면 제주시내 재래시장인 동문시장 등을 찾으면 된다. 하지만 누구라도 만들기 쉬운 음식이므로 집에서 직접 만들어서 먹어보길 권한다
제주도는 그동안 메밀 생산량이 많았음에도 가공 공장이 없어서 메밀을 산업화할 수 없었다. 메밀을 강원도에 빼앗긴 느낌이 강하다. 지금은 강원도가 메밀의 본고장으로 알려져 있는 실정이다. 메밀의 ‘본고장’으로 불리는 봉평장에는 메밀 막국수뿐만 아니라 메밀 부치기와 메밀 전병이 유명하다고 한다. 봉평장 아주머니들의 현란한 손놀림이 볼만 하다고 한다. 까만 번철 위에 메밀반죽을 붓질하듯 슥슥 문지른 뒤 절인 배추를 올려 홱 뒤집으니 ‘메밀 부치기’가 완성된다. 종잇장처럼 얇고 부드러운 메밀 부치기는 심심하고 담백하다. 메밀전에 김치·두부·당면 등을 섞은 소를 넣고 총대처럼 돌돌 말아 ‘총떡’이라 부르는 메밀전병은 매콤한 맛이라고 한다. ‘메밀 막걸리’와 잘 어울리는 음식이라고 한다. 그에 비하여 제주도의 빙떡은 그냥 먹어도 참 맛이 좋다. 시원하고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은근히 사람들의 유혹한다. 나는 지금도 그 맛에 푹 빠져 있다.
메밀은 예로부터 국수·부침 등에 밀가루 대신 활용돼왔으나 한국전쟁 이후 밀가루가 대량 수입되면서 침체기를 맞았다. 그러다 1990년대 들어 ‘웰빙바람’을 타고 건강식품으로 다시 떠오른 것이다. 그 기회를 강원도가 선점한 것이다. 제주도는 2015년에야 비로소 메밀의 가능성에 눈을 떴다. 하지만 제주도만의 독특한 메밀 음식이 있으니 강원도와 차별화한다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것이다. 제주도 메밀과 강원도 메밀이 함께 발전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메밀을 모밀이라고도 하는데 참 재미있다. 세모 모양의 메밀을 두고 ‘모가 난 밀’이라 부르다 ‘모밀’ ‘메밀’로 변했다는 설이 있다. 그러니까 산에서 나는 밀이 메밀이고 모가 난 밀이 모밀이 아닐까 나 혼자서 생각하고 픽 웃는다.
나도 이제 한 번 빙떡을 직접 만들어서 먹어보아야겠다. 시장에서 전문적으로 만들어서 파는 할머니는 프라이팬에서 직접 소를 넣고 말아서 만들기도 한다. 그러면 좀 손이 뜨거울 것 같으니 전을 먼저 부친 다음에 불판 밖에서 무소를 넣고 말아 보아야겠다. 나는 어쩐지 빙떡이란 말보다 멍석말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메밀 멍석말이는 여름에 먹어도 좋지만 겨울에 먹어도 좋을 것 같다. 냉면을 여름에도 먹고 겨울에도 먹듯이 그렇게 한 번 만들어서 먹어보아야겠다. 나는 지금껏 나를 너무 소홀하게 대했다는 생각이 든다. 잘 산다는 것은 잘 먹고 잘 쉬고 잘 움직이는 것인데 나는 그동안 그러지 못한 것 같다. 이제라도 나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움직여야만 하겠다.
이어도 인공섬 건설에 대한 의견들
https://youtu.be/Iw9WrBW_xHk
어제와 그제 산책한 이어도공화국 베이스캠프 주변, 김광종 수로 산책로 걷기와 월라봉 단애 아래 바닷길 걷기, 파도가 빚은 조각품 감상하는 산책길 동영상
https://youtu.be/HcrRFxAri4E
https://youtu.be/B6_y7Qz6tJc
https://youtu.be/cl6G6PJv8-8
https://youtu.be/5eaeMpgphRM
https://youtu.be/4ecUevPrCz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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