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뉴스나 유튜브를 보면 자의적으로 일하지 않는 청년들의 비중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이유는 다양하다. 정말로 일하기 싫어서 안 하는 사람도 있고 적성에 맞는 일을 찾지 못해서 쉬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작년에 비해 아르바이트 지원자 수는 눈에 띄게 줄었고 매니저 지원은 몇 달째 보이지 않고 있다.
사실 매니저 지원자는 간간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가정을 이루어서 자신의 아이들 등원 시간이나 하원 시간에 맞춰서 출퇴근을 요구하거나 무조건 주말은 쉬어야 한다는 조건이 따라붙기도 했다. 정규직으로 일하는 매니저는 최소한 매장 근무에 맞출 수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하루라도 빨리 매니저를 채용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사람 구하기 힘든 고용난 속에서 마음을 내려놓고 기다려야 하지 않나. 근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까?
점장님과 2교대로 근무하는 날이 많아지다 보니 이젠 익숙해졌다. 표준 근로 시간을 초과하는 건 기본이고 쉬는 날을 반납하는 일도 적응했다. 물론 그만큼 급여를 챙겨주긴 하지만 몸이 힘든 건 어쩔 수 없다. 언제쯤 매니저 지원자가 나올까.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낼 즈음 공고를 올려놓았던 채용사이트에서 알람이 왔다. 매니저 지원자가 오랜만에 나타났다.
바로 접속해서 이력서를 확인했다. 나이는 나와 동갑이었고 경력도 괜찮아서 점장님께 말씀드린 후 최대한 빨리 면접 볼 수 있는 날을 잡았다. 벌써부터 두근거렸다. 이제 좀 쉴 수 있는 건가?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지만 채용되기 전까지 호들갑 떨어서는 안 된다. 면접 자체를 오지 않을 수 있고 면접을 보니 별로일 수도 있지 않은가. 확실하게 면접을 보러 오기 전까진 헛된 희망을 갖지 말기로 했다.
면접날이 되었다. 시간이 다가올수록 내가 떨렸다. '안 나타나면 어떡하지? 이상한 사람이면 안 되는데'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던 중 문이 열리면서 멀쩡하게 생긴 남자가 카운터로 걸어왔다. 면접 보러 왔다고 한다. 헛된 줄 알았던 희망 안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웃으면서 자리를 안내해 드리고 점장님께 달려가 매니저 면접 보러 왔다고 전했다. 이제 남은 발걸음은 단 한 걸음. 괜찮은 사람이기만 하면 된다.
채용하기로 결정됐다. 얼마 만에 들어온 새로운 매니저인가. 점장님과의 지옥 같던 2교대를 마무리 지을 수 있게 되었다. 새롭게 채용된 매니저는 다음 주부터 바로 출근하기로 했다. 이토록 설레는 순간을 얼마 만에 느껴보는 건지 첫사랑을 만나는 것보다 더 설렜다.
새로운 매니저의 첫 출근 날 유니폼을 챙겨주고 사물함을 만들어줬다. 최대한 부담 갖지 않도록 천천히 다가가 알려주면서 매니저 교육을 시작했다. 나도 MZ세대의 일원이지만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까칠하게 대하거나 조금이라도 날카로운 모습을 보이면 도망치는 사람이 많아서 답답하더라도 웃으면서 대했다. 모처럼 어렵게 채용한 매니저인데 도망가면 큰일 난다.
기분 좋게 이것저것 알려주다 보니 벌써 점심시간이 되었다. 새로운 매니저와 함께 점심을 먹으며 그제야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식당에 들어가 주문을 하고 이야기를 하는데 대화를 할수록 싸한 느낌이 들었다. 오늘 처음 봤는데 알 수 없는 이 느낌은 뭐지?
패스트푸드 업종은 주문을 빠르게 처리하는 능력과 동시에 여러 곳을 신경 써야 하는 멀티태스킹이 있어야 힘들지 않게 일할 수 있다. 거기다 매니저라면 매장 전체를 볼 수 있는 시야도 있어야 한다. 다행히 이번에 새로 들어온 Z 매니저는 패스트푸드 경력은 없었지만 업무 습득력이 좋아서 금방 적응한 모습을 보였다. 일을 잘하니 안심은 됐지만 가끔씩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할 때가 있어서 놀랄 때가 있다.
살면서 지금까지 Z 매니저와 같은 인간상은 본 적이 없다. 함께 점심을 먹으려고 Z 매니저와 둘이서 식당에 간 적이 있다. 대화를 하다가 MBTI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서로의 MBTI를 묻던 중 내가 물어볼 차례가 되어서 MBTI가 뭐냐고 물었다. 근데,
"안 알려줄 건데요?"
잘못 들었나? 방금 나한테 MBTI를 물어보고서는 내가 물으니 안 알려줄 거라고 말한 건가? 당황했다. 농담인 줄 알고 다시 물었는데 Z 매니저는 끝까지 대답해주지 않았다. 식당을 나오면서 찝찝한 기분이 들었지만 Z 매니저만에 장난이라 생각하고 커피를 마시러 갔다. 점심은 내가 사줬으니 커피는 자신이 사겠다며 메뉴를 골라보라고 한다.
"그럼 전 아이스 아메리카노 마실게요."
비싼 음료를 마시고 싶었지만 막상 커피를 얻어먹으려고 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그나마 눈치 보지 않고 주문할 수 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Z 매니저가 주문을 마저 한 뒤 결제하려는데 내 눈을 흘겨보면서 말했다.
"아, 통장에 돈이 있으려나?"
나한테 하는 말인가 싶었다. 당연히 장난일 거라고 생각하고 웃어넘겼다. 하지만 Z 매니저를 교육하는 기간 동안 점심시간이 되면 본인이 결제할 때마다 같은 말을 반복했다. 통장에 돈이 있으려나. 자신이 먹은 걸 계산할 때는 물론 같이 카페를 가도 나를 보면서 계속 중얼거렸다. 마치 자신은 돈이 없으니 나보고 계산해 달라고 말하는 느낌이었다. 장난인지 진심인지도 모를 저 말을 계속 들으니 슬슬 짜증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내가 예민한 건가 싶었다.
몇 년 전에 고양이를 키운 적이 있다. 고양이마다 성격이 다양해서 겁이 많은 고양이도 있고 호기심이 많은 고양이도 있다. 우리 집 고양이는 에너지가 넘쳤고 호기심도 남달랐다. 때로는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들었지만 그때마다 '고양이니까'라며 이해했다. 고양이를 보러 온 친구들을 물어버릴 때도 있지만 '고양이잖아'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놀아줬다. 고양이니까 그럴 수 있다. 근데 고양이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사람으로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 내가 Z 매니저를 섣부르게 판단한 거일 수 있다. 고작 몇 주밖에 보지 않은 사람인데 이상한 사람으로 판단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되어 좀 더 지켜보려고 한다. 내가 이상한 건지, 아님 그가 이상한 건지 시간이 지나면 알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