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신욕은 30분만 하세요.
어제저녁 먹고 일찍 마무리가 돼서 오랜만에 욕조에 물을 받았어요. 딸이 사다둔 버블바로 거품을 가득 내고 발을 담갔는데
“앗 뜨거워”
소리가 절로 나오게 물이 뜨거웠어요. 다시 찬물을 급하게 틀어서 물 온도를 내렸지만 그래도 뜨겁다. 욕조에 들어가니 몸이 나른하고 기분도 편안하고 이래서 반신욕 하지 하는 생각에 거품으로 몸을 좀 문질문질~
들고 들어 간 폰으로 밀리의 서재를 열어 읽다만 소설을 읽기 시작했어요. 재밌게 쭉쭉 읽었더니 시간이 훌쩍 30분은 더 지난 것 있죠. 읽다가 멈추기 그래서 보던 챕터 끝까지 읽고 마무리해야지 하면서 계속 스크롤을 내렸어요. 재밌게 읽고 폰을 욕실 선반에 두고 샤워기를 틀려는 순간~
머리가 띵, 너무 오래 있었나? 샤워기에서 물줄기가 나오는데 갑자기 온 세상이 뿌옇고 자체 슬로우가 걸려요~ 욕실 천장은 빙글빙글 돌고 나 죽는 건가? 물줄기의 쏴하는 느낌은 없고 두두둑~ 정말 느리게 느리게 그 물줄기가 하나씩 보이니 무서운 거 있죠?
‘문을 열자 더워서 그래’
욕실문을 잠깐 열었더니 차가운 공기에 정신이 잠시 돌아오는 걸 느끼고 다시 문을 닫았어요. 아들은 아들방에 남편은 안방에 저는 거실 공용욕실에 모두 각자의 공간에 있었죠.
‘얼른 씻고 나가자.’는 생각에 머리를 감는데 이렇게 죽는 건가. 나 지금 벗었는데 어서 옷이라도 입자. 트리트먼트는 사치고 나는 좀 전에 거품 속에 있었으니 그냥 헹구기만 하자 생각하면서 샤워기 속에 있는 나, 공황상태가 이런 건가? 숨을 못 쉬겠고 지금 소리라도 지를까? 그럼 둘 중 하나 아니 남편이 달려오겠지. 정말 별 생각이 다 들었어요. 그런데 소리가 안 나왔다는 게 함정.
대충 수건으로 마무리하고 옷을 꺼내는데 어~ 이게 내가 가져온 게 맞나? 나 검정 반팔 가져왔는데 반팔티가 파란색 레이저에 얼룩 달록 보라, 빨강등 다양한 색이 섞여 있다. 일단 입자. 나 지금 죽으면 안 되는데.. 바지는 입지도 못하고 문을 열고 나왔는데 온 세상은 느리다.
안방으로 추적추적 들어갔더니 혼자 게임하던 남편은 “왜? “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나 좀 전에 죽을 뻔했어. 근데 내가 오빠 때문에 죽지도 못해. 아니 발가벗고 죽을까 봐 겨우 나왔네. “
”반신욕을 얼마나 한 거야? 1시간은 한 거 같다.”
욕실에서 느꼈던 짧은 그 순간들을 이야기하며
”우리 아까 밥 먹다가 다퉜는데 내가 이렇게 죽으면 오빠랑 애랑 조사받고 아까 엄마랑 아빠랑 싸웠어요. 그러면 나는 신변 비관에 죽은 걸로 되잖아. 아직도 정신이 안 들어.”
“시원한 거 마셔, 아니 내가 가져올게.”
글로 적다 보면 웃음 나는 민망한 순간인데 어제 그 욕실 속에서는 이렇게 죽는구나. 티비 드라마가 다 거짓말은 아니었네. 그 찰나에 휘리릭 지나가는 삶의 순간들..
오토바이사고가 나서 현장에 출동했는데 남자는 의식이 없었고 같이 탄 여자는 미세한 의식이 있었다. 치마가 말려 올라가 팬티가 보였대요. 그 여자분이 그 순간에도 치마를 내리려고 아주 미세하게 움직이는 걸 보고 강의 오신 강사님이 치마를 내려 주셨대요. 여자 경찰이셨어요. 저는 성인지 강의를 들으면서 나도 그럴 것 같아 생각했는데 어젯밤 저도 죽더라도 팬티는 입고 죽자. 티셔츠가 많이 짧지는 않으니까. 그 몽롱한 의식에서도 그 생각이 들더라고요.
반신욕 너무 좋지요. 좋지만 과하지는 않게 하세요. 저는 어제 너무 뜨거운 물 온도와, 시간도 평소보다 길어서 문제가 된 것 같아요. 반신욕 30분이면 충분한 것 같아요.
다시 살아난 기분으로 오늘도 하루 보낼게요.
모두 감사합니다.
*이미지는 핀터레스트에서 가져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