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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연서 May 14. 2024

우연한 점심

병천 순대국

오늘의 글감은 에피소드다. 아침에 글감을 받고는 몇 가지가 떠 올랐다. 그런데 그 이야기들 말고 오늘 점심 먹은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날씨가 좋아지면서 요즘은 조금 일찍 일어난다. 새롭게 먹는 비타민 때문일까?  해가 빨리 뜨니 눈도 빨리 떠지는 것 아닐까? 그러면 겨울에는 몇 시까지 자야 할까? 어릴 때는 매일 같은 24시간인데 어른들은 계절에 따라 밤이 길어졌다 짧아졌다 하는 말이 이상하게 들렸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 아마 아직은 밥보다 잠이 좋은 우리 아들은 이해 못 할지도 모른다.


엄마가 보낸 택배가 도착해서 열무김치, 메추리알조림, 멸치볶음과 얼린 돼지고기는 냉장고에 정리해서 넣어두고 햇 양파는 그대로 베란다에 두었다. 감사인사 겸 전화를 드렸다. 전화를 끊다가 남편 번호가 눌러졌다. 정말 빠르게 끊은 것 같은데 흔적이 남았다.  30분쯤 지나서 남편이 전화해서

"무슨 일 있어? 전화 못 받았네."

 "아니 엄마랑 통화하고 끊으면 눌러졌나 봐."

하면서 오늘 받은 반찬 이야기를 했다. 시간은 11시 30분.

"밥 먹었어?"

"아직."

"나도 먹어야 하는데 같이 먹을래? 근처에 있을 건데.."

 

2일 만에 통화라 그러자고 했다. 나는 검정바지에 핑크색 블라우스를 입고 차에 탔다. 그냥 청바지에 운동화로 나갈까 했는데 지난번 남편이 "너는 나 말고 다른 사람 만날 때만 신경을 쓰더라" 하는 한마디가 생각나서 체육복에 꼬질한 남편을 만나면서 새로 산 샌들, 바지, 블라우스를 입고 화장을 가볍게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샤워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차를 타고 40분쯤 달려가서 남편을 만났다. 모자를 푹 눌러쓴  남편을 차에 태우고 병천 순대거리로 넘어갔다. 근처라지만 40분은 가깝다면 가깝고 멀다면 먼 거리다. 평소 우리가 가던 식당이 아닌 옆 식당에 실수로 주차를 했다. 처음에 순댓국은 다 비슷하지 다른 집도 먹어 보자 했는데 다음에는 옆집으로 가기로 했다. 병천에 오면 순댓국이랑 호두과자를 산다. 오늘도 같은 코스로 밥을 먹고 오는 길은 남편이 운전을 했다.

남편이 방향을 잡은 곳은 가끔 가는 카페다. 여기까지 와줬으니 차도 한 잔 마시자고. 아이들 없이 차 마시고 밥 먹는 일상이 늘어간다. 짧은 데이트 한 번에 신사임당이 손을 흔든다. 그래도 둘이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니 좋기도 하다.


오늘 밤에 다시 남편을 태워다 주고 오면 된다. 그냥 특별한 에피소드는 아니지만 급으로 데이트를 하는 17년 차 우리 이야기를 남기고 싶었다. 기록은 추억을 이긴다고 하니까..


우리는 추억을 만들고 기록으로 남기고 시간이 지나면 이 짧은 글들을 보면 함께 반추하다가 나중에는 혼자 남아서 먼저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그날 나는 왜 거기까지 가서 점심을 먹었을까?? 알듯 말듯한 미소를 띠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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