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에 머리카락이 흥건했다. [흥건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물 따위가 푹 잠기거나 고일 정도로 많다.’라는 뜻이지만, 흥건하다는 말 외에는 표현이 안 될 정도로 정말 바닥에 머리카락이 흥건했다.
아주 오래전, 3살 터울 동생과 머리채를 붙잡고 싸웠다. 뭣 때문에 싸운 지 기억도 안 난다. 아마 쓰잘데기없는 걸로 싸웠을 거다. 서로 씨익씨익-거리며 놔, 놔! 했던 기억만 선명하다. 결국, 서로의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바닥에 검은 머리카락을 흩뿌리고 나서야 싸움이 종결되었던, 머리카락 한올 한올 소중한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참으로 아찔한 기억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은 그렇게 싸우라고 해도 못 싸운다. 안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못’한다. 그러니까 철들어서가 아니라 여건상 그렇다는 말이다. 이제 마흔에 육박하는 나. 아무리 열심히 운동해도 기본 체력이 저질이기에 다이다이 뜨고 싶어도 힘들어서 못 한다. 그건 같이 늙어가는 처지인 동생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우리는 세월의 힘으로 반강제적으로 평화를 체결하고서 나름 사이좋게(?) 동거하는 중이다.
십 년 전쯤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동생과 나는 취향이 소름 돋게 비슷해서 여행 메이트로서 딱이었다. 어느 정도냐면, 눈빛만 봐도 얘가 뭘 먹고 싶은지 뭘 하고 싶은지 알 수 있었고-대충 한식, 중식, 이런 게 먹고 싶나보다, 정도가 아니라 구체적인 메뉴를 알 수 있다.- 얘가 여기서 더 걷고 싶은지 다른 곳도 더 방문하고 싶은지 아니면 아예 쉬고 싶은지 따위를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뇌를 공유하고 있는 것 같다고, 심심찮게 말해왔다.
아무튼, 십 년 전쯤, 동생과 유럽 여행을 떠났을 때였다. 런던 기차역에서였나. 역시나 쓰잘데기없는 이유로 싸웠는데 결국, 말다툼 끝에 동생이 기차역에 나를 버리고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만 것이다. 그때 당시 영어를 한마디로 못하는 나는 기차역 의자에 앉은 채로 엉엉 울어댔다. 서럽게 울던 동양인 여자를 쳐다보는 서양인들의 시선이 느껴져서 부끄럽고 창피했지만,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마음 약한 동생은 몇 분도 안 되어서 나한테 도로 왔다. 그리고 언제 싸웠냐는 듯 다시 여행을 즐겼다.
우리 자매의 화해란 그런 것이다. 조금 전까지 서로 죽일 듯이 싸워도, 뒤돌아서면 시답잖은 농담 따먹기를 하면서 웃어대는 것.
때론 동생은 남편과도 같고 친구와도 같고 부모와도 같다.
...라고 동생한테 말하면 소름 끼쳐 하면서 싫어하겠지. 하지만 어쨌든 나에게 이런 동생이 있다는 건 행운이다. 아닌가? 불행일지도. 왜냐하면, 맨날 동생이랑 놀기 때문에 내가 결혼을 못 하는 거라는 얘기가 주변에서 심심찮게 들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