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따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런 날이 있다.
유독 기분이 가라앉는 날.
그날따라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도 도통 집중이 되지 않아 카톡 딸깍, 한글 파일 딸깍, 이메일 딸깍. 뭘 해도 심드렁, 뭘 봐도 노 재미.
마치 온몸이 무기력에 꼬르륵 잠식되어 버린 것만 같았다. 그런 주제에 동동 뜬 입만 뻐끔거리며 꾸역꾸역 숨만 내뱉는.
더는 그대로 있을 수 없어서 하던 일을 모두 내려놓고서 무작정 밖을 나섰다. 자전거에 올라탔다. 근처 공원에서 바람 좀 쐴 생각이었다.
석양이 나른하게 가라앉던 하늘.
느릿느릿 페달을 밟을 때마다 초여름의 미지근하면서도 시원한 바람이 뺨을 스치듯 지나갔다.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답답했다.
그러다 다이소로 향했다. 필요한 것도 몇 가지 있었고, 신상품이라도 구경하며 소소한 재미를 찾아보자는 마음이었다. 명품샵도 아니고 다이소라니. 아, 내 인생의 소박함이여.
다이소에서 이것저것 구경하고 장을 보며 잠시 정신이 팔렸다. 새로 나온 문구용품들을 만져보고, 쓸모없어 보이지만 귀여운 소품들을 구경하는 시간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쇼핑을 마치고 나서도 여전히 뭔가 허전했다.
가슴 한쪽이 뚫린 듯.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천이 내려다보이는 벤치에 앉았다. 야경이 꽤 예뻤다. 물에 반사된 불빛들이 반짝거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분명 아름다운 순간이었는데, 이상하게 기분은 더 침울해져갔다. 왜일까.
'그냥 일이 손에 안 잡혀서 그런가 보다.' 막연하게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사 온 물건들을 하나씩 정리하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길게 했다. 우울함은 수속성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확실히 샤워하는 건 기분 전환에 큰 도움이 되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서 오늘은 일찍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날도 있는 거지, 내일은 나아지겠지 하면서.
그런데 그날 밤.
생리를 시작했다.
아.
아하하.
아아아아아.
그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아, 그래서였구나.
이 모든 감정의 롤러코스터가, 이 이유 없는 우울감이, 괜스레 주책맞게 눈물이 날 것 같던 그 순간들이 모두 PMS 증상이었던 것이다. 신기하게도 생리가 시작되고 나니 마치 안개가 걷히듯 가라앉던 기분은 너무나도 쉽게 휘발되었다.
그렇다, 나는 호르몬의 노예.
사실 알고 보면 별거 없는.
어쩌면 결국 시간이 답일 때도 있다.
참 단순하게도.
다음엔 캘린더라도 확인하고 우울해하자.
뭐 해 먹고 살지? 란 물음에도 단순하게 답을 내릴 수 있을까?
하지만 아직 수련이 부족해서 그런지 도통 단순하게 생각할 수가 없다.
아직 더.
어렵게 돌아야 단순함에 도착할 수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