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 없음도 방향일 수 있다
길을 잃은 건 아니다. 다만 방향이 없을 뿐이다. 그러니까 헤메고 있는 중인데 어디까지 갈지는 나도 모르겠다. 분명히 어디론가 가고 있는 것 같긴 한데 말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애초에 내 의지로 가고 있는 게 맞을까? 혹은 그냥 물에 휩쓸려 정체없이 흘러가는 건 아닐까? 인생 네비게이션이 있다면 하나 장만하고 싶어진다. "잠시후 우회전입니다."라는 음성 안내와 함께 명확한 길잡이를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쓰다보니 생각났는데, 네비게이션도 애초에 목적지를 설정해야 안내가 나온다. 아아, 내 목적지는 나도 모르는데 그냥 좀 일단 대충 알려주면 안될까?
이쯤 되면 직선으로만 달려야 한다는 예전의 강박은 좀 내려놓아도 될 것 같다. 회전도 하고, 후진도 하고, 유턴도 하고, 가끔은 한참 정차해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그게 오히려 삶의 자연스러운 속도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의 이 상태를 다르게 해석해볼 수도 있다. 나는 방향을 잃은 게 아니라, 일부러 길을 고르고 있는 중이라고.
웹소설에서 인기 있는 키워드 중 하나인 '환생'을 떠올려본다. 환생할 수 있는 버튼이나, 게임에서 누를 수 있는 '리셋' 버튼이 존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잘못된 선택을 지우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완벽한 루트를 찾을 수 있을 텐데. 하지만 동시에 그게 정말 좋을까?란 생각도 든다. 정말 그런 버튼이 있다면 나는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정답은 없지만, 그래도 일단은 살아간다. 완벽한 지도나 네비게이션 없이도, 때로는 길을 잃으면서도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긴다.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풍경을 마주하고 새로운 길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럼 일종의 여행이라고 생각해볼까? 방향 없는 걸음도 결국엔 걸음이고, 의미 없어 보이는 움직임도 결국엔 움직임이니까.
그러니 조금 더 여유롭게, 조금 더 관대하게 이 '의도적 헤매기'를 받아들여보자. 길을 잃은 게 아니라,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하면서.
악필...이지만 종종 책을 읽을 때 마음에 드는 문구가 있으면 이렇게 독서노트에 내 나름대로 꾸며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