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

by 김블리

1. 코스트코의 장점


코스트코에 갈 때마다 나는 기묘한 해방감을 느낀다. 여기엔 ‘고를 자유’가 거의 없다.


예를 들어 두부 코너에는 순두부가 딱 한 종류만 있다. 다른 마트에서 여러 개 진열돼있는 브랜드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며 고민하던 내가 무색할 정도로, 여기서는 고민할 필요가 없다. (물론 와인처럼 다양한 브랜드가 진열된 품목도 있긴 하다.)


선택의 자유가 없는 것이 오히려 장점이라는 이 모순.


무수한 선택지 앞에서 느끼는 피로를, 코스트코는 단칼에 잘라낸다. "이것만 있으면 됩니다"라고 말하는 듯한 그 단호함 속에서, 나는 결정장애라는 현대병으로부터 잠시나마 해방된다.


선택에서 힘을 뺀 순간, 나는 가벼워진다.




2. 운동으로써의 수영


수영장에 처음 발을 담그던 날, 선생님이 내게 말했다.

"회원님, 몸에 힘을 좀 빼세요."


나는 생각했다.

'힘을 안 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데...'

그땐 정말로 몸에서 힘을 빼는 법을 몰랐다.


그런데 놀랍게도,

몇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아직도 힘을 제대로 뺄 줄 모른다.


물론 완전히 힘을 빼고서 해파리처럼 둥둥 떠다니는 건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걸로는 운동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해서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어서는 물과 친해질 수 없다. 이 두개의 모순을 적절히 가지고 놀아야 운동으로써의 수영을 즐길 수 있다.


그럼 나는 언제쯤 힘빼기가 자유자재로 될까?




3. 어느 날 계시처럼 날아온 숏츠


우연히 그런 숏츠를 봤다. 운이 따라주는 시기가 있으면 무조건 그 반대의 시기도 있다는 이효리님의 말.


그 말을 듣는 순간, 문득 떠올랐다. 내가 지금 그래서 뭘 해도 안 되는 건가?


물론 운을 핑계삼아 도망치려는 건 아니다. 그저... 조금 마음을 편하게 가져도 되겠다고 스스로에게 위안하는 정도랄까. (그리고 또 도망치면 어때?)


한창 운이 좋았던 시절을 떠올려본다. 아무리 경쟁자가 많아도 내 작품이 턱턱 뽑혔고, 생각했던 것보다 수입도 많이 들어왔다. 그때는 내 실력이 늘었다고, 내가 더 노력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그 운이 다 사라진 듯하다. 똑같이, 아니 더 열심히 해도 밑바닥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상하다. 같은 사람이 똑같이, 때로는 더 열심히 하는데 결과는 정반대다. 이것도 일종의 모순이 아닐까? 노력과 결과가 비례하지 않는다는, 그 잔인한 모순 말이다.


하지만 이효리의 말을 듣고 나니 조금은 가벼워졌다. 운에도 주기가 있다면, 지금의 침체도 언젠가는 끝날 것이다. 그러니 힘을 빼고 기다릴 것. 그렇게 운이 안 따라주는 이 시기를 잘 넘길 것.


그리고 일단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할 것.

keyword
화요일 연재
이전 03화GPS 없음, 리셋 버튼 없음, 그래도 생존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