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 안 나세요?

by 미쓰당근


뉴욕에서는 지하철이 오래 되어서인지 주말이 되면 공사하는 구간이 참 많다. 그래서 걸핏하면 ○○선이 안 다닌다든지, 어떤 역을 그냥 지나쳐 버린다든지 하는 변수가 많이 생긴다.

한번은 지하철역에서 오지 않는 지하철을 하염없이 기다렸던 적이 있다. 맨하튼 쪽으로 나갈 때 매번 타고 다닌 지하철인데, 그날은 어쩐 일인지 반대 방향의 지하철만 왔다.

한참을 기다리다 이건 뭔가 잘못된 거 같다는 생각에 두리번거리다 플랫폼 한쪽에서 오늘 그 노선의 지하철이 공사 때문에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운행되지 않는다는 공고를 발견했다.

저렇게 구석탱이에 붙여 놓으면 어떻게 알라는 건지 부아가 났지만, 언뜻 방송을 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그걸 나의 부족한 영어 듣기 능력 탓에 못 알아들은 게 아닌가 싶어 혼자 궁시렁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뉴욕 사람들은 그런 일이 빈번해서인지 지하철 운행 중지 등의 공지나 방송에도 누구 하나 뭐라 하는 사람이 없어 보였다. 영어가 짧아 그들의 불평 섞인 말을 못 알아듣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하철의 잦은 공사와 변경에도 다들 평안한 표정으로만 보였으니, 단체로 도라도 닦은 건가 싶게 의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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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아침 출근 시간에 지하철을 타 본 사람은 모두들 겪어 봤을 거다. 사람들이 얼마나 화가 충만해 있는지 지하철에서 고성을 지르며 싸우는 광경은 하루가 멀다 하고 볼 수 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밀리고 밀치면서 여기저기서 한숨과 짜증 섞인 비명들이 터져 나온다. 그런 상황에 지하철 고장으로 연착이라도 되는 날에는 울화가 최고조에 이른다.

나 역시 지하철만 타면 어디에서 그런 전투력이 생기는지 서 있는 자리를 두고도 밀리지 않으려고 옆 사람과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인다. 그러다가도 이게 뭐라고 잠시 있다 내릴 자리를 절대 물러나면 안 될 고지인양 연연하고 있는 내 모습이 우스워져 힘이 탁 풀리기도 한다.


언제부터였을까? 쉽게 화내고, 작은 일도 양보하지 않고, 잠시도 기다리지 못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마음의 여유도 삶이 여유로워야 생긴다는 말이 백 번 지당하지만, 바쁘고 피곤한 생활에서도 내 마음만큼은 살피며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시도 때도 없이 불을 뿜는 공룡들만 사는 세상이 되어 버릴 수도.

뉴욕의 들쑥날쑥한 지하철 운행 이야기를 하다 고단하고 각박한 우리의 출근길 풍경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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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뉴욕 여행에서 지하철이 공사 중이라 운행을 안 한다거나 노선이 바뀌었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런 정보가 여행 책자에 나오지는 않지만, 지금은 너무나 편리한 지하철 앱이 안 다니는 노선을 대체할 수 있는 방법까지 똑똑하게 알려 주는 스마트한 세상이니 말이다. 그리고 지하철 앱이 또 없으면 어떠랴. 기다리다 안 오면 물어보면 되고, 조금씩만 마음의 여유를 갖는다면 크게 당황할 일도 화가 날 일도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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