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길거리 악사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조금은 예스런 느낌의 ‘악사’라는 단어를 굳이 쓰는 이유는 클래식의 성지답게 바이올린, 첼로 등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공연을 자주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잔기침 소리마저 조심하게 되는 클래식 연주회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게 거리의 소음과 어우러지는 클래식 선율에 ‘클래식 음악이 이렇게 좋은 거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뉴욕에서도 유럽처럼 공원이나 광장 등에서 공연하는 이들이 많은데, 뉴욕의 거리 공연은 좀 더 역동적이라고 할까. 특히 지하철은 다채로운 공연을 마주할 수 있는 활기 넘치는 공연장이라 할 만하다.
지하철역 한 곳에서만도 참 여러 가지 공연이 여기저기에서 펼쳐진다. 역사 안 한쪽에선 꽃 화관을 머리에 쓴 가수가 기타 하나 달랑 메고 감미롭게 노래를 부르고 있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면 플랫폼 한쪽에서는 “지징~ 지징~” 현란한 전자 기타 소리와 함께 락 공연이 한창이다. 그러니 지하철역에 들어서면 공연에 정신을 뻬앗겨 잠시라도 걸음을 멈추게 되기 일쑤다. 지하철 놓칠까 봐 미친 듯이 뛰어야 하는 서울의 아침 출근길도 아니고, 뉴욕이란 공간에 휴가를 와 있다는 사실에 없던 여유까지 생기는 걸지도. 하지만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 역시 음악을 즐기고 있는 듯 보인다.
어떤 날은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한 떼의 흑인 청년들이 옆 칸에서 우르르 들어오더니 흥겨운 힙합 음악을 틀었다. 그 좁은 통로에서 헤드스핀에,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몸을 360도 휙휙 돌리는 묘기에 가까운 춤을 추며 순식간에 지하철 공간을 댄스 장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건 또 뭐지?’ 하며 넋이 나가 바라보다 보니 내 손은 어느새 모자를 들고 도는 그들에게 줄 동전을 찾고 있었다.
거리나 지하철에서의 공연에 익숙해지니 리듬에 맞춰 발을 까딱거리거나 고개를 끄덕거리는 정도의 소극적 동작만 하던 내 몸이 점점 더 적극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지난번엔 흑인 청년들의 랩이 어찌나 신나던지, 하마터면 나도 모르게 둠칫둠칫할 뻔했다는. 순간 ‘움찔’ 하며 참았지만.
흥에 겨우면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던 우리 선조들처럼 흥겨우면 흥겨운 대로 몸을 흔들며 즐거움을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언제부턴가 체면을 차리느라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일이 많아졌다.
생각해 보면 지역 축제 같은 곳에서 초청 가수가 노래할 때면 꼭 앞으로 나와 막춤을 추는 흥 많은 몇몇 아주머니 아저씨들을 볼 때마다 나도 속으로 ‘아이고, 어머님, 아버님들. 참아 주세요.’ 했지만, 사실 그분들의 몸과 마음이 가장 말랑말랑한 상태가 아닐는지.
나이를 먹을수록 경직된 몸과 마음을 더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다 언젠가 정말 어디선가 흥에 겨워 막춤을 추고 있는 나를 보고 누군가 ‘아이고, 어머님. 제발 좀 참아 주세요.’ 하게 될 날이 올지도. 아직 아줌마는 아닙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