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을 여행하다 보면 우리나라가 최고구나 싶은 순간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하게 그런 맘이 드는 순간이 바로 생리 현상이 급할 때다. 우리나라가 최고라는 게 겨우 화장실 얘기냐 할 수도 있지만, 외국에서 화장실을 찾지 못해 식은땀 좀 흘려 봤다면 우리나라의 공공 화장실 시설에 ‘엄지 척’ 하게 될 거다. 지하철역 등의 공공시설엔 물론이고 어디에든 공짜로 갈 수 있는 화장실을 갖추어 놓아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해결해 주는 나라. 이것이 복지 국가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여행을 다닐 때 유럽에서는 공공 화장실을 이용하려면 돈을 내야 하니 식당에서 밥 먹을 때 화장실을 이용하거나 웬만큼 급하지 않으면 참았다 한 번에 볼일을 봤고(건강을 위해 장기 여행은 자제해야 할지도.) 뉴욕에서도 공공 화장실을 찾기가 어려워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 몇 군데를 미리 알아 두고 다녔다.
그렇다. 뉴욕에는 지하철역에 화장실이 없다. 그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공시설에 화장실이 없다! 하긴 더럽기로 소문난 지하철이니 설사 화장실이 있다 하더라도 그 화장실은 오죽할까 싶어 쌀 것 같은 위급 상황이 아니라면 굳이 이용할 것 같진 않지만.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뉴욕의 지하철역에도 화장실이 있었다는데 범죄가 너무 빈번하게 일어나 폐쇄된 거라 한다. 여담이지만, 뉴욕의 지하철역에서는 오르내리는 계단이 에베레스트 산처럼 높을지언정 엘리베이터는 이용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술에 취한 사람들, 약에 쩐 사람들이 주로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화장실로 이용해 냄새가…. 설명은 여기까지만!
우리나라 지하철엔 있지만 뉴욕의 지하철엔 없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빵빵 터지는 와이파이. 우리나라의 지하철엔 통신사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지하철역은 물론 지하철 칸칸마다 초고속 와이파이를 설치해 무료로 사용할 수 있지만, 뉴욕의 지하철은 와이파이는 고사하고 통화권 이탈로 뜨는 구역도 상당하다. 가끔 동생과 인터넷 통화를 하다가도 갑자기 먹통이 되면 이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아, 지하철이구만.’ 하고 생각할 정도다.
그런데 지하철이나 공공장소의 무료 와이파이가 다 좋기만 한 건가 싶은 마음도 든다. 물론 데이터 걱정 없이 언제 어디서든 무료로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으니 그만큼 생활이 편리해졌다고는 할 수 있지만, 그 덕분에 사람들의 시선은 온통 핸드폰에만 쏠려 있다. 나 역시 핸드폰 없는 하루를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마치 한 몸처럼 옆에 끼고 산다. 그런 만큼 자기 주변조차 돌아보지 못하고 핸드폰 세상 안에 갇혀 살아가는 건 아닌지.
친구를 만나도, 부모와 자식이 마주 앉아도 대화보다는 스마트폰 속 세상이 더 흥미롭고 재미있게 느껴진다. 매일 다니는 길가에 꽃이 피거나 지거나 내 알 바 아니고, 한동안 동네를 어슬렁거리던 길고양이가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는 건지, 옆집이 언제 이사를 가고 새 이웃이 왔는지 하는 실제 세상의 일들은 우리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진다.
생각해 보니 뉴욕을 여행할 때도 유심 칩만 바꿔 끼면 통화든 인터넷이든 맘대로 할 수 있게 된 지금보다 로밍을 하지 않아 핸드폰을 시계로밖에 사용할 수 없었던 예전에, 뉴욕의 거리와 사람들, 풍경을 더 많이 더 깊이 바라보았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손바닥만 한 핸드폰 속 세상이 아무리 신기하고 흥미로운 것들로 유혹해 온다 해도 자주자주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수 있기를.